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안 되는 일이 있는가, 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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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법의
2001년 03월 229호
삼년 전, 대장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어떤 경계에 부딪쳐도 부동심으로 마주해야 할 이순耳順의 나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 때 부처님을 원망했었다. ‘부처님 제자가 되어 수십년 동안 누구 하나 해코지한 적 없건만, 아니 험한 소리 한 번 안 했건만 어떻게 제게 이런 병을 주십니까’, 그렇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순간 잘못한 것 하나가 문득 떠올랐으니, 출가 후 무수히 참회했던,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단 한 번의 ‘잘못’이었다. 고의적으로 지은 ‘잘못’을 시작으로 내 지난날 지나왔던 행자시절을 돌이켜볼까 한다
일천구백오십년대 중반쯤이었다. 탁발승 한 분이 우리 집엘 들렀는데, 자세히 보니 예사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동글납작한 얼굴은 백옥처럼 희었으며, 깊은 눈매는 초롱초롱 빛나는 것이었다. 물에 불린 쌀을 솔잎가루와 함께 먹는 걸 보고 있으려니 신비스럽고 존경심마저 우러나는 것이었다. 이튿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분을 따라 탁발에 나섰다. 앞장서 동네를 안내하고 다녔는데,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 사흘을 묵고 그 분은 바람처럼 떠났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날부터 탁발승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집을 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 해 후였으니, 스무 살 안팎이었다. 그런데 집을 나올 때 집에서 내라는 세금을 들고 나온 것이 앞서 말한 내 ‘잘못’의 내용이다. 만석군의 아들로 양조장을 경영했던 아버지가 내라는 세금이었으니 아마도 액수가 꽤나 되었을 것이다
교단 정화가 막 시작된 법주사에서의 규율은 엄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세상 탓에 법주사엔 행자가 스무 명이나 되었다. 그 당시 대중 스님들이 오륙십 명이었으니 스님들 공양 준비하랴 시봉하랴 바쁜 나날이 시작되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던 주경야독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선후배 사이의 규율이 얼마나 엄격했던지 하루만 먼저 출가를 했어도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규율과 엄격함이 두고두고 중노릇 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밥을 태운 날엔 대중공사가 열려 죽비로 얻어맞아도 절집에 사는 것이 즐거웠다. 불교가 뭔지 몰라도 무조건 모든 게 좋았고, 대중스님들의 참선하시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신심이 차오르던 나날이었다
행자시절 중 제일 힘들었던 일은 ‘나무 지키기’ 였다. 불법벌목이 횡행했던 때였는지라 날이면 날마다 행자는 물론 대중스님들까지도 동원되어 사찰림을 지켰는데, 벌목하는 이들이 스님들에게 달려들어 톱으로 찍은 적도 있을 만큼 살벌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금이야 어림없는 일이지만 살기 어려운 시절에 일어났던 세상사의 한 단면이 아니었나 싶다
여러 행자들과 함께 지내다가 삼개월이 지나자 주지 스님을 시봉하게 되었다. 주지 스님을 모시러 가보니 지금 평불협 회장으로 있는 법타 스님이 스님을 시봉하고 있었다. 내 은사 스님이 되신 추담 스님은 이북 함흥 출신으로 선승이며 학승이셨다. 정화에 힘을 쏟았던 스님께선 금산사 정화를 끝내고 법주사 정화를 하기 위해 사리각에 머물고 계셨는데, 법타 스님과 나는 스님을 모시고 한방에서 자며 예불도 드렸고 시봉도 했다. 우연히 고향도 같았던 우리는 한 번도 다투는 일없이 정답게 잘 지냈다. 그 이후 떨어지지 않고 거의 함께 지냈으니 좋은 인연인 듯하다
밤에 자기 전 스님의 틀니를 찬물에 닦아 놓았던 일이나, 드시기 좋게 우유를 적당히 데워드렸던 일, 당뇨가 있었던 스승에게 여섯 해 동안 빠짐없이 인슐린 주사를 놓아드렸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자청해서 행자시절을 남보다 몇 곱절 더했다. 스승을 곁에서 모시고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은사 스님을 닮았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내 은사 스님은 성격이 강직한 분이었다. 스님은 당신을 시봉하는 우리들에게 늘 말씀하셨다. ‘남의 장점을 말하되 단점은 가급적 말하지 마라.’ 칭찬이란 것이 한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살찌우는지를 그 분은 우리에게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당신의 시자들이 우애 있게 지낼 것을 늘 이르셨고,‘언제나 솔직하라’고 말씀하셨다. 출가수행의 길에 있어 스승의 가르침은 물과 같아서 그대로 스며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년간을 상대방에게 내가 속는다 하더라도 단점을 얘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비록 더디더라도 기다려 스스로 고치게 만드는 쪽을 택하고 있다.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안 될 때는 보다 못해 불러다 아주 완곡하게 타이른다. 후학은 물론 사무직원에게도 그 원칙은 한결같다
돌아보면 그렇다. 행자시절은 스승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배우고 하심을 익히는 시기다. 하심이란 무엇인가.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일이다. 내가 제일 밑바닥이라고 생각해 보라, 상대보다 내가 더 멍텅구리라고 생각해 보라,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다. ‘내가 제일이다’라는 한 생각 때문에 세상에 시비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하심법문下心法門을 많이 하곤 한다. ‘무슨 일이 안 되는가. 그렇다면 조건없이 하심하라. 그리고 부처님 말씀을 생활에서 그대로 실천하라. 그러면 안되는 일은 없다’고. 하심은 또한 참회하는 일이다. 절에 와 부처님께 복을 달라고 매달리지 말라. 그릇을 비워야 복이 담기는 법이다. 그릇을 비움은 무엇인가. 참회하는 마음이요, 하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심을 익히는 행자시절은 그릇을 비워 복을 담을 준비를 하는 시기인 것이다
내게 내려졌던 사형선고는 잠시 유예를 거쳐 해제 중에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부처님 제자가 되어 살아온 은덕이다. 죽음과 마주했을 적,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관음주력’으로 기도하면서 부처님께 그랬다. ‘부처님, 저 건강 회복되게 해 주세요. 부처님과 오래만 살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던 이년 후,꿈인 듯 생시인 듯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었는데. 손목만 있는 하얀 손이 쑤욱 올라오는데 보니, 가운데가 갈라진 베이지색 약이 소복히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먹으라고 내밀기에 삼켰더니, 그 길로 몸에 변화가 왔고 이제는 거의 회복 중에 있다
몸이 좋아져 다시 붓을 들었다. 허물어져가는 포교원 두 곳의 불사준비 때문이다
올 오월에 전시회를 열어 불사에 보탤 생각이다. 부처님 은덕에 살아났으니, 내가 받은 그 은덕을 세상에 다시 회향해야 하지 않겠는가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 아래에서 먹을 갈고 있으면 출가사문이 되어 살아온 나날이 고맙고 행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