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곧 수행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혹은 자신에게 오는 아이와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 온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곧 태교수행에 있어서의 정진바라밀이다.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는 태아를 위한 정진을 생활의 중심이 되게 해야 한다. ‘부부가 일생을 어떻게 살아왔나를 알려면 자식이 어떻게 자라고 있나를 보면 알 것이다’라는 말처럼 부부의 일생에 있어 자식이 주는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다. 부모의 말 한마디,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도 바르고 따뜻하게 가지려고 노력하는 일이 중요하다. 앞에서 말해 왔듯 생활 속에서 보시하고, 계를 잘 지키고, 인욕하며, 선정에 드는 일 모두를 삶 속에 녹여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이 정진바라밀이 될 것이다. 정진하는 수행방법엔 앞의 네 바라밀이나 참선, 명상 외에 ‘염불’, ‘간경看經’, ‘진언眞言(다라니)’, ‘사경寫經’ 등을 들 수 있다.
염불은 불자들에게 친근하게 행해지고 있는 수행법이다.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을 줄여 염불이라고 한다. 부처님이 일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 분이 깨달은 법, 즉 진리는 무엇인가를 깊이 사색하는 것, 그리고 그 법을 잇고 있는 스승들의 삶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염불이다.
그러나 염불이라고 하면 대개 부처님을 호명하는 것을 가리키고 실제로 그것을 많이 행한다. 보편적으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을 호명하며 염불을 많이 하는데, 어느 것을 해도 관계 없다. 자신이 부르고 싶은 분을 선택해 호명을 하면 된다. 염불을 할 때는 염불하는 나와 염불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관세음보살 천 번을 부르는 것보다 정신을 집중해 간절한 마음으로 한 번 부르는 공덕이 더 크다. 그러므로 염불을 할 때는 지극한 발원을 세워 일념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간절함’ 하나가 곧 우리의 업을 녹이며, 어두운 마음을 밝은 마음으로 바꿔 놓는다. 조용한 곳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을 해도 좋고, 길을 걸으면서 일을 하면서 해도 좋다. 염불은 좌선과 달리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스님들도 많이 권하는 수행법이다. 사람들은 염불을 하면서 어떤 공덕을 원하는데, 모든 수행이 다 그렇듯 염불은 부르는 그 자체가 공덕이 된다.
또 경전을 읽는 것도 좋은 정진바라밀에 해당한다. 부처님 말씀, 즉 경전을 ‘문자사리文字舍利’라고 하는데, 문자사리가 읽는 이의 마음에 와 닿는 순간 공덕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 전체가 곧 태교가 되는 것이다. 경전으로는 ‘금강경’과 ‘묘법연화경’ 가운데의 보문품을 많이 읽는다. 부처님의 말씀을 읽어 마음에 새기는 일 또한 염불과 다르지 않다. 경전을 읽으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깊이 인식하고, 그 인식을 깊게 함은 곧 생활속에서 실천하게 하는 힘이 된다.
또 진언을 하는 것도 좋다.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암송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아 깨달은 분도 많다. 진언은 말 그대로 참된 말씀이란 뜻으로 일념으로 진언에 몰입할 때 마음의 때가 걷히며, 밝은 마음이 드러나면서 지혜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사경은 경전을 베껴 쓰는 수행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하나 베껴 쓰며 가르침을 이해하고 믿고 실천하는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사경을 하는 작업, 그것이 곧 선禪이며, 간절한 기도다. 자신의 진화를 발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또 성품이 올바른 참된 아이가 태어날 것을 발원하는 마음으로 부처님 말씀에 몰입할 때 자신이 쌓아온 어두운 업장이 녹고 발원한 것이 이뤄지는 것이다. 흔히 참선, 염불, 진언, 간경, 사경 등의 수행을 우열로 나누기도 하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몰입하여 수행한다면 모두 마찬가지라고 선지식들은 말한다.
하루의 어느 조용한 시간 밝은 창가에 앉아, 혹은 숲을 거닐면서, 혹은 일을 하면서 염불을 하고 경전의 말씀을 떠올려 음미해 보고, 진언을 암송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것이 곧 자신의 마음자리를 맑히고 밝히는 시간이며, 그 공덕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져 아이 또한 밝고 지혜로운 아이로 세상에 나올 것이다.
지혜바라밀,다섯 바라밀이 이뤄지는 기반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에는 두 길이 있다. ‘지혜’와 ‘자비’가 그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지혜롭게 사는 일, 그 지혜를 바탕으로 자비로운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불교인의 삶이다. 그러므로 지혜와 자비는 보살로서의 완성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다. 육바라밀에서의 지혜바라밀은 보시에서 정진에 이르는 다섯 바라밀의 주도자이며 그들이 이뤄지는 기반이 된다. ‘조건지워진 모든 현상이 공함’을 보는 것이 지혜이며, 지혜바라밀은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베풀고 계를 지니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늘 인욕하고, 선정을 닦고, 게으르지 않고 정진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지혜바라밀에 의지할 때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공포가 없고 거꾸로 된 생각을 멀리 떠나 궁극적인 열반에 이른다고 《반야심경》은 설한다.
태교에 있어 옛사람들의 지혜로운 실천방법을 살펴보자.
조선시대 실학사상가 유희柳僖의 어머니였던 사주당師朱堂 이씨는 그의 저서 ‘태교신기’에서 그 지혜로움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몸에 병이 있거든 아내의 방에 들어가 잠자리를 같이하지 말고, 상복을 입었을 때도 내침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일식과 월식이 있을 때, 크게 덥거나 크게 춥거나 큰 바람이 불거나 큰 비가 오거나 큰 뇌성이 나는 때는 감히 아내의 방에 들지 말아야 한다. 허욕이 싹트지 않게 하고 간사한 기운이 몸에 붙지 않게 한 후에 자식을 낳는 것이 아비의 도리이니라.”옛 사람들은 부부와 함께 하는 잠자리를 엄격히 제한하며 태교를 그 시작부터 철저히 했음을 보여 준다. 태교를 임산부들이 음식이나 행동을 삼가는 일쯤으로 생각하기 쉬운 요즘, 태교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혼인을 하여 그저 일시적인 욕망만으로 아이를 갖는 요즘의 세태에서 되돌아봐야 할 대목인 것이다. 천지가 좋은 날, 한 인연을 간절함으로 기다리는 마음에서 부부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도 태교수행에 있어 지혜로움을 실천하는 일이다.
‘태교신기’에서는 또 남자가 하는 태교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비의 낳음과 어미의 기름과 스승의 가르침이 모두 한가지라 의술을 잘 하는 자는 아직 병들지 않음을 다스리고,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는 태어나기 전에 가르친다. 그러므로 스승의 십 년 가르침이 어미가 잉태하여 열 달 기름만 같지 못하고, 어미 열 달이 아비 하루 낳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런 맥락에서 ‘자식은 부모의 수행결정체인 사리舍利와 같다.’고 말하고 있는 구본일 한국태교연구소 소장의 제언이 빛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치관으로 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것 말고 더 큰 지혜가 어디 있을까. 지혜로움이 자신의 삶 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올 때 좋은 인연이 자신에게로 올 것이며, 자신이 진화하는 만큼 아이도 함께 지혜로워질 것이다.
자신의 원력으로 아이를 맞자
태교수행은 어느 한 부류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조부모는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수행하고 부모는 태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자식에게 권해야 하는 것이 태교수행이다. 태교수행의 필요성을 자각했다면, 그리하여 오늘 이 시간 마음을 내었다면 이미 그것은 현실이다. 호숫가에 혼자 서 있는 수은행나무는 호숫가에 비친 제 그림자를 암은행나무로 반응하여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한 생각의 작용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예이다. 결국 우리의 일생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한 생각’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밝은 것’에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다. 좋은 인연의 아이를 맞기 위한 태교수행, 밝은 세상을 이뤄나가려는 그 원력은 그 ‘밝음’에의 지향이다.□
이상의 기획특집 \'태교\' 기사 자료는 한국태교연구소 고문 성우 스님과 구본일 소장께서 도와주었다. 두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필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