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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풍부, 질적 부실의 단체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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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7년 05월 183호
단체가 필요한 까닭

시대가 변화할수록 인간의 활동 폭이 다양하게 넓어지고 아울러 인간의 욕구 또한 그것을 반영한다. 곧 인간의 욕구는 시대를 반영한다.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여 산업사회에 들어섰고 지금은 그 단계가 더욱 발전하여 한편으로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있지만 반면 그만큼 인간의 새로운 욕구를 충동하여 결국 끓임없이 인간을 허기지게 한다. 좀 세련되게 표현하면, ‘소외’라고 하는 이 허기짐을 메우려고 인간은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특정한 활동을 벌여 목적한 바를 얻고자 노력한다.
아직 사회적 생산력이 높지 않던 시대에는 이런 인간의 노력이 주로 개별적 차원에 머물렀고, 또 집단적 차원에서 일어났다 하더라도 자연 발생적이거나 일회적 성격이 강했다. 그 목적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 곧 ‘원초적 생존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고대 노예사회에서부터 중세 봉건사회에서 발생한 민란어 그 대표적인 보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봉건사회의 후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노력은 좀더 ‘조직화’ 되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대항도 가능하게 되었다. 옛말처럼 ‘사람 입이 열이면 쇠도 녹일 수 있다’ 는 집단의 위력을 인간은 목적 의식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지신들만의 조직을 꾸리는 최고의 형태는 ‘당적 조직’ 일 것이다. 강령과 규약이 명확하고 조직원의 의무와 권리가 정확하게 지켜지는 당적 조직, 곧 정당은 국가 권력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또는 그 권력을 보완하든지 대체하기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벌인다. 조직원의 수적 확보와 함께 조직원에 대한 교육으로 당이 추구하는 이념을 습득하게 하고 나아가 이들이 당력의 원천인 대중과 밀접한 생활을 하도록 요구한다. 당의 형태에 따라 얼마쯤 그 원칙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몇 가지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은 고대 이래로 인간의 활동을 통해 성립된 조직의 원칙이기도 한데, 먼저 민주주의 일반의 원칙이 적용된다. 조직원의 직접적이며 평등한 권리에 바탕한 선거와 민주적 대의제가 보장되어야 하고, 다수는 소수를 존중하고 소수는 다수를 따라야하며 당의 중요한 의사 결정은 공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의 공식적이라 함은 공개의 의미하고는 별개다. 이외에 보고와 확인의 원칙이라든지 지도와 피지도의 관계, 당원의 개념과 소정의 절차 등이 전적으로 엄밀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당적 조직이지 못한 조직도 이 원칙을 준용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념이나 의지 또는 희망사항은 어디까지나 ‘관념’ 의 세계에 있을 뿐이다. 그것이 현실에 실재하기 위해서는 대중과의 결합을 통해 물리력을 갖춰야한다. 사상이 아무리 좋아도 대중과의 결합이 없다면 그저 공허한 노름에 불과하다. 인간이 단체를 꾸리는 것은 이념이나 의지 또는 희망사항을 물리력, 곧 운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당적 조직이든 그 히위의 개념이든, 아니면 친목모임이라도 모든 집단적 활동은 ‘운동력’ 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현대의 첨단 정보 통신시대를 맞아 이른바 가상공간-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조직 활동, 심지어 가상정당의 출현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 역시 어느시기에는 그 물리력이 가상공간을 벗어나 실제의 운동력으로 사용하려는 점에서, 형식의 차이만 있을 뿐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

단체 전성시대를 맞아

요 몇 년 사이 들어 불교계는 단체의 전성시대를 맞고있는 듯하다. 80년대 중후반 군부독재의 전횡 아래에 있던 시기와 견줄 때 그 양적, 질적 성장은 참으로 발전하였다. 과거 민중 불교운동이라는 창구를 통해 사회운동을 조직하고 활동한 경험을 잇고 발전시키는 단체를 비롯하여 환경운동단체, 인권운동단체, 시민운동단체 등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신행을 위주로 활동하던 단체들도 변화된 사회 조건에 맞춰 더욱 새로운 영역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다. 신행과 사회복지 활동을 접합시킨 봉사활동이 그러하며 기존 각 종단간의 융화를 목적으로 구성된 종단협의회 산하에 소비자보호위원회 등을 설치하여 사회적 역할을 드높이려는 시도 역시 활성화되고 있음이 교계 단체의 현황이다. 이들의 활기찬 활동으로 오히려 과거 사회운동을 주도하였던 단체들이 상대적으로 침체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에도 몇몇 단체가 새로 결성되어 수적인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갈라진 민족의 한쪽이 몇 년 동안 자연재해와 정책적 실패로 인해 굶주림을 겪고 있는데 이를 동포애로 함께 극복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민족 서로 돕기 불교운동본부’ 등은 대단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종단 차원에서 이 운동에 높은 의지를 보여 앞으로 통일운동으로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교계에 새로 결성되는 단체 가운데 목적이 불분명하다든지, 이왕에 존재하고 있는 단체들과 목적이 중복되기도 하여 꼭 이런 단체가 결성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또 기껏 큰 목소리로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출발한 단체가 얼마 가지 않아 있는둥 마는둥 희미한 단체도 있다. 조직의 기본원칙은 그만두고라도 몇몇 개인에 의해 틀만 유지하는 단체도 꽤 많고 기왕의 조직을 대체하며 탄생한 ‘중앙신도회’ 는 탄생 직후부터 대표의 독단적인 행보로 말미암아 휘청거리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단체 전성시대를 맞고 있으나 그와 함께 단체가 참조직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어야 할 때이기도 하다.

내실로 다져지는 단체가 되길
교계의 단체 가운데는 전국적인 연합체도 상당하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와 같이 오랜 역사와 자체 재생산 구조를 갖춘 단체를 비롯하여 청년들의 전국조직인 ‘대한불교청년회’ , 교수들로 조직된 ‘교수불자연합회’ , 여성들로 구성된 ‘여성불자연합회’ 등 계층과 부문의 전국조직이 있으나 이런 전통 있고 전국적 회원 구조를 갖춘 조직들조차 그 안을 들어다보면 대단히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은 한동안 분열의 진통을 겪기도 하였으나 최근 재정비를 통해 전열을 가다듬은 단체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내적인 통합력의 약화와 정체라는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절 독재정권의 반민주적 통치에 맞서 사회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훌륭한 기여를 한 조직들도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가운데 최근 대표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불교인권위’ 는 거의 활동이 중지된 상태이며 대표의 구속 이전에도 조직적인 활동보다는 개인의 열정으로 단체가 운영된 탓으로 대표 구속은 곧바로 조직의 마비로 이어졌다. 비단 ‘인권위’ 만이 아니라 지금 교계 단체들 가운데 태반은 사정이 엇비슷하다.
가혹한 지적이 될지 모르지만 교계 단체 기운데 과연 조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조직은 거의 없다. 단순한 신행단체도 나름대로 정령과 규약, 회칙이 버젓이 있지만 정작 그것에 근거한 총회조차 제대로 치루지 못한 회원에 대한 강제나 의무 불이행에 대한 제재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취약하다. 하긴 중앙종회마저 총회의원의 불참으로 번번히 유회되고 있는 종단 사정이니 교계 단체의 사정이야 말해 무엇하랴만은 자성할 바가 적지 않다. 교계 단체들의 목적에는 거의 틀림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중생의 고통에 동사섭하고 나아가 사회의 정토화를 이루겠다는 원력이 명시되어 있다. 이런 원력의 실천은 대중과 결합할 때 실재의 운동력을 가질 수 있다. 흔한 말로 물을 떠난 고기가 살지 못하듯 대중적 기반이 없이 몇몇 개인의 열정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은 생명력이 회박하다. 따라서 현대 난립하다시피 하고 있는 교계 단체들 사이에 유사한 계층, 부문조직은 상호 과감하게 통합하는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당사자들은 이런 제안이 그저 제안을 위한 제안이라고 일축할지 모르지만 심사숙고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대중의 자발적 조직이 참으로 조직답게 건설되기 바라는 마음을 곁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