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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수 없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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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천호 1997년 05월 183호
창호지에 어른대는 달빛에 문을 열고 도량으로 나섭니다. 춥지 않은 시월의 바람이 꽃향기를 몰고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탑 주의를 맴돕니다. 삼경이 지나 모두가 잠든 시간, 도량은 온통 고요로 숨죽여 있습니다. 꽃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달빛이 내리는 소리가 다 들릴 것만 같은 도량의 고요는 쉬이 잠들지 못하는 자의 불면의 넋두리를 다 받아줄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 깨어 있어 지켜 보아야 할 세상이 있고 누군가 깨어 고뇌해야 할 승가가 있는 이 땅에서 쉬이 잠든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뜻 없는 서성임일지라도 한번쯤은 바라보고 한번쯤은 고뇌해야 하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사문의 양심이라는 생각이 이 밤 강하게 명치끝을 강타합니다. 이무도 바라보지 않고 누구도 고뇌하지 않는 세계와 승가라면 그것은 너무도 추한 모습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도량을 거닐며 생각해 봅니다. 부처님이 오시면 이 땅의 승가를 어떻게 보시고 어떤 표정을 지으질지. 아마도 부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실 거라는 생각이 둡니다. 당신의 뜻과 말씀의 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오늘 우리의 승단을 향해 당신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실 겁니다. 우리의 승단은 그만큼 많이 망가져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공동체인 승가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처님은 기슴을 치실 것입니다. 화합과 이해보다는 능력과 경쟁의 속성을 부지불식간에 배워버린 우리의 승단은 이제 중생이 깃들고 싶어하던 더이상 법의 보금자리만은 아닙니다. 청빈하고 청정해야 할 승단이 비대해지고, 부패해지는 것은 결국 오늘의 승가를 사는 우리 승려 모두의 잘못입니다.
오늘의 승려들은 불교의 발전을 외형적인 비대와 신도 수의 양적인 확산으로 가늠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불교의 발전은 아닙니다. 불교의 발전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승려 각자의 내적인 치열한 구도정신에 있다는 것을 모두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외형적인 발전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언제나 치열한 구도정신의 부산물로서만 기능해야 할 것입니다. 치열한 구도정신이 주라면 외형적인 불사나 포교는 객의 자리에 있어야만 합니다.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바뀌어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승단의 모습입니다.
얼마 전 종단의 양식있는 승려가 지적했듯이 우리 승단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문제들을 정면으로 대응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꺼내면 창피스럽고 얘기하면 승가를 욕되게 한다는 소극적인 자세만 견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안으로는 썩어 고름이 되는데도 누구도 칼을 들고 그 환부를 도려내려 하지않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셔서 승단에 발을 들어신다면 당신의 안색은 심한 노여움으로 굳어질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사제들의 세상에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내려 오겠다고 통보를 합니다. 그 통보를 들은 사제들은 깜짝 놀라 야단이 납니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소리칩니다. “내려오지 마세요. 여기는 우리가 잘 알아서 할테니까 아무 염려 마시고 하늘나라나 잘 지키세요” 타락한 사제들은 겁이 났던 것입니다. 그들의 부귀와 설 자리를 잃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우리의 위치를 돌아봅니다. 우리 승려들에게 지금 부처님께서 내려오신다면 우리의 표정은 어떨까요.
곧 부처님의 탄신일입니다.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는 육도에서 윤회하는 중생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다생겁래의 서원 때문이었습니다. 승가는 바로 그 서원의 결정체입니다. 승가가 존경받고 귀의처가 되는 것은 서원의 실현이 승가에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만약 승단이 중생의 믿음을 저버리고 이권과 부도덕으로 얼룩져 있다면 승단에 몸담고 있는 승려들의 삶 또한 너무나 부끄러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승단은 획질히 사부대중 모두에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 있음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승단의 모습은 누추해 가고 승려의 삶은 날로 부끄러워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출가 수행자로서의 비원을 안고 출가하던 그 날, 우리들의 모습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 형제를 등지고 출가의 도정에 오르던 그날 우리들에게 있는 것은 명예도 부도 권세도 그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성불의 비원만이 우리들 가슴 속에서 활화산처럼 타올랐을 뿐입니다. 그 비원의 불길이 있었기에 우리들은 부모 형제의 눈물과 자신의 못다 이룬 꿈마저 그 불길의 불밥으로 태우며 출가의 도정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지상에서 가장 아픈 이별인 출가는 그렇게 우리들 삶의 뚜렷한 명제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출가 사문이라면 누구나 출가하던 그 때의 순간들과 아픔 속에서 치성한 불길로 솟아 오르던 비원을 잊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원의 완성을 위하여 뼈를 깎는 수행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시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잊고저 해도 잊을수 없는 그 순간들과 다짐이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의 승단과 우리들 삶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해지기만 합니다. 왜? 하고 소리쳐 물어보지만 겹겹이 쌓인 시간은 그 물음을 삼킬 뿐 대답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명예와 부와 편리를 찾아가는 시간의 물결 속에서 우리 모두 그 물결에 휩쓸려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승단의 현주소도 승려의 참다운 모습까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곳까지 떠내려 왔다는 생각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모습의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출가 시의 그 아픈 비원과 부처님의 말씀이 너무도 또렷한 등불이 되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를 혼돈의 늪으로 밀어 넣은 그 시간의 물결보다도 거센 반동의 힘으로 우리 승단과 출가 사문들이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리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중생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승단, 그리고 부처님이 지금 당장 오셔도 기쁨의 미소를 함박지을 수 있는 승단이길 발원해 봅니다. 이제 법당에 올라가 새벽이 올 때까지 절을 하며 굳은 서원의 향을 사뤄야겠습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