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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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1년 03월 229호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겨울이라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성급하게 창문을 열었더니 아직도 바람이 차다. 밝은 아침 햇살로 밤새 방안에 고였던 따뜻한 공기를 내보내고 새벽 도량의 시리고 차디찬 기운을 방안 가득히 담아본다. 창문을 통해서 햇살이며 새소리, 세상이 돌아가는 온갖 소리들이 들어온다. 때로 창문은 세상과 나를 단절시켜 주는 역할도 하지만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수행자는 대부분 마음의 눈을 세상을 향해 두는 시간보다는 자기 안으로 두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다. 마음 공부가 갈무리 되지 않고서 섣불리 세상으로 마음을 향해서는 안 된다는 선지식의 가르침이 있기도 하지만, 자신의 부족한 공부가 많은 사람을 잘못 인도할 수 있다는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외부로 치닫는 번거로운 마음을 쉽게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는 더욱이 그렇다. 그래서 귀와 눈과 입을 제일 먼저 제어해야 하는 것이 마음 공부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말처럼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승가나 재가나 삶의 환경이 단순하고 소박했던 시절은 이미 먼 과거가 되어 버렸다. 생활이 많이 번거롭고 편안함에 젖어 어디서부터 절제를 해야할지 그리고 그 절제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절이다. 그래서 육근을 제어하고 담박하게 사는 사람이 귀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방과 바깥 세상을 연결해 주는 창문도 열고 닫는 시간이나 넓이가 적절해야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너무 오래 열어 놓거나 굳게 닫아 놔도 안되듯이 사람의 마음의 창도 그렇다. 사람이 마음을 많이 열어 인정이 넘치면 온정의 귀함을 잊게 하고 반면 적게 열면 사람을 작고 인색하게 만든다. 마음의 크기에 따라 사람이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한다. 흔히 사람의 마음을 크기로 말하면 온 우주를 다 감싸도 남음이 있고, 작기로 말하면 바늘 끝 하나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마음이라고 한다. 상황에 따라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수행자는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크게 열어야 하고, 또 몇 겹으로 닫아야 그 본분을 지킬 수 있을까. 수행자는 세상이 어떻든 마음 밖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양의 많고 적음에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소리를 마음 안에서 얼마나 성숙되고 바르게 만들어 내는가에 따라 그 덕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창문을 닫아 놓고 번거로운 마음을 여과하는 시간에도 고요함에 들지 못할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도 깜깜한 벽과 마주하는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런 시간이 오래 되면 주변까지 생활의 윤기를 잃게 하고 자신의 생활에도 생기가 없어서 며칠을 마음앓이를 하게 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탈출하는 수단으로 나는 작은 마음의 눈을 굳게 감는다. 눈을 뜨고도 세상을 보지 않고 귀를 열고도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것… 그렇게 마음의 눈을 감는 것이다. 수행자가 마음의 창문을 닫을 때는 수행의 향기가 고이게 하기 위함이다. 마음의 창문을 세상을 향해 활짝 열 때는 수행의 향기를 나누기 위함이다. 수행의 향기는 그저 살아가는 데서 고이는 것이 아니다. 정진하는 장소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수행의 시간이 길어서 고이는 것도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욕망을 잠재운 수행자, 나태함과 성냄 그리고 질투와 이기심을 치열하게 극복하고 원초적인 외로움을 이겨낸 수행자만이 오래 남는 향기를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