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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자 수련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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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7년 09월 67호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선화자 수련법회가 해인사에서 있었다. 전국의 비구, 비구니 500여 수좌들이 운집하여 성공리에 회향하였다. 정치적 대회나 불사 따위가 아닌 순수히 법문만을 들기 위하여 이와 같이 많은 대중들이 모인 것은 정화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3박4일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500여 대중이 모인 법회는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한국불교의 내일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많은 대중이 모이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비구, 비구니를 포함한 대규모의 법회로 계획된 것도 아니다. 5하 이상의 선원 수좌들로 구성된 선납회에서 초참 수좌들의 교육을 위한 선 강화로 기획되었으나, 학인은 물론 비구니까지 참가하게 되어 대규모로 확대된 것이다.
예상 외의 많은 대중이 모인 데에는 해인사라는 입지적인 조건이나 종정스님을 비롯한 큰스님들께서 직접 강의를 맡아주신 것이며 또 평상의 모임에서와 같이 도반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것들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두번 들은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그까짓 법문이나 듣자고 모인 것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으니, 수좌들이 그렇듯 많이 모이게 만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수좌들이 모여 수좌의 위치를 찾자는 것이다. 정화 이후 실추된 수좌들의 위신을 되찾고 얼룩진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반성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현재 불교계가 처해있는 상황 자체가 아닌가 싶다. 세속적인 서구의 물질문명에 불교라는 종교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데에다 종교간의 갈등이나 정치적 상황이 불러일으킨 위기 의식이 이렇게 모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화자 수련 법회는, 많은 대중들이 참가했다는 양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따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반성적 의미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과 좀더 잘 살아보자는 탁마의 자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성적 태도는 내일의 불교를 세우는 밑거름이 되고도 남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둘째는 종지의 확립을 위한 노력이다. 우리 종단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는 이념의 혼란이다. 조계종은 선종으로서 선을 종지로 하고 있다. 그러나 돈오 돈수냐 돈오점수냐 하는 선의 방법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선적인 방법과 기도적인 방법의 혼재, 선적인 행동양식과 보살적인 행동양식의 차이와 같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념의 확립이나 행동양식의 통일은 종단의 혼란을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세째는 내부의 결속을 촉구하게 만든 상황의 고찰이다. 불교는 민족종교라고 하면서도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그 역할을 제외당하였고, 내적인 역량의 부족으로 외적인 도전에 대하여 전혀 대웅의 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세속적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영역 밖의 일이라고 무관심해하거나 맹목적으로 반대하거나 사갈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할 것 같다. 그리하여 민중불교에 대한 개념의 확립이나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따위에 대한 확실한 태도 표명이 있어야 될 것이다.
현재 불교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세속적인 문명과의 관계다. 세속적이라 하여 불교의 속화나 교단이나 승려의 타락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속적인 문명사회 속에서 종교로서의 불교의 존립 근거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불교의 세속화는 근대 서양의 합리주의에 의해서 이룩된 것만은 아니다. 고려말 성리학의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서 한국사회는 서서히 세속화되어 왔다. 여말 교단의 타락이 불교 배척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성리학이 지배이념으로 바뀌면서 세속화된 사회에서 불교가 존립할 근거나 의미를 상실한 데에 있다. 현재 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는, 불교 자체 내의 문제도 있지만 근대화라는 서구 기계문명의 세속화된 사회와의 사이에서 발생된 문제가 크다. 제도화된 교회 역시 역사적인 산물이고 불교 역시 이 세계와의 연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회와의 관계속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종교개혁에서 굳이 제도적인 측면과 의식적인 측면으로 나눈다면, 일제 이후 개혁이나 정화는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이 강하다. 정화의 역사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지만, 지금 조계종이 앓고 있는 병의 대부분이 정화의 후유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에 접근하는 데에서 정치적 힘이나 양적인 확대가 가지는 한계를 인식하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질적이고 의식적인 측면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선화자 수련법회는 불교정화 운동에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앞으로 이런 법회가 계속 열려야하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결사의 형식으로 발전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