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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여행과 구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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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철 1997년 05월 183호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시대에 살고있다. 스님들의 해외여행은 이미 일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지라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예전의 「대당서역기」를 남긴 현장 법사나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스님의 해외여행은 법을 위하여 목숨을 건 구도 행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스님들의 해외여행은 대부분 관광의 성격이 짙은지라 교단내부에서조차 “꼭 가야 하는 여행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그 소비성을 우려하는 형편이다.
법을 위해 몸을 버리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행이 아니라 몸을 위하여 법을 잊어버리는 ‘위구망법爲軀忘法’의 유람이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가 그것이다.
법현法願(337~422)스님은 그의 기행문 「불국기佛國記」에서 “나쁜 귀신과 열풍이 많다. 이를 만나게 되면 모두가 죽기 마련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도 없고 땅 위를 달리는 짐승도 없다. 사방을 쳐다보아도 방향조차 잡을 수 없었으며, 다만 죽은 사람들의 뼈만을 표지판으로 삼을 뿐이었다라고 하였으며, 의정義淨(635-713)스님은 「대당서역고승구법전」에서 “구법의 길을 떠난 사람이 백 명이 넘으나 돌아오는 수효는 열 명이 채 못되니 후대 사람들어 어찌 고인의 어려움을 알겠는가’ 하여 당시 구법여행의 어려움과 각오를 오늘날까지 생생히 실감나게 전해주고 있다.
당시 해외로 가는 길에는 산적들이 지주 출몰하여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가진 것 다 빼앗기고 목숨이라도 부지한다면 그건 운이 좋은 경우이다. 겨우 어떻게 살아남아도 계속 자연의 악조건과 싸워야하고 목마름과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가다가 사람이나 낙타나 말의 죽은 시체가 발길에 채이면 여기까지는 제대로 왔다는 표지판으로 여겨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하는 그런 형편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죽어서 남의 안내표지판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도 담담히 받아들여야했다.
이처럼 구법여행은 신심과 원력 그리고 강인한 체력과 불퇴전의 정신력 그리고 구도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만 비로소 떠날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런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효스님은 아예 여행 자체를 포기하였다. 신라에서 당나라로 가던 도중 무덤 속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해골물을 마신 뒤, 이튿날 아침 ‘진리는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도 찾을 수 있다’ 는 사실을 확인한 까닭이다.
관광유람을 구도여행으로 착각하고 나다니는 세계화 시대의 출가자들은 “후학들아, 꼭 해골물 한잔마셔야만 정신 차릴래. 시주물 그만 낭비하고 돌아오너랴” 하는 선지식의 근심스런 꾸중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겠다.
공부를 위한 만행인지, 놀이를 위한 여행인지는 출발하기 전에 스스로 점검해 볼 일이다. 시대는 달라도 그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므로.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