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로茶盧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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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수희심
2001년 03월 229호
차茶가 우리 나라에 성행하게 된 것은 신라 흥덕왕 때부터였고 그 후 차는 민족문화로 토착 발전하여 생활 깊숙이 스며들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차를 통하여 예절 바른 행동과 정신세계를 가꾸었으며 사색을 즐길 줄 아는 멋을 얻었다. 그러한 찬란했던 우리 민족의 차문화가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에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다.
그 원인으로는 숭유억불 정책과 중국에 바치는 차 공납의 횡포와 임란 이후의 가난을 들 수 있다. 그러다가 근세의 서구 문물에 떠밀리어 그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잠들었던 전통 차문화의 부흥은 1970년대 말부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의 소중한 전통차의 보급과 생활화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찻집을 열게 되었다.
내게 있어서 차는 처음 접할 때부터 신선한 충격이었다. 차 맛도 그러했지만 다구를 비롯하여 차 마실 때의 청정하고 그윽한 분위기에 차와의 필연적인 인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럭저럭 차와의 만남도 10년이 훨씬 지나게 되었고 나의 삶은 차로 인하여, 가난하지만 궁핍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정식으로 무슨 ‘다회’에 가서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 책 저 책을 뒤지면서 공부를 해왔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차방식’이 몸에 익었다. 다도는 의식과 격식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그저 연륜이 쌓이고 쌓여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해야 할 일이다. 그러다 보니 인근 유치원에서 ‘어린이 다도’를 강의해 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 두렵고 조심스러워 망설인다. 차를 남들에게 자주 권해도 차를 강의하는 것은 아직도 미루고 있다.
왜냐하면 차라고 하는 것은 기호식품인데 이를 형식화하는 것이 오히려 다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차는 고요하게 즐기는 게 그 본질일진대.
무엇보다 찻집을 하면서 느낀 좋은 점은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떠나서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 분들과 가까이하면서 소중한 우정을 키워 갈 수 있게 된 일이다.
우리의 삶에서는 누군가와의 만남이 중요하고 그 만남의 형태에 따라 생활의 굴레가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힘겹게 되지만 그런 숱한 만남 사이에서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은 생활의 지혜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의 하루는 찻집 문을 열자마자 먼저 향을 한 줄기 사르고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 찻물을 끓여 입안 가득 번져 오는 그윽한 차 맛을 음미하며 적당히 평화롭고 한가로운 오전을 보낸다.
거의 매일 마시지만 차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약간의 설레임과 조심스러움을 느낀다.
차와는 이렇게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지만 진정 내 삶이 맑고 청정한 차의 성품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차가 내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나를 깨어 있게 해 주었지만 하찮은 욕망들로 소란스러운 마음이 되어 밖을 향해 헐떡이며 살아온 것 같아 많이 부끄럽다.
오후가 되어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면 약간 분주해진다. 다행히 우리 찻집이 한적한 시골에 있고 넓은 창 넘어로 흰 구름 떠다니는 푸른 하늘과 야트막한 앞산을 볼 수 있어 오가는 길손들이 편안해 한다.
처음 차를 접하는 분들이 낯설어 하면 어렵지 않게 차 마시는 법을 일러 주고 차를 통하여 얻어지는 정신적인 여유 이외에 육체적인 이로움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설명을 하다보면 차 마시는 일이 자연스럽게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다소 형식에 얽매이거나 근엄함을 너무 강조하는 지나친 예의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차를 멀리하게 만드는 일이다. 가끔 ‘프로 다인茶人’들이 운문사 가는 길에 우리집에 들르곤 한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즐기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다. ‘어디 물을 쓰느냐?’ ‘누구 차를 쓰느냐?’ ‘다구는 왜 장작가마를 사용하지 않느냐?’ 하면서 유난을 떤다. 찻집에서 ‘의식차’처럼 모든 걸 갖출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없어도 되는 다관 보조도구를 요구하는가 하면 퇴수기까지 짝을 맞추어 달라고 한다. 숙우를 하나 더 달라고 해서 갖다 주었더니 찻물을 빨리 식히려고 그러는 것이었다. 찻물을 천천히 식히면서 느긋하게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차의 예법인데…….
그리고 다인들이 너무 사치스럽다. 유명인의 다구만 찾는다. 차도 고급만 쓰려고 한다. 그러니 결국 ‘돈 없으면 차 못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처음 다도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실망하여 그 번거로움에 고개를 흔들며 물러나게 된다. 소위 ‘다인’이라는 사람들의 행동이 차가 대중화되는 데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결국 차는 차인들끼리 하는 ‘귀족놀음’으로 간주된다. 오래 할수록 표정이 근엄해지고 아상我相이 붙는다. 은근히 자기의 권위를 인정해 주기를 유도한다. ‘숙우를 오른쪽에 놓아라 왼쪽에 놓아라’ ‘찻잔을 나란히 정렬하라 어째라’ 하면서 각 ‘다가茶家’끼리 서로 정통이라면서 목소리를 돋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차 마시는 장면을 내보내고 싶어도 커피로 대처한다고 했다.
‘누구의 법도냐?’ ‘어디 유파냐?’고 하면서 방송국에 항의를 해대는 통에 아예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방송국의 배려(?) 때문이라고 한다. 다인들간의 이견異見 때문에 오히려 다도의 대중화의 방편을 잃어 버린 셈이다.
차를 마시는 일은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생활화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건성으로 마셔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차의 신묘한 기운을 느끼게 되고 건전하고 건강한 생활로 이어진다.
바쁠수록 여유를 가질 줄 아는 현명한 지혜와 홀로 깊이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야 된다고 현인들은 말씀하셨다.
밤이 깊어질 즈음 가끔씩 먼길을 달려 반가운 벗들이 찾아오면 우리들은 하염없이 차를 마시며 좋은 시간을 함께 한다. 어질고 욕심 없는 사람들이라 같이 있으면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먼 들녘 아지랑이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이른 봄날, 햇살 따스한 창가에서 삶의 튼실한 씨앗을 다시 고르며 홀로 마시는 차 맛은 진정 내 삶의 향기로운 벗이리라.
만물이 살아서 움트는 이 싱그러운 봄날에 한 잔의 차를 통해 내 인생이 더 겸손하고 더 넉넉해지기를 바라며 두손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