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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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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상문 1997년 05월 183호
한 친구가 고등학교 동기생들의 모임에 나와서 투덜댔습니다. 자신이 구두닦이 취급을 당해서 얼마나 불쾌한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두를 닦고 만원짜리로 값을 치렀는데, 거스름돈이 모자란 구두닦이가 밖으로 잔돈을 바꾸러 간 사이에 공교롭게도 이십대 여자들이 들어와서 의자에 나란히 걸터앉더니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친구에게, 바쁜데 빨리 닦지 않고 뭣 하고 있느냐고 짜증을 내더랍니다. 친구가 불쾌해 하는 것은 그 여자들의 무례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지신의 얼굴이었습니다. 제 얼굴이 고작해야 그렇게 밖에는 안 보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달라졌습니다. 적당히 기름을 발라서 빗어 넘긴 머리 모습이며, 값비싸고 중후해 보이는 옷차림까지는 그렇다 해도, 도수도 없는 안경까지 코위에 걸친 꼴이 보기에 민망할 지경이었습니다.
그 뒤에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모여서 광릉에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를 그 날만은 ‘장관님’으로 예우하기로 몰래 결정해 놓은 터였습니다. 대기시켜 놓은 차에 탔을때, 너 그렇게 차리고 나오니까 꼭 장관같다야 하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 그래! 누가봐도 장관님이다. 멋져! 근사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다른 친구들이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만 얘를 장관님으로 부르자. 오늘 놀러가는 데서도 알아서 후하게 대접해 줄지 누가 알아? 장관님과 그의 친구들이라고 하면 좋잖아. 그런 데서는 보사부 장관이라고 하면 더 끗발이 서겠지….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1일 장관’에 취임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놀린다 생각했던지 멋쩍어하던 그 친구도, 곧 그게 아니라고 이해했는지 어깨를 펴고 헛기침까지 해 가면서 재미 있어 했습니다.
‘관명사칭’ 으로 친구를 기쁘게 해주자는 우리의 음모는 제대로 들어 맞았습니다. 그리고 제법 그럴듯한 결론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이란 사십대 후반을 넘어서면 어느 자리에도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 둥, 그만큼 한 인생 체험이 축적된 나이에도 어느 자리에서 별나 보인다면 그만큼 수양이 모자란 사람이라는 둥….
그래서 그의 별명이 ‘장관’ 이 되었고, 이 별명을 좋아하는 그가 술까지 한차례 근사하게 사기도 한 것입니다. 그 뒤에 다시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기색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누는 가운데, 이 사람 저 사람을 입에 을려서 찧고 까불어대는데, 그 친구가 느닷없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비참한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이야기가 한보 청문회로 흘러가 있던 참이라서, 그가 어울리지 않게 사회 정의니 역사 정의니 하면서 떠들어대려는게 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좀 엉뚱했습니다. 청문회에 불려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자신을 많이 닮은 것 같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위엄이 있고 품위가 있어 보이던 기업인이고 국회의원이며 장관이었는데, 수의를 입고 앉아 있는 얼굴들을 보니 그 옷 또한 썩 잘 어울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인즉슨, 오죽 카멜레온처럼 살아왔으면 그런 얼굴을 가졌겠느냐, 오죽이나 위선적인 삶을 살아왔으면 제 얼굴을 못 가졌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를 위로했다는 게 병을 만들어 준 꼴이었습니다.
그의 결론은, 어떤 사람이 어느자리에나 어울리는 얼굴을 가졌다면, 그만큼 진실하게 살아오지 못했다는 증표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절대로 제 별명을 부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별명을 부르면 화를 낼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하긴 그래! 그 때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습니다. 차마 입 밖으로 소리내어서 말하지 못한 것은, 도무지 내 얼굴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저 나름의 특징 있는 얼굴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까이는 나의 어머니가 그렇고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그 동안 한없이 자식들만 사랑해 온 얼굴이니까요. 그 분들은 ‘사모님’이나 ‘장관님’ 으로 오언받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멀리는 카톨릭 제주교구의 본당 신부인 친구가 그렇고, 절집에 사는 가까울 친구인 스님도 그렇습니다. 이때껏 남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들이니까요. 이들이 어디에 있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겠습니까.
모임이 끝난 뒤, 술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내 발에 밟혔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느냐 보다는 지금 확보하고 있는 사회적 위치가 절대 중요하고,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 보다는 지금 얼마를 갖고 있느냐가 절대 중요한 세상이 만들어 낸 수많은 얼굴들이었습니다.
기회다 싶으면 남보다 앞서서 잽싸게 이 쪽으로 옮겨 붙고 저 쪽으로 옮겨 붙어서, 말을 바꾸고 얼굴을 바꿔 가면서 악착같어 붙들고 늘어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숨겨 놓은 얼굴들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까지 온 뒤에도 쉽게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가슴을 달래 보려고 쳐다본 하늘에는 초생달만 떠 있었습니다. 진작에 별이 지워진 서울의 하늘이 키 큰 낙엽송 꼭대기에 무겁게 걸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히늘조차 제 얼굴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용케 초목들은 제 얼굴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엽송은 낙엽송대로, 목련은 목련대로, 쥐똥나무는 쥐똥나무대로, 그리고 잔디며 민들레며 나팔꽃은 그것들대로….
새삼 인간의 삶이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삶을 고해苦海라고 했던가요….
수십 년 동안 목표를 두고 정진해 온 결과로서 갖게 된 얼굴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삶을 살아왔다면 얼마나 보람찰까…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다가, 혹시 내가 그런 얼굴들을 모독하고 있지나 않나 하고 섬짓 놀랐습니다. 그들이 그 길을 걷는 동안에 겪은 고통이 그 얼마인지, 내가 짐작이나 할수 있는 주제인가 해서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나는 천주교 재단이 운영하는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불교 재단이 운영하는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어느 종교도 확실하게 갖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어느쪽을 가질 생각이든 부지런해야 할 텐데 게으른 천성이 발목을 붙들고 놔주지 않은 탓입니다. 사정이 그렇고 보면, 집에 들어간 내가 몸을 씻으면서 들여다본 화장실 거울에는 반거충이의 얼굴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종교 문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얼굴이든 또렷이 그려낼 수 있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딱하게도 그 친구처럼 아무 곳에 있어도 어울리는 얼굴로 굳어진 것입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