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형.
몇 년 만에 편지드립니다.
양지바른 처마 밑엔 제비꽃과 민들레가 삼월 삼짓날이 오기 전에 피었습니다. 앞도랑 쐬음달에는 얼음이 남아 있고요. 민들레와 제비꽃은 아마 이월 금적쯤 된 것 같습니다. 민들레가 만발하자면 한참 있어야겠지요.
마당에서 타작을 할 땐 초가을에 마당 수조를 했지요. 어떻게 하느냐고요. 마당에서 발로 밟는 도곡기로 타작을 할 땐 마당이 깨끗해야 하니까, 마당에 진흙을 고루 흩어놓고 물을 뿌려 발로 밟아 잘 이긴 다음 흙칼질을 하듯 삽으로 골고루 밀어 다듬은다음 좀 굳어지면 왕겨를 뿌려 밟고 판판한 방망이로 다듬이질 하듯 금간 곳을 두드려 거의 마르면 왕겨를 말끔히 쓸어내고 티작을 했습니다.
상일꾼 둘이서 한사십 단 훑으면 벼알이 한 섬쯤 됩니다. 얼굴에 땀이 송송 솟아나요. 그 때 손을 바꿉니다. 비질로 지푸라기를 쓸어내고 종가레-나무로 만든-로 벼를 끌어모았지요. 타작을 논, 밭에서 한다음 부터는 마당 수조는 않게 됐습니다. 그래서 마당은 온통 민들레밭이 되었습니다. 오전 열시쯤 되면 민들레 꽃이 만발합니다.
민들레는 봄에 만발하지만 가을에도 드문드문 핍니다. 인동꽃도 봄, 가을 두번 피고요. 봄에 핀 민들레가 가을에 다시 피는지, 봄에 미처 피지 못한 놈이 가을에 피는지 살펴보지는 못했습니다. 제비꽃과 민들레가 이른봄에 피어나는 들꽃을 대표하는 꽃이랍니다. 지난해까지는 제비꽃에 그다지 마음쓰지 않었습니다. 왜냐구요, 제비꽃 피면 얼마 없다가 제비가 왔으니까요. 지난해에는 제비가 와서 한참 조잘거리다 사라졌다 며칠 뒤 다시 왔다가더니 영영 오지 않었어요.
혼자 살다보니 제비한테 마음을 쓰게 됩니다. 왔을 땐 많은 이야길해요. 떠날 땐 말없이 가구요. 새끼도 한 배가 아니라 두,세 배 칩니다. 그 옛 친구가 지난해에는 오자마자 가 버렸어요. 내가 꽤 잘못했구나, 큰 실망을 안겨줬으니 가는구나 싶었고, 정말 귀한 친구를 잃어버린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올봄엔 제비꽃 핀 걸 보고, 올해는 제비가 올까 했는데 삼짓날엔 안 왔어요. 딴 새소리를 제비소리로 착각하면서 기다렸는데 초 나흘날에도 나타나지 않아 인직 권 선생님한테 “거긴 제비 왔니껴” 물었더니, 인직은 농약을 많어 쳐서 제비 안 온지 오래 됐다고 해요. 상주 덕훈이한테 물었더니 지난해에는 왔는데 올해에는 못봤다 하고, 영양 쪽에 물었더니 지난해 모 심을 때 봤다고 했습니다.
제비꽃 보며 생각했습니다. 제비꽃은 제비가 온다고 기뻐서, 님이 온다고 단장을 하듯 피어나는데, 님이 오지 않아도 필까. 몇 년을 기다려도, 십 년을 기다려도 제비가 오지 않으면 제비꽃도 피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비는 동물이고 철 따라 옮겨다니며 살고, 제비꽃은 식물이라 뿌리박고 사니까 동물보다는 더 오래 살겠지만 새가 사라진 다음에 숲은 쓸쓸할 것 같아요. 그래서 옮겨다니는 놈보다는 뿌리박고 사는 놈이 덜 고단하고, 더 지탱할 것 같아요. 크게 보아서 동물보다는 식물이 기본이구나 싶네요.
하늘 높이 유유히 떠돌던 솔개가 사라진 지는 아득한 옛날이고, 앞산에 집짓고 살던 황새도 육이오 뒤부터 깜깜 소식입니다.
자꾸 떠나가는데 무엇을 보자고 부처님이 오시겠어요. 허허 벌판에서 통곡을 하자고 오시겠어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보지도 듣지도 못하듯 부처님도 이천오백 세가 넘으셨으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꼴을 듣도 보도 못하게 되셨을 것이니 참 다행입니다.
우리 마을에선 다섯 마리에서 열 마리쯤 소를 먹이는 집이 너덧 집 었습니다. 사료 먹이고, 주사놓고, 시맨트 바닥에서 키웁니다. 하루 일 킬로그램씩 몸무게가 불어야 수지가 맞는답니다. 빨리 살찌라고 발요촉진제, 항생제를 쓴답니다. 눈에 불을 켜고 인정 사정 없습니다. 미친 사람같습니다. 소똥을 감당하지 못해서 마구 버립니다. 비가 오면 냇물로 떠내려옵니다. 지금 내는 온통 풀밭으로 변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혈관이 꽉 막힌 셈입니다. 피가 통하지 못합니다. 십 년 전만 해도 장라철에 며칠씩 비가 와서 무집이 터지고 냇물이 둑을 넘을 만큼 굽이쳐 흘렀는대, 마른자마가 생겨냐고, 굽이치며 넘쳐날 듯한 문구비도 못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장마 지고 큰물이 지나간 다음에는 언제나 깨끗한 백사장이 펼쳐졌는데 이젠 내 안에 실개천이 생겨 간신히 물이 흐르다 마르다 하고 풀이 길길이 우거졌습니다.
한두마리 먹일 땐 소는 들판에서 풀뜯고, 꼴과 여물로 푼 죽을 먹고, 소는 식구 대접을 받았습니다. 속담에 “솥에서 나온 것치고 소죽과 빨래 말고는 다 먹는다”고 했는데, 소 먹이다 보면 소죽맛을 보게 됩니다. 너무 짜지는 않나, 쉬었나 싶어서요.
이젠 안 그래요. 소나 닭 돼지 개가 평생 흙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무기징역수처럼 우리에 갇혀 억지로 사료 먹고 주사 맞고, 싱싱한 꼴 한번 먹어 보지 못하고, 죽을 때도 무게 많이 나가라고 물주사 맞고 잡힌답니다. 당하는 소도 소지만, 그렇게 잔인하게 짐승을 다루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 그래도 자식 키우고, 예수 믿고, 부처 믿고, 회개하고 등 달고 헌금한다고 속죄될까요. 되야할까요. 그까짓 짐승인데 아무렴 어떠냐고? 짐승 학대하는 놈 사람학대 더 합디다.
이 쪽엔 불고기집 즐비하게 늘어서고 저 쪽엔 큼직큼직한 병원 서 있데요. 실컷 자시고 잇몸쑤시고 나오시는 분님들 시차를 두고 줄줄이 병원으로 가셔서, 우리에서 도살장에서 억울하고 무참하게 당한 짐승들의 비명소리에 높은 이자를 붙여 치르게 하는 공평함이 벌어지는구나 싶습니다.
시골에서 첫째 가는 공해가 축산터입니다. 골짜기마다 종기처럼 축가가 이렇게 들어섰습니다. 둘째가 과수원인데, 한해 동안에 열 번 넘게 약을 칩니다. 아예 농약으로 코팅을 해요. 또 밑으로는 비료와 제초제를 퍼붓습니다. 아래 위로 당합니다. 무참하게 가지를 끊습니다. 나무꼴이 처참하고, 나무껍질은 참 아름다운 것인데, 사람한테 당한 사과나무 껍질은 흉측합니다. 그 나무껍질에서 흐느끼는 비명소리가 들려지는 않지만 보입니다.
나무의 그 흉측함은 나무의 흉측함이 아니라 인간의 흉측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나무를 짐승을 사람이 저희들끼리 서로 학대해서 돈을 번다. 아무탈 없을까.
인과의 법칙은 소리없이 흔적없이 다가오는데 아무리 큰 등도 그걸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부처님께서도 돌아앉으시겠지요.
형 안녕.
97. 4. 15 우정 올림.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