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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보살의 청복淸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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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은 경구 - 영덕 1997년 05월 183호
검은 가방 하나를 가슴에 소중히 안고 푸름한 안개에 젖은 플랫폼 위에 서 있었다. 기적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머잖아 기차가 도착할 모양이었다. 때로는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한없이 서 있는데 윗볼을 스치며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흰옷 자락에도 슬픔이 묻어 있었다. 결국 기차를 타거나 기다리는 배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는데, 여러 날, 이런 꿈을 되풀이할수록 차츰 말수가 줄어 들었다. “보얗게 필 나이인데 저 아인 이상해요.” 아버지에게 건네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낮게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훌쩍 차를 타고 경주에서 내렸다. 초행길이지만 곳곳이 낯익은 길을 따라 불국사에 도착하니 때마침 「법화경」 산림법회가 있었다. 입제식을 마치고 며칠 동안 심검당에서 묵었다. 월산큰스님의 존안을 뵙고 법어를 들었고 법화경法華經의 일인자라고 소개받은 상묵스님의 강의를 초롱초롱 맑은 눈으로 기쁘게 들었다. 칠십 여 명의 노보살님이 손을 잡아주며 귀여워한다. ‘애기 보살이 복도 많구먼.’
모두 잠든 밤이면 뜰에 나가 다보탑전 돌사지를 안아 보기도 하고 한뼘한뼘 석가탑을 어루만질 때 도량에 드리워진 솔가지 끝에서 푸르게 빛나던 태극상대성… 간간이 댓잎 스치는 소리가 섞이던 그밤의 고요속에서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한 기쁨에 잠을 설쳤다. 먼길을 떠돌며 기난과 누추로 세월을 보내던 궁자나 옷 속의 보배를 알지 못하는 이, 불난집에서 위급함을 모르고 놀고 있는 아이가 바로 자신임을 알았을 때 나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서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이미지는 상불경 보살님이었고 지금도 이 품을 가장 좋아한다.

우담바라 꽃이 때가 되어야 피어나듯 미묘한 법도 시절 인연이 닿아야 설하는 것. 너희는 여래의 말을 믿어라. 여래의 말은 결코 허황하지 않느니라. 여래는 오로지 한 가지 큰 인연으로 세상에 출현하니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 청정하게 하기 위함이며, 여래의 지견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중생에게 부처의 지견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여래의 지견에 들어가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깊은 의미가 담긴 말씀을 알아서 의심을 버린다면 너희들은 부처가 될 것이다.
「방편품方便品」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가 열반한 뒤에 사부대중을 위해 이 경을 설하려면 그는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이 경을 설해야 하리니 여래의 방이란 모든 중생에게 자비스런 마음이요, 여래의 옷이란 부드럽고 화평하고 욕됨을 참는 마음이며, 여래의 자리란 모든 존재의 공空한 그것을 말함이라.「법사품法師品」

만일 보살이 말세에 이 경을 해설하려면 첫째는 모든 존재의 실상을 관찰하여 행함도 없고 분별도 없이 욕을 참는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부드럽고 화평하고 착하게 순종하며 행할 것이며, 둘째는 말세에 이 경을 설하려면 남의 허물과 경전의 허물 또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말며 칭찬도 말라. 남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안락한 마음으로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도록 하라. 질문을 받더라도 소승법으로 대답하지 말고 대승법으로 해설해서 모든 지혜를 얻도록 하라.
「안락품安樂品」

회향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개나리와 진달래가 섞어 핀 길을 바라보았다. 아지랑이 속에서 아물거리는 삼계화택은 그래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 되어 차창밖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