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물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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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오성
2001년 03월 229호
흔히들 수행과 포교가 둘이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마련이다. 처음에야 긴장하고 챙기려 하지만 차츰 타성에 젖고 일에 파묻혀 핑계거리가 많아지면 아침예불을 빼먹기가 일쑤고 그냥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때론 증상이 심해져 자신이 누구인지, 왜 출가했는지도 의심스러울 때까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을 바꿔 놓는 계기가 있었다. 2년 전 석가탄신일부터 어린이 법회를 시작했다. 선생님을 구하기 힘들고, 요즘은 농촌에도 주말이면 가족끼리 해야 되는 일이 많아 한 달에 두 번만 법회를 하기로 했다. 거기에다 방학 때는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법회를 쉬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1년여가 흘러갔다.
작년 여름방학 때였다. 절 가까이에 사는 윤경이와 이나가 새벽 예불에 참석하였다. 윤경이네 부모님들이 다투어 친구들과 놀면서 밤을 지새게 되어 기도도 할 겸 해서 왔다는 것이었다. 혼자 마지못해 하던 차에 얼마나 애들이 반갑던지 아침 내내 다과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아이들은 다음날 또 다음날도 나왔다. 그러나 이 일이 고통의 시작인 줄 짐작도 못했다. 차츰 아이들이 불어나 도시에서 친척집에 놀러온 아이들까지 가세하여 20여 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되자 자그마한 마을이 아침이면 아이들에 의해 떠들썩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아침 예불을 빼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예불을 하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한 아이는 울고 나머지 아이들은 웃고 난리가 났다. 화를 참고서 이유를 알아보았다. 승호라는 놈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귀해 위로 누나를 다섯이나 두어서 그런지 여성적인 성향이 많은 이 아이가 지난밤에 누나들하고 놀다가 꼬임에 넘어가 봉숭아물을 들이고 합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며 ‘스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부럽다’는 말로 그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예불 후 미소를 머금은 승호의 손에는 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아이들의 눈을 보고 무언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덩치가 만만치 않은 중학생들에게 잡혔다. 열린 봉지 안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봉숭아 꽃잎이 가득했다. 나는 열 개의 손톱뿐만 아니라 발톱까지 봉숭아물에다 한술 더 떠서 매니큐어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의기양양하게 돌아간 후 어떻게 매니큐어는 지웠는데 꽃 물은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그 무더운 여름 내내 양말을 한번도 벗지 않고 다닌 위의를 갖춘 여법한 스님으로 지냈다. 그러나 손톱은 가릴 수 없어 온 마을에 소문이 가득하였다. 그 사건 이후 차츰 아이들의 부모들이 아침예불 시간에 참석했고 지난 가을부터는 매주 목요일에 경전공부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절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잡담도 하고 고민도 나누는 사랑방이 되었다.
지금 내 손에서 봉숭아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아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에는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며칠 전 시내에 사는 몇 놈이 부모님과 함께 와서는 음흉한 미소를 던지며 여름이 빨리 왔음 좋겠다고 한다. 게으른 나에게 그들은 늘 깨어 있게 하는 도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