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나후라다(羅候羅多) 존자

다음 게시물
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87년 09월 67호
존자는 가비라국(迦毘羅國) 사람이었다. 교화를 하면서 실라벌성(室羅筏城)에 있는 금수(金水)라는 강에 이르러 그 물맛이 몹시 달고 강 한가운데에 다섯 부처님의 그림자가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이 강의 위를 거슬러 오백리쯤 가면 승가난제(僧伽難提)라는 이가 살고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일천 년 후에 거룩한 법을 계승하리라 하셨다”고 말하고는 대중들을 이끌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에 이르나 과연 승가난제가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존자와 대중이 함께 삼십칠일을 기다려서야 그는 선정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곧바로 존자가 물었다. “그대는 몸이 안정한가. 마음이 안정한가.”승가난제가 대답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안정합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안정하다면 어찌 들고 나감이 있는가.” “들고 나감이 있지만 선정의 고요를 잃지는 않습니다. 마치 금이 우물 안에 있는데 금의 본체는 항상 고요한 것과 같습니다.” “금이 우물에 있거나 금이 우물에서 나왔거나 금에는 풍요와 고요함이 없다고 하면 과연 무엇이 들고 나는가.” “금이 움직이거나 고요하다 하나 어떤 물건이 들고 나겠읍니까. 금이 들고 난다 하더라도 금은 요동하거나 고요한 것이 아닙니다.”
존자의 물음이 계속 되었다 “금이 우물에 있다면 나온 것은 어떤 금이겠는가. 금이 우물에서 나왔다면 안에 있는 것은 어떤 물건이겠는가?” “금이 우물에서 나왔다면 안에 있는 것은 금이 아니요. 금이 우물에 있다면 나온 것은 물건이 아닙니다.” “그 이치가 옳지 않다.” “존자의 주장이 분명치 않습니다.” “너의 이치는 져야 한다.” “존자의 주장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의 이치는 이미 이루어졌나니, 나는 곧 나 없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 없음이라 한다면 다시 어떤 이치가 이루어집니까?” “나는 나 없음이므로 그대의 이치를 이룬다.” “당신은 누구를 스승으로 섬겼기에 이와 같은 나 없음을 얻었읍니까. 나는 당신을 스승으로 삼고자 합나다.” 이렇게 승가난제가 마음이 활짝 열려 출가하기를 원하니 존자가 말했다. “그대의 마음은 자유롭다. 나에게 매인 것이 아니다” 하고는 바로 승가난제에게 법을 전해주며 게송으로 말했다.

법을 실제로 증득한 것이 없고
취하거나 여의지도 않았다
법의 있음과 없음이 형상이 아니나
어찌 안팎이 일어나리요

존자가 법을 전한 뒤에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드니 대중들이 탑을 세워 기렸다. 때는 전한(前漢) 무제(武帝) 이십팔년 무진(戊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