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도팔계(修道八戒)
억천만겁토록 생사고해를 헤매다가 어려운 일 가운데도 어려운 사람 몸을 받고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할꼬.’ 철석 같은 의지, 서릿발 같은 결심으로 혼자서 만 사람이나 되는 적을 상대하듯,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마침내 물러나지 않는다는 각오가 서야만 한다. 오직 영원한 해탈 즉 ‘성불을 위하여 일체를 희생환한’는 굳은 결의로써 정진하면 결정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1. 절속(絶俗) 세속은 윤회의 길이요 출가는 해탈의 길이니 해탈을 위하여 세속을 단연히 끊어 버려야 한다. 부모의 깊은 은혜는 출가수도로써 보답한다. 만약 부모의 은혜에 끌리게 되면 이는 부모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이니 부모를 길 위의 행인과 같이 대하여야 한다.
황벽 희운선사가 수천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황벽산에 주석하였다. 그때 노모가 의지할 곳이 없어서 아들을 찾아갔다. 희운선사가 그 말을 듣고는 대중들에게 명령을 내려 물한 모금도 주지 못하게 하였다. 노모는 하도 기가 막혀 아무말 못하고 돌아가다가 대의강 가에 가서 배가 고파 엎어져 죽었다. 그리고 그날밤 희운선사에게 현몽하여 ‘내가 너에게서 물 한모금이라도 얻어 먹었던들 다생(多生)으로 내려오던 모자의 정을 끊지 못해서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쫓겨나올 때 모자의 깊은 애정이 다 끊어져서 그 공덕으로 죽어 천상으로 가게 되니 너의 은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하며 절하고 갔다 한다.
부처님은 사해군왕(四海君王)의 높은 지위도 헌신짝같이 벗어 던져 버렸으니 이는 수도인의 만세모범이다. 그러므로 한 때의 환몽(幻夢)인 부모처자와 부귀영화 등 일체를 희생하여 전연 돌보지 아니하고 오직 수도에만 전력하여야 한다.
또 수도에는 인정이 원수다. 인정이 두터우면 애욕이 아니더라도 그 인정에 끄달리어 공부를 못하게 된다. 아무리 동성끼리라도 서로 인정이 많으면 공부에는 원수인 줄 알아야 한다. 서로 돕고서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이것이 생사윤회의 출발이니 ‘공부하는 사람은 서로 싸운 사람 같이 지내라’고 고인도 말씀하였다.
일체의 선인악업(善因惡業)을 버리고 영원의 자유와 더불어 독행독보(獨行獨步)해야 한다. 일반에게서 일대 낙오자가 되어 참으로 고독한 사람이 되지 않고는 무상대도(無上大道)는 성취하지 못한다. 그러니 일반인과는 삼팔선을 그어 놓고 살아야 한다. 삼팔선을 터놓고 일반인과 더불어 화합할 때 벌써 엄병덤벙 허송세월하다가 아주 죽어 버리는 때를 보내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2. 금욕(禁欲) 욕심 가운데 제일 무서운 것이 색욕(色欲)이다. 색욕 때문에 나라도 망치고 집안도 망치고 자기도 망친다. 이 색욕 때문에 나라를 다 망쳐도 뉘우칠 줄 모르는 것이 중생이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데에서도 이것이 제일 방해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것이 하나뿐이기 다행이지 만약 색욕 같은 것이 둘만 되었던들 천하에 수도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색욕이란 무서운 것이니 이 색욕에 끄달리게 되면 수도는 그만두고라도 지옥도 피할래야 피할 수 없으니 도(道)를 성취하고 실패하는 것은 색욕에 이기느냐 지느냐하는 데에 달렸다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무서운 색욕을 근본적으로 끊으려면 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안된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네 마음도 믿지말라’고 하셨다. 만약 ‘색욕을 끊지 않아도 수도하는 데 관계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자기가 색욕에 끄달리어 남까지 지옥으로 끌고 가는 큰 악마인 줄 깊이 알고 그말에 절대로 속지 않아야 한다.
영가(永嘉)스님 같은 큰 도인도 항상 경계하였으니, ‘차라리 독사에게 물려 죽을지언정 색을 가까이하지 말아라. 독사에게 물리면 한번 죽고 말지만 색에 끄달리면 세세생생(世世生生) 천만겁토록 애욕의 쇠사슬에 얽매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되니 피하고 또 멀리 하라’ 하였다.
이 얼마나 지당한 말씀인가?
만약 이것을 끊지 못하면 항상 애욕만 머리에 가득차서 도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무한한 고(苦)의 세계가 벌어지는 것이다. ‘색욕을 끊지 못하고 도를 닦으려 한다는 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이다’라고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셨다.
옛부터 참으로 수도하는 사람이 자기의 생명을 버릴지언정 색은 범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니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서로서로 멀리하여야 한다. 만약 가깝게 하면 결국은 서로 죽고 마는 것이니 서로서로 범과 같이 무서워하고 독사같이 피하여야 한다. 어떠한 인격자라도 이성을 믿지 말고 친근하지 말지니 성과(聖果)를 증득하기 전에는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성들의 호의는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지 사절하여야 한다.
오직 영원한 자유를 위하여 일시적인 쾌락을 끊지 못하면 이는 인간이 아니요 금수보다도 못한 것이다. 생사윤회의 근본은 애욕에 있으니 애욕을 끊지 않으면 해탈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남녀가 서로서로 멀리하는 것이 성도(成道)하는 근본이니 절대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3. 천대(賤待)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 남에게 질줄 아는 사람이다. 무슨 일에든지 남에게 지고 밟히고 하는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
천대받고 모욕받는 즐거움이여,
나를 무한한 행복의 길로 이끄는도다.
남에게 대접받을 때가 나 망하는 때이다. 나를 칭찬하고 숭배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수도를 제일 방해하는 마구니이며 도적이다. 중상과 모략 등의 온갖 수단으로 나를 괴롭히고 헐뜯고 욕하고 해치고 괄시하는 사람보다 더 큰 은인은 없으니, 뼈를 갈아 가루를 만들어 그 은혜를 갚으려 해도 다 갚기 어렵거늘 하물며 원한을 품는단 말인가? 나의 공부를 방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제거해 주고, 참는 힘을 많이 북돋아 주어 도를 일취월장케 하여 주니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을까?
칭찬과 숭배는 나를 타락의 구렁으로 떨어뜨리나니 어찌 무서워하지 않으며, 천대와 모욕처럼 나를 굳세게 하고 채찍질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 은혜가 아니랴. 그러므로 속담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미운 자식 밥 많이 주고 고운 자식많이 때린다’고 하니 참으로 금옥(金玉) 같은 말이다. 항상 남이 나를 해치고 욕할수록 그 은혜를 깊이 깨닫고 나는 그 사람을 더욱 더 존경하며 도와야 한다.
한산과 습득스님이 천태산 국청사에 있으면서 거짓 미친 행동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모욕과 천대를 받고 있었다. 그 주의 지사가 성인인 줄 알고 의복과 음식을 올리며 절하니 한산과 습득스님이 크게 놀라서 외쳤다.
‘이 도척놈아, 이 도적놈아!’
그리고는 도망쳐 달아나서는 다시 세상에 보이지 않았다.
나옹스님은 남에게 대접받지 않고 미움과 괄시를 받기 위해서 일부러 도적질을 다하였다. 이것이 공부인(工夫人)의 진실방편(眞實方便)이다.
최잔고목(推殘枯木)! 부러지고 이지러진 마른 나무 막대기를 말함이다. 이렇게 쓸데없는 나무 막대기는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는다. Eof나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 땔 물건도 못 되는 나무 막대기는 천지간에 어디 한 곳 쓸 곳이 없는 아주 못 쓰는 물건이니, 이러한 물건이 되지 않으면 공부인이 되지 못한다.
결국은 제 잘난 싸움마당에서 춤추는 미친 사람이 되고 말아서 공부 길은 영영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이 없는 대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 버리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버림받은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당하는 사람, 살아나가는 길이란 공부길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불법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사람, 쓸데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천태지자대사 같은 천고의 고승도 죽을 때 탄식하였다.
‘내가 만일 대중을 거느리지 않았던들 육근청정(六根淸淨)의 성위(聖位)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어른 노릇 하느라고 오품범위(五品凡位)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지자대사 같은 분도 이렇게 말씀하였거늘 하물며 그외 사람들이랴.
이 글은 성철 큰스님께서 처음 출가한 승려들로 하여금 퇴보하지 않는 신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에서 지어두신 글들을 청리한 것으로, 올 봄에 나온 성철스님 법어집인 「자기를 바로 봅시다」에 들어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