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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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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도산 1987년 09월 67호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간다.
우리는 옛부터 흙을 가까이 하며 농사도 지어 왔고 흙을빚어 도자기를 만들고 집을 지어 그 속에서 살아 왔다. 그러므로 한국의 문화는 흙의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집집마다 사랑채니, 행랑채니, 문간채니 하여 웬만한 집이면 손님을 대접하는 ‘사랑방’이 있었고 그 사랑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문은 그 시대의 여론이었으며 어린아이들은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옛이야기나 전설, 그리고 위인에 관한 재미나는 얘기들을 이 “사랑방”을 기웃거리며 듣고자 랐었다.
요즘 보면 이런 시골 풍경은 이제 초가지붕과 더불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사랑방의 문화’는 텔레비전 문화에 밀려나고 만 것이다. 농촌의 ‘품앗이’라는 사랑과 협동과 봉사의 문화 역시 영농의 과학화니, 기계화니 하여 없어진 지 이미 오래이며, 또한 오늘날 농약의 과잉 생산은 농민의 생산성 확대라는 이유로 날로 그 수효가 늘어나 도시뿐 아니라 농촌도 현대 공해 지역에서 예외가 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농촌은 이대로 좋은가?
본래 벼멸구나 진딧물류 같은 병해충은 천적이라 해서 메뚜기나, 방아개비, 여치, 잠자리 등이 잡아 먹었고 물에 떨어지는 것은 미꾸라지, 붕어, 뜸북이 등이 먹이로 삼아 사실상 농약이 아니더라도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음양오행의 법칙은 대자연의 상극과 상생의 이치여서 서로 합치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서로 불합(不合)하는 것이 있어 상호간의 조화를 이루며 생존하는 것이 우주 법계의 섭리인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에이즈(AIDS)도 매스컴 발표에 의하면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핏속에서 에이즈균을 잡아먹는 에이즈 항생체가 발견되었다는 획기적인 보도가 있었는데 이런 것을 보더라도 인간에게 ‘자연 치유 능력’이 있듯이 농작물에도 그 자체내에 모든 병균과 대항할 수 있는 항생체가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런데 농약을 살포하여 병해충을 미리 예방해 버리니 갈수록 농작물은 유약해지고 면역성은 약해져서 만약 농약이 해결치 못하는 새로운 도열병이 발생했을 때는 그해 농사는 폐농이 되고 만다. 그뿐만 아니라 해마다 농약은 더욱 독해지고 있고 농약을 사용하는 횟수도 많아지는 것은 농민들이 농약에 의존하는 의타심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병충해의 박멸이 어지간해서는 잘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농민들의 의견도 있다. 결국 농약을 먹는 병해충은 해마다 강해지고 농작물은 해마다 약해지며, 따라서 ‘수은’의 농도 또한 날마다 짙어지는 것이다.
농약이 스며든 논바닥과 밭이랑에서는 흙의 생명이 나날이 죽어가는 그 비명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있는데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농민도, 정치인도, 학자들도 이제는 없다. 아직도 인간 심성에 대자연을 정복하려는 ‘야만’이 있고 ‘과학’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우치(愚痴)’가 있는 한 이 땅위에 피어난 각종의 공해는 날로 증가할 것이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오존층’이라는 생명의 벽(The wall of Life)이 있다. 이 벽이 있기 때문에 산소, 질소와 같은 공기의 영양이 보존되며 태양의 강렬한 직사광선이 굴절되어 지구에 이르러 생명의 빛이 된다. 그러나 만약 이 ‘오존층’이 파괴되면 대기의 원소는 보존될 수 없고 태양의 직사광선은 지구의 모든 것을 일시에 태워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중앙기상대에서 발표하는 일기예보가 자주 틀린다한다. 그 원인은 소위 ‘이상 기류 현상’ 때문이라는데 그것은 그 동안의 핵실험을 통한 미진과 우주 탐사를 위하여 무던히도 쏘아올린 로켓 발사의 폭음 등으로 인한 오존층의 파괴가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사실상 인류는 새로운 우주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우주를 파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지구의 기상 현상 및 모든 자연의 생태계에 중대한 파멸을 조장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 ‘여름건강관리란’에 벌레에 물렸을 땐 상처에 암모니아수나 우유를 바르라고 써 있었는데 이런 정도는 옛날에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의 처방에도 다 있었던 것들이다. 다쳤을 때에 칙간(변소)에서 오래된 똥물을 마시기도 했고 변을 싸서 불이기도 했으며 꿀을 바르거나 겨자떡을 붙이고 쌀을 씹어서 쌀뜨물을 바르기도 했었다. 또한 모기에 물린 데는 침을 바르고 다리가 저려 왔을때도 코에 침을 바르면 나았다(코에 침이 마르는 동안 참으라는 뜻이었겠지만). 아뭏든 옛 우리 조상들은 생산의 증대나 생활의 편리를 위하여 자연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았다.
흙이란 구태여 어느 학자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농민의 희망이요, 생명이다. 부처님께서도 흙을 가리켜 인간의 4대원소인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중의 하나라고 했으며 인간의 뼈와 살은 본래 흙서 왔으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파하시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흙을 떠나서 살 수 없으며 흙에서 나오는 양분을 섭취해야 하므로 ‘흙의 자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흙 위에 존재하는 모든 삼라만상이 흙을 의지하지 않고 어찌 지탱하겠는가?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흙은 염라대왕이며 하나님이며 부처님인 것을 흙에다가 농약을 만들어 살포하는 것은 염라대왕과 하느님과 부처님에게 독약을 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라. 세계의 강대국들은 자기 나라의 흙을 살리기 위해 약소국가에다 공해 공장을 짓고 그들은 생산된 완제품만을 헐값으로 사감으로 해서 약소국가의 흙을 죽이고 그나라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이 땅의 농민들이여! 그대들은 이름좋은 영농의 기계화로 젊은 일손들을 도시로 몰아내고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농업의 결손으로 농경 정책의 머슴노릇을 하고 있으며 설상가상격으로 죽어가는 흙 위에 농약과 화학 비료를 과용함으로 해서 우리의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인 흙을 죽여가고 있다. 농학(農學)을 한다는 학자들이여, 그대들도 또한 역사에 남을 ‘흙죽임’의 원흉들임에 틀림없다. 독한 농약과 화학 비료를 만들어 흙을 무참히 죽이는 그 주동적 역할을 했으며 농민들에게 생산성을 높여 준다는 이름하에 비닐하우스와 낙농을 권장하였으나 금년에는 마늘 한 접을 팔아야 일천원짜리 치솔 하나 사게 만들었고 우유가 남아돌아 각 낙동가에서 헐값으로 우유를 내놓게 하였으며 그렇지 않으면 우유값으로 분유를 되돌려 준다 하니 이 천인공노할 만행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한다는 말인가?
흙이 죽어가고 있다.
그 흙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농민들이 배고파서 울고 있다.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아온 농민들은 순진무구하며 도시의 학생들과 근로자처럼 최루가스를 이겨내고 데모할 용기와 기력과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농사짓고 흙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팔자소관이겠거니 체념하고 살아가는 농민들에게 또 하나 소외감과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안방의 마구니 텔레비전 속에 나타나는 도시의 화려함, 그리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삽자루, 괭이자루 놀 수 없는 농민들의 손끝에는 피멍이 가실 날이 없는데 도시의 여인들은 숨이 차도록 살이 껴서 뒤뚱거리고 술집마다 양주가 동이 나는 도시 남정네들의 위락생활에서 농민들은 기가 막히고 분노가 치민다. 게다가 한 술 더 얹어서 정치하는 여, 야 넥타이님들은 날이면 날마다 싸움질하는 게 고작이고 뼈빠지게 농사지어 하얀 쌀밥 먹게 해주니 저 지경들인가 생각하면 오늘이라도 당장 괭이, 삽자루 던져 버리고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 그러나 뒷산의 조상님들 벌초는 누가 하며 제사 성묘는 어찌 하겠는가? 이렇게 참아가며 살아가는 이 땅의 농민들이야말로 이 민족의 어른이며 이 국가의 주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얼마 전 매스컴에 보도된 바 있지만 딸기밭을 갈아 엎어버린 딸기밭 주인이 있었다. 항상 남의 밭에 있는 딸기가 크게 성장하는 모습이 부러웠던 그 농부의 아내는 남편 몰래 자기 밭에 다른 사람들처럼 소위 ‘속성수 약’을 뿌려 버렸다. 딸기가 갑자기 커지게 되자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화가나서 그 딸기밭을 갈아 엎어 버린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다.
이것은 아내에게 ‘훌륭한 인간의 양심’을 가르친 좋은 본보기였으며 바로 인간 양심의 승리였다. 그 딸기밭 주인은 우리 농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흙의 양심’이며 우리 국토의 주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흙을 살려야 한다. 이 나라에는 농민과 흙이 주인이다. 누가 뭐라 해도….
고기가 물이 없인 살 수 없듯이 사람은 흙을 떠나서 살수가 없다. 그 흙이 농약과 과다한 화학 비료에 의해서 죽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자손만대까지 물려 주어야 할 흙을 살리는 일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집집마다 ‘사랑방’을 재건하여 옛 우리 조상님들의 ‘이웃 사랑’의 정신을 되살리도록 해야 한다. 이 사랑방에서 한 해 농사정보와 계획이 오갔으며 길 가던 나그네가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는 훈훈한 농촌의 인정이 흐르고 있었지 않았는가?
전국토 면적의 대부분이 아직 우리에게 농업을 장려하는 한 이 땅에서 농사는 우리의 천하지대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농사짓는 일이야말로 대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축복이며 가장 겸허한 인간 삶이라는 것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