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의 석불(石佛)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이고 산에는 자연 바위와 돌이 많아서 경주 남산을 비롯한 여러 곳에 마애불(磨崖佛)이나 석불을 많이 조성하였다. 특히 신라 사람들은 일찍부터 풍수지리사상과 함께 자연을 신성시하였으며 차가운 돌과 바위에 불심을 불어넣어 불상을 조각함으로써 따뜻한 생명이 피어나게 하였다. 이러한 석조(石彫)문화는 위대한 석굴암을 낳게 하였으며 정주 남산의 불교 유적은 신라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중요한 사적이다.
이런 영향과 무관하지 않게 가야산에도 우수한 2구(軀)가 있는데, 하나는 마애불이고 다른 하나는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이다.
마애불은 해인사 북쪽 계곡을 돌아 가야산정으로 가는 길의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에 흔히 중봉부처님이라고 하는데 크고 단단해 보이는 바위를 이용하여 마애입상(磨崖立像)을 조각했다. 돌은 화강석이므로 단단하며 검은 빛이 감도는데 부처님의 모습 또한 아주 당당하여 육중하게 보인다. 더우기 양각으로 새겼으므로 더욱 그런 인상을 남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전체의 얼굴은 잘 균형잡혀 있고 입은 다소 두드러지며 큰 귀와 함께 한국의 불상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풍만한 편이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어깨는 넓어 당당하며 힘이 있어 보인다. 좌우 두 손은 잘 조각되어 생동감을 주는데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가슴 부분에 맞대고 있다.
법의(法衣)는 전체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通眉)이며 옷의 모습도 상당히 두터워 보여 질감이 있다. 전체적인 옷 모습이 보편적으로 가사의 모양이라기보다는 장삼과 같은 모습이 보이면서 그 전체의 느낌도 천이 두터워 더욱 육중하게 보인다.
머리 부분의 원광(圓光)은 아무 무늬도 없으며 잘 처리된 넓은 원광은 불상 전체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광배(光背)는 달리 조각하지 않았고 불상을 조각한 그 바위전체가 하나의 광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불상의 양식이나 조각 수법으로 미루어 신라통일 이후의 불상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룬 불상이다. 또한 이 불상은 해인사의 형국‘이 행주형국(行舟形局)이므로 이 중봉의 부처님은 해인사라고 하는 큰 배를 움직이는 도사공(都沙工)으로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그 조성도 개산 당시라고 보고 있다. 단오날이나 길일(吉日)에는 꼭 사중에서 기도를 하고 또 외래의 기도객이 끊이지 않는데 기와 조각이 인근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불상은 높이가 5m이며 어깨 너비는 3.2m나 되는 거대한 입석으로 보물 제222호로 지정되어 있으나 해인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보호가 소홀한 것이 문제이다.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은 가야산의 상봉에 있다. 이 불상은 현재 보물 제264호로서 상봉 칠불암(七佛庵) 터에 외로이 있는데 관리 상태가 지극히 나빠 목이 절단되었고 어깨와 두 팔부분이 파손되었으며 발부분도 부러져 그 아랫부분이 보일 뿐이다.
불상의 높이는 210cm이며 머리 높이가 60cm, 어깨 너비는 70m의 화강암 불상이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얼굴과 머리의 전체적인 느낌이 다소 긴 타원형으로 보이는데 마멸이 안타까울 뿐이다. 몸의 부분이 많이 파손되어 석주와 같은 느낌이 들며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린 것으로 보아 여원인(鸒願印)인 듯하고 왼손은 어깨 쪽에서 수직으로 내린 것으로 보아 항마인(降魔印)처럼 보인다. 손이 마모되었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수법이 통일신라기의 불상임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