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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다간 쇠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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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진열 1997년 05월 183호
한국불교의 경우, 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일제-해방 이후 지금까지 교단사 흐름을 일괄해 보면 생로병사같이 생주이멸生柱異滅하는 운명(?)을 읽을 수 있어 마음 무겁다. 조선의 가혹한 교단 탄압여파도 있겠지만 비구승단이 갖는 구조적인 생리의 취약점이 고질화되어 불교 전체의 미래를 암울하게 민들고 마는게 아닌가 싶다. 이런 취약점을 보완할 대안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승단(이부대중)은 물론 교단(사부대중)이 쇠몰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문제를 푸는 핵심은, 대부분 그냥 지나치고 말지만, 소승 승단과 대승 승단의 구조적 생리나 종교철학적 실천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학계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본주제의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
교리 발달사 면에서 소승불교는 초기불교와 부파불교를 씨잡아 부르는 말이며, 여기에 4아함경(經藏), 5분율(律藏), 족발지론(論藏)이라는 소승 3장이 있다.
이는삭발염의한 출가수행자 비구(니)들의 종교철학적 체계와 비구(니)들의 일상 생활규범을 세밀히 제시한 내용이다. 한마디로 승단 곧 비구(니) 집단의 이념과 철학 그리고 생활성이나 제도를 온전히 알려주는 게 소승 3장이다. 실질적으로 소승 승단을 통제하고 운영하던 율장은 이름 그대로 조직을 이끄는 생명줄이자 밑바탕이었다. ‘계율을 스승으로 삼이라’-석종의 유훈-는 것이나 제 1 , 2, 3차 결집들의 동기가 한결같이 승단의 존속과 효율적인 통솔에 있었음을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계율이 없는 승단은 존재할 수 없고, 계율의 준수가 곧 승단의 존속임을 금과옥조로 믿게 된 전통을 낳았다. 이 신념은 비교적 보수적인 대다수 승니들의 머리에 깊게 박혀 있는 철칙이다. 이 철칙을 들고 나오면 어느 누구도 승니로서 여기에 대응할수 없다. 만일 철칙에 반하는 논지를 꾀하면 그것 자체가 이미 승단의 관건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비구(니)라면 결코 승단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율장을 부정할 수 없다. 율장에 의해 비구(니)가 되며 승단이 현실적으로 존속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승니로서 계율을 비난하면 그는 가사를 훔쳐 두른 사마외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율장은 비구(니) 승단을 규제하는 현실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법이다.
이러한 율장에 따라 소승 승단은 교세를 확장해 현재도 남방불교권에서 국교로 대우받으며 자기네가 ‘정통불교’ 라고 자랑할 만큼 자긍심이 대단하다. 승단이 국가적 보호 아래 존속하기 때문에 승니들은 율장에 더 충실하게 수행정진해 나아갈 수 있으며, 그런 만큼 사회적으로도 높은 대우를 받는다. 이런 남방의 승단위치와 환경 덕분에 승니들은 율장대로 수도에 정진할수 있고 갈등과 위신 추락등은 최소화되는 ‘보호막 속의 안정’ 을 기할 수 있어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이에 견주어 대승 교단은 애초부터 부침을 거듭 겪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대승 집단은 보살들의 조직으로 가나gana라 했고 스스로를 ‘대승’ 이라 하면서 비구(니) 승단을 소승’ 이라 폄하했다. 이에 비구(니)들은 ‘대승은 불설佛說이 아니며 사마외도설이라’고 맞대응했다. 대승경전들은 재래 4아함경설과는 사뭇다른 바, 비구(니)들이 주장하는 대승비불설은 분명히 맞다고 인정된다. 대승의 무엇이 그토록 비구(니)들의 비판 대상이 됐는가?
우리는 보통 대승의 교리 발달사를 대승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고 각각 해당 경전들을 열거하고 있다. 대승의 실천 덕목과 생활상은 적어도 대승 초기 경전들 -「법화경」, 「화엄경」, 「유마경」, 「금강경」 등-을 통해 알 수 밖에 없는데, 오늘날 이 방면의 연구 성과를 요약하자면, 비구(니) 승단(僧伽)과 보살 집단(가나)의 교단적인 특색이 서로 많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승가는 4아함과 율장을 전승하고 수지해 왔는데, 가나는 독창적으로 경장을 창작 편집해 갔다. 물론 가나에도 지역과 집단적 특정에 따라 다른 여러 보살 종단이 있었다. 따라서 각 가나는 저마다 그들 니름대로 편찬하고 수지한 경전들을 전했다.
둘째, 승가는 직접 통솔하는 힘을 지닌 율장이 전승돼 온 반면, 가나에는 나름의 (대승)율장을 편찬하지도 않았으며, 적어도 대승 초기에는 승가 융장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저 십선계 정도로 가나 통솔을 대신했다 -이 가나의 무율장無律藏때문에 향후 가나(들)는 부침과 곤욕을 치르지 않을수 없었다.
셋째, 승가에 입단하려면 율장의 3사 7중제에 대과 수계작법으로 가능하지만, 가나에선 그런 작법 없이 그저 시방제불 앞에 서서 소속 가나에 입단한다는 서원만하면 가능했다.
넷째, 승가에는 율장을 따라 삭벌염의하고 출가하여 신명을 바쳐 율장을 준수하지만, 가나엔 그런 제한이 없이 자유로웠고 재가나 출가를 기리지 않았으며 석존의 진정한 성신(法)을 따르려 했다.
다섯째, 율장에 따라 출가수행하는 이들을 ‘비구(니)’ 라 했고, 가나에선 6바라밀을 찬하는 이들을 ‘보살’ 이라 했다.
여섯째, 승가에선 계율을 지켜 아라한이 되는 것이 목적이고, 가나에선 6바라밀을 실천해 중생을 제도함이 목적이었다.
일곱째, 승가에서는 내가 눈을 떠야 남을 구할 수 있다는 선득보리후도중생先得菩提後度業生에 입각하여 수행 정진하지만, 가나에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오히려 6바라밀행의 공덕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보리를 증득할 수 있다 하여 먼저 6바라밀행으로 중생 구제하는 것을 강조했다.
여덟째, 승가에서는 세존이 29세에 출가해 육년 동안 고행과 수도를 거쳐 비로소 성도한 다음에 사십오년 동안 중생 제도를 했다지만, 가나에서는 세존의 성도는 단순히 육년의 고행과 수도에 있지 않고 과거 수억 겁 이래로 6바라밀을 실천한 공덕의 결과로 금생의 육년 수도로 성도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홉째, 따라서 승가에선 자리自利 곧 내가 먼저 깨쳐야 한다는 상구보리가 늘 화두로 지리잡고 있지만, 가나에선 이타利他 곧 바라밀행에 의한 중생 제도가 늘 중심 과제다.
열째, 자각을 위해 승가에선 세간과 떨어진 고로한 곳에서 수행함을 근간으로 삼지만 가나에선 각타를 위해 세간 속에 뛰어들어 6바라밀행으로 함께 갔다.
열한째, 자각을 위해 비구(니)는 일체의 육체노동이나 세간사를 떠나 오로지 지계하고 수도할 뿐이나, 보살은 각타覺他를 위해 육체노동은 물론이요 필요한 세간사를 하며 6바라밀행을 이어 왔다.
열두째, 승가에선 종래로 집단생활을 하며 불음계不淫戒를 무거운 덕목으로 삼았지만 -이것이 비구의 청정성이다-, 가나에선 반드시 집단생활을 요구하지 않았으며-자유생활-불살생계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조직의 효율성 면에서 가나의 집단력이 미약해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열셋째, 승가는 출세간의 생활 구조이지만 강력한 집단력으로 계속 승가를 유지해 왔으며, 가나는 세간의 생활 구조에 가깝게 생활불교를 지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기부터 집단력을 잃고 승가에 흡수당하는 운명을 겪었다.
열넷째, 승가에서는 무소유가 원칙인데, 가나에선 능소유能所有였다.
열다섯째, 승가의 무소유, 비노동, 비생산 원칙에 따라 소비재- 생활필수품- 를 전적으로 시주물에 의지했다. 가나에서는 능소유, 노동, 생산활동으로 소비재를 자급자족하기도 하고 시주도 받았다.
열여섯째, 승가에서는 반드시 세간사를 떠나 출세간도를 닦아 열반에 드는 것이 원칙이지만, 가나에선 반드시 세간안에서 성불도를 닦는다.
열일곱째, 승가는 건전한 지탱과 존속을 위해 국가의 정치적 보호가 제도로 돼 있을 때 발전하는 구조를 지닌 반면, 가나는 세간 속에서 성불도를 이루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조직의 생활화 내지는 세속화를 초래했다.
열여덟째, 승가는 정치적 보호막이 없는 경우 늘 정치 저력이 승단을 정화한다는 명분 아래 법난을 일으켰던 역사를 갖고 있다. 가나는 대승 종기 이후 승가에 흡수당해 사리졌다. 이것이 가나의 승가화인데, 보살 집단의 주체가 승가 출신 곧 비구(니) 보살. -대승비구-로 이행됨과 동시에 점점 비구(니)로 대체됨을 의미한다.
열아홉째, 대승 비구는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종교적인 요청에 따라 소승 율장을 빌어다 수행하되 사상 교리만큼은 대승을 표방했다. 그리하여 개인적으로는 비구 행세를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보살행을 한다는 수행자의 이중체계를 갖게됐다.
스무째, 우리나라는 대승불교권으로 대승경전들을 수지하면서도 교단의 주체인 승단 비구(니)들은 율장을 지니고서 수행 교화한다. 우리나라 교단사도 생활규범은 율장적이요, 사상과 교리는 대승적인 6바라밀에 따르다 보니 숱한 갈등과 소용돌이가 속가에서 점철되어 왔다.
스물한째, 율장대로 하면 대승(보살도)은 수용될 수 없고, 대승대로 하면 율장을 수용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이 둘을 합쳐 놓은 셈이니, 소승대로 잘 수행함도 아니요 거꾸로 대승대로 잘 교화함도 아닌 어정쩡한 교단풍토를 이루고 말았다. 이는 지금 우리가 도전받고 있는, 승단 내외의 갈등 요소이며 진퇴양난의 상황을 이끌었다.
남방불교처럼 니라에서 보호하는 비구(니) 수행 집단이 되든지 아니면 대승 초기 가나의 정신을 따라 ‘세간 생활이 곧 불교’ 가 되는 대승 보살 집단이 되든지 해야된다고 믿는다. 어정쩡한 상태는 마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격이라서. 결국 어느 쪽도 달성하지 못하는 실패를 낳고 말 것이다. 나의 견해로는 우리 승단은 그 어느쪽으로도 발전할 기미가 전혀 없다. 이는 비극이다. 이대로 가면 결국 쇠몰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