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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지에서의 기록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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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蘭雪軒 - 김선우 2001년 03월 229호
법고(만다라)

문을 들어설 때쯤 이 별의 모퉁이는 태양의 반대편으로 스윽 제 몸을 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잔광…. 오래 달려온 빛의 마지막 거처가 적송 우듬지에서 일순 환해집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법고 소리. 저녁 예불을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날꽃의 욕망을 무위로 쓸어안아 보듬으면서 법고 소리, 순연한 지화紙花 몇 송이로 내 발 밑에 눕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지화를 밟으며 나는 조금은 두근거렸고 내 두근거림이 또 조금은 겸연쩍어 흠, 흠, 잔기침을 두어 번 뱉으며 운문雲門에 당도하였습니다. 운문사. 누이의 거처인 이 곳을 수차례 들락거렸건만 이상하게도 이 최초의 두근거림은 쉬이 여위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는 인간의 세상 속에서 다치고 무뎌져 감동 없는 내 마음밭에 혹여 남아 있을 두근거림을 찾아내기 위해 이 곳에 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막 서른을 넘어섰을 뿐인 당신이 옛날엔… 반짝이는 나뭇잎만 봐도 막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었는데…. 라고 말할 때, 그 ‘옛날엔…’ 이라는 말의 슬프고 아득한 뉘앙스.
꿈 없는 시절을 배회하면서 한 생이 늙고 ‘꿈 없음’에 적응하기 위해 제 꿈의 사지를 절단해 가면서 우리는 한 사람의 공인된 ‘사회인’이 되어 갑니다. 이 무모함, 이 유전되는 결핍의 궁극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야누스는 완전한 ‘일탈’과 완전한 ‘적응’의 두 얼굴을 쳐들고 봤냐? 내 얼굴 봤냐? 빙글빙글 웃곤 하지요.
그럴 때면 문득문득 솟구치는 살의. 그러나 내 살의는 나조차도 해치지 못하고 스러지곤 합니다. 생의 한 페이지에 견고한 갑골문자만 또 가득 새겨지지요. 갑골 속에서, ‘파각破却’이라는 말을 앙다물어 발음해보며 하루가 힘겹게 저물던 날들입니다.
아, 저것. 불현듯 만나진 종루 위의 만다라. 둥글고 커다란 법고 앞에서 한 비구니의 자줏빛 가사 자락이 펄럭이며 소리를 띄워 올립니다. 그 소리의 주름을 따라 겹겹이 포개어진 꽃잎들이 열리며 만다라화가 피어나기 시작하는군요.
전신으로 하나의 원圓에 면벽하여 간구하고 두드리고 휘몰아가고 가쁜 숨을 내모는 사이, 하나의 원, 하나의 공명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든 빛들이, 모든 음音들이 단순하여 아름다워 집니다.
저 진자줏빛 법의. 그 빛깔은 오래 퇴적된 흙빛을 닮아 있고 생채기 진 소나무 옹이가 오랜 시간 짜고 맵게 흘려온 송진을 닮아 있고 풍화된 인간의 뼈, 혹은 오래 익혀온 젓갈에서 우러나오는 육즙의 빛깔을 닮아 있습니다. 나는 한동안 법고 소리에 망연해져 있다가 종루 아래 주질러 앉습니다.
옴― 오오옴―. 이제 범종이 울리기 시작하는군요. 일체 중생이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의 업장을 멸하여 평안에 들기를 기원하는 소리라고 하지요. 어느새 종루 밑에는 옹기종기 몇몇 사람들이 모여 앉아 말이 없습니다. 호거산 허리가 석양빛에 곱게 가라앉고 있구요. 일몰의 풍경 속에 피어나는 지극한 평화, 이 묵연한 무늬들.
법고와 범종과 운판과 목어가 차례차례 제 소리의 소임을 다해가고 문득 고개를 드니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는 호거산이 긴 속눈썹을 스윽 내리감고 묵상에 잠긴 진짜 호랑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나무 둥치를 타고 오르는 연어떼가, 새끼를 품은 개똥지빠귀가, 어린 수레국화가, 그렇게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묵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나는 보랏빛 수레국화 꽃술 속의 꿀벌 한 마리를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물소리(빔)

계곡에 면한 객방에 짐을 풀고 이미 어두워진 절집 구석구석을 돌며 합장 인사를 드렸습니다. 대웅전, 비로전, 지장전, … 심지어 부엌 아궁이 위에 모셔진 조왕님에 이르기까지 누이는 한 구석도 빼놓지 않고 나를 데리고 다니며 삼배 합장을 시킵니다.
나는 원체 누구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행위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라 나의 합장은 늘 어설프고 데면데면한 것이지만 이제는 그 행위가 일깨우는 어떤 기쁨에 조금은 익숙해진 편입니다.
기쁨…, 그것은 나를 비우며 내가 가득해지는 체험이라고 할까요. 세상을 향해 완전무장한 아상我相을 잠시 허물고 나를 잊어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일. 기실 나의 오체투지는 어떤 대상에 있지 않고 오로지 나를 향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절을 올리고 내가 그 절을 받습니다….
객방으로 돌아오는 길, 배롱나무 아래 밤산책 나온 두꺼비를 만났습니다. 누이는 가볍게 그를 향해 합장 인사를 합니다. 오랜만에 밤산책 나오셨군요. 안녕? 편히 자요. 하듯이. 구름 속에 들었던 백중 무렵의 보름달이 스윽 모습을 드러냅니다. 앗, 달이다! 늘 있던 달인데도 나는 소스라치며 저 아름다운 별이 부디 천천히 늙어가기를 기원하며 합장하였습니다. 태양의 잔광을 발효시키는 별,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아 제 빛에 가둠 당하지 않는 별, 달빛은 저의 내부를 소요하는 어떤 속삭임만으로도 충만해집니다. 저 달을 두고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무수한 상징의 언어들은 얼마나 편협한 아상我相으로 똘똘 뭉친 것들인지. 그러나마나 저 달은 저의 길을 갈 뿐이겠지요.
객방에 큰대자로 누워 있었습니다. 밤은 깊고 들리는 것은 물소리뿐입니다. 전깃불을 켜놓으면 밖은 안보이고 방안만 시끄럽게 훤해집니다. 불을 꺼버렸습니다. 안이 저물어야 비로소 윤곽을 드러내는 저 바깥. 어슴푸레한 계곡의 능선으로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그 곳은 물의 누각. 물의 등뼈로 지어진 목침을 베고 누워 한잠 늘어지게 자고 나오면 당신은 호호백발이 되어 있을까 어쩔까. 그 때에도 여전히 내가 그리웠노라고 말해 줄까 어쩔까. 동종 혐오의 지병이 깊은 내가 외진 산사에서 문득 당신을 떠올리는 걸 보면 사랑도 된통 걸린 사랑인가 보지. 풋풋, 웃으며 돌아눕는데 물소리도 풋풋, 따라 웃습니다.
이상도 하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에는 세상 모든 소리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자기를 비워냄으로써 정형을 고집하지 않게 된 그것은 온갖 모양새의 돌들을 어루고 달래면서, 상처난 나무 뿌리들을 지극한 마음으로 어루만지면서, 그러나 그것에 매이지 않고 흐릅니다.
하여, 지나온 모든 것들의 기억을 조금씩 닮아 있는 물소리엔 온갖 소리들이 다 있고 동시에 없습니다. 오늘 나는 그 물소리 속에서 법고 소리를 듣고 당신의 웃음 소리를 듣고 물의 마음― 그 지극한 ‘빔’과 ‘자유로움’을 향해 긴 합장을 올립니다.□ 김선우 님은 강릉출신으로 1996년『창작과 비평』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2000년 2월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시선 194)을 낸 바 있다. 현재 한겨레 신문에 매주 서평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