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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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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바라봅시다 - 이죽내 2001년 03월 229호
한恨이란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는 말인 듯하다. 우리는 일상에서 ‘한 맺힌 사연’이니 ‘한풀이’ 등 한과 관련된 표현들을 듣고 있다. 그러나 한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은 억압, 좌절, 절망 그리고 미련과 희망 같은 것이 복합된 마음의 상처와 같은 것일 것 같다.
어떤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병든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발병은 고등학교 2학년 초였다. 환자는 외아들로서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겉으로 봐서는 아무런 어려움없이 자랐다.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도 상위권에 들었고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중학교 때처럼 상위권에 들 수가 없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하면서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머리 나쁜 것은 아버지 머리가 나쁜 탓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따르던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점차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사람 만나기를 피하고,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망상 때문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 환자의 병은 부모의 지나친 기대가 중요한 원인이었다. 어머니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전까지는 직공으로 일하였고, 아버지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이들은 결혼 후 현재 환자인 아들을 놓고, 이 아들만은 훌륭히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단산했다. 그리하여 부모들은 온 정성을 자식에게 쏟았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는 공부 잘하는 것이었다. 자식은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속사정을 부모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자기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는 기미를 채고 물었으나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부모에 대해 적대감을 표출하였다. 부모는 자식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는 그들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자식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는 것을 몰랐다. 지나친 관심은 언제나 관심을 갖는 자에게 문제가 있다. 이 부모의 경우,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이루지 못한 소망을 자식을 통해 성취하고자 함이었다. 그런 소망은 어느 정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소망이 한과 연결될 때는 한풀이로 나타나게 된다. 한풀이는 병을 만든다. 병은 또다른 한이다. 한의 심리를 자각하지 않는 한, 한은 한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밟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한은 우리 민중의 한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민중은 역사적으로 ‘가난의 한’, ‘짓눌린 한’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역사는 단일민족국가로서 일찍부터 국가형성의 단계를 거쳤으나 서양식 정치발전의 여러 단계를 밟아나가지 못한 전제군주의 역사였다. 그런 역사적 과정 속에서 지배자와 민중의 관계는 주종관계로 고착되어 버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조선시대이다. 지배자와 민중은 철저한 주종관계로서 민중은 관官의 지배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민중은 관官의 수탈대상이었다. 이를테면,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에서 “백성들은 토지로써 논밭을 삼지만 관리들은 백성들로써 논밭을 삼는다. 백성의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으로써 농사짓는 일로 여긴다”고 개탄하고 있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조선조에 이은 일제 식민지하에서도 민중은 착취수탈정책의 대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은 열등감, 무력감, 무가치한 감정에 사로잡혀 한恨맺힌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한의 심리는 민중의 감정과 정서 속에 박힌 상처, ‘집단적 콤플렉스’가 되었다. 민중은 한의 상처를 노래에 실어 달래왔던 것이다. 우리들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이 그런 것이다. 또한 지배계급에 대한 원한을 인형극이나 가면극을 통해 조롱과 해학으로 달래기도 했다.
광복이 되자 서구의 자유와 민주의 바람이 불게 되었고 법적으로는 만민이 평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억압되었던 한이 한풀이의 형태로 풀려나기 시작했다. 특히 한풀이는 자녀들에 대한 교육적 열의로 나타났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한을 자식들이 풀어줄 것을 갈망했다. 부모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자녀교육을 시키고자 했다. 그 교육열은 거의 강박적일 정도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물론 교육열로 인해 우리 사회가 급속히 발전한 것은 사실이나, 교육 본래의 모습은 잃어가고 있다. 교육이 출세의 수단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출세란 자기실현이라기보다는 권력과 금력의 쟁취였다. 그러기에 대학진학에 있어서도 자신의 적성이나 취미와는 무관하게 권력과 금력이 보장되는 대학이나 학과에 집중되어 왔다. 이런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데는 본인보다는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자식은 부모의 한풀이의 대상이 되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 한풀이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다. 실패한 사람은 실패 그 자체가 새로운 한이 되었고, 성공한 사람은 사회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와 내 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이기적인 생각과 형태는 부정부패 등 도덕적 타락과 사회적 불신으로 연결되었다.
우리는 ‘배고픔의 한’은 해결된 셈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한풀이의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짓눌린 한’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배고픔의 한’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짓눌린 한’을 해결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짓눌린 한’을 풀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자각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지도계층의 반성과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물리적인 힘의 논리만이 지배되는 억압적인 우리 사회와 권력의 장악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의 정치 현실은 일반 대중의 ‘짓눌린 한’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대중의 자각은 현실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힘없는 대중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새로운 한을 만들 뿐이다. 지금까지 정권들은 자신들을 위한 정권이었고 국민들과는 동떨어졌다. 심지어는 자신들이 잘못해 저지른 책임은 모두 국민에게로 돌렸다. 그들은 책임을지지 않았다. 국민들은 억눌리고 당하기만 했다. 한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정치적 무관심으로 나타났다. 물론 수년 전부터 민중 중심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종의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는 한계가 있다. 지도층이 진정한 민중의 역사에로 물꼬를 터야 한다.
우리는 원래 신바람을 일으키는 밝은 심성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억압적인 정치사회풍토를 청산하고 좌절과 한의 심리를 극복하여 신명나는 삶, 건강한 삶을 드러내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과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