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삼보전에 차를 올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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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오영가
2001년 03월 229호
석가 세존 재세시在世時부터 지극한 정성으로 제불보살님전에 올리는 공양은 큰 공덕이 된다고 믿어 왔다. 부처님을 일컫는 여래의 열 가지 이름 가운데 응공應供이라는 칭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그 예라고 하겠다.
응공이란 이 말은 응수공양應受供養, 즉 부처님은 크게 깨치신 분으로서 천상계와 인간계의 모든 중생들로부터 마땅히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알려진 대로 석가세존께서는 6년 동안 고행을 마치고 니련선하泥蓮禪河에서 목욕을 하고 강가 언덕에 올라 촌장의 딸 수자타가 올리는 우유죽을 받아드시고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禪定에 들어 깨달음을 여셨다. 이것을 경전에서는 ‘최초의 공양’이라고 하여 춘다의 ‘마지막 공양’과 함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왔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처음과 마지막 공양만을 가리킨 것이겠는가? 모든 공양을 일컬어 처음과 마지막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어찌 우유죽과 버섯만을 가리킨 것이겠는가? 모든 공양물을 다 말씀하신 것일 것이다.
부처님 열반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은 승가僧伽를 이루어 재가在家신도들로부터 음식이나 의복, 약 등을 비롯하여 갖가지 생필품을 공양받았다. 이렇듯 부처님이나 교단의 수행자들에 대한 재가신도들의 공양은 후세로 내려오면서 관례화되고 또 의식화되었는데 현재의 육법공양은 이것의 정형화라고 하겠다.
육법공양六法供養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초기 교단에서 불전에 올린 여섯 가지 공양물로서 향, 등, 꽃, 과일, 차, 쌀을 말한다. 이 역시 모든 공양물을 여섯 가지로 형식화시켜 놓은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절에 큰 행사가 있으면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우리 차인들은 정성을 모아 육법공양을 올리곤 했다.
청의동자靑衣童子의 도량청정 ‘향수香水의식’과 홍의동녀紅衣童女의 도량장엄 ‘산화散花의식’의 인도 속에서 불전공양의식이 이루어진다. ‘향수의식’과 ‘산화의식’은 천상세계의 천동天童?천녀天女가 하강하여 영산회상을 찬탄하며 법단을 연다는 의미라 하겠다. 푸른 옷을 입은 동자는 향수를 뿌려서 도량을 청정하게 맑히며, 붉은 옷을 입은 동녀는 꽃비를 뿌려 도량을 아름답게 장엄한다.
불단을 깨끗이 정돈한다. 그리고 불단 좌우 양쪽에 부처님의 오지五智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상의 초(붉은색, 노랑색, 흰색, 초록색, 파랑색)를 밝힌다. 그 뒤에 향, 등, 과일, 꽃, 쌀, 차의 순서로 6명(행사의 규모에 따라 인원수 조정 가능)의 공덕주가 공양물을 불단에 진설한다. 향은 오분五分(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진향을 피워 최고의 지혜를 내려는 마음에서 올린다. 등은 반야의 광명을 밝혀 온세계의 어둠을 다 비추라는 마음에서 올린다. 꽃은 핀 다음에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꽃은 해탈이라는 열매를 얻을 때까지 부단히 정진하겠다는 뜻에서 올린다. 차는 우리 마음의 근심과 질병을 없애는 감로甘露이다. 그러한 감로의 즐거움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에서 올린다. 과일은 해탈의 맛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린다. 쌀은 모든 음식을 대표하여 올리는 것이다. 모든 이의 배고픔을 덜어 주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향은 해탈향이요, 등은 반야등이요, 꽃은 만행화萬行花요, 과일은 보리과菩提果요, 차는 감로甘露이며 쌀(음식)은 선열禪悅이라고 하는 것이 육법공양의 참뜻이라 하겠다. 이 모든 것을 올린 후 뒤로 한 두어 걸음 물러난 후에 삼배로서 지극한 예경을 올리고 합장자세로 다게송을 봉헌한 후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로 나누어서 동시에 자리를 떠나오는 것이 마지막 순서라 하겠다. .
다게송은 다음과 같다.
아금지차일완다我今持此一椀茶
변성무진감로미變成無盡甘露味
봉헌시방삼보전奉獻十方三寶前
원수자비애납수願垂慈悲哀納受
제가 지금 한 잔의 차를
지극한 정성으로
감로의 맛으로 만들어(우려)
시방삼보 부처님 앞에 올리나니
자비로운 마음으로
받아 주옵소서.
이 때 공양물을 올리는 순서에 따라 인례 스님이나 진행자가 각 공양물의 발원문을 부처님전에 봉독한다. 그리고 사부대중은 호궤합장하여 “오직 바라옵건대 여러 부처님이시여, 이 공양을 받으소서.”하고 합장일배를 올리며 지극한 마음으로 합송하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환희심을 느끼곤 했었다.
이러한 육법공양의식은 우리 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래 전통적으로 봉행된 의식이었으나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그 흔적을 감추었다가 오늘에 와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잡아함경》에 나오는 말이다. 부처님이 열반하려고 할 때에 천상의 선인들이 예쁜 꽃과 과일을 올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꽃과 과일들을 천신들이 나에게 바쳤다. 그러나 여래에게 참다운 공양은 이것이 아니다.” 그러자 아난 존자가 물었다.
“그러면 부처님께 올리는 참다운 공양은 무엇입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여래에게 바치는 참다운 공양은 여래의 법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다.”즉 공양 중에 으뜸공양은 불법을 잘 닦고 불법을 이웃에 잘 전하며, 불법이 끊어지지 않게 잘 수호하는 법공양인 것이다. 헌공의식을 통하여 자기의 마음을 가지런하게 하고, 보시를 통하여 자기를 비워내는 수행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육법공양이 가지고 있는 본래 의미일 것이다.
불법에 귀의하여 감사드리고 지극한 정성으로 삼보님전에 올리는 청정한 공양은 탐욕에 가려져 있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수행이며, 구도이며, 이웃을 향한 끝없는 자비와 보살행원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육법공양의식을 비롯한 불교의식의 재연은 곧 역사 속에 사라져 간 우리의 얼과 전통문화의 맥을 되찾는 지름길이 될 것으로 믿는다. 앞으로 불교의 사대명절인 석가탄신일, 출가재일, 성도재일, 열반재일과 각 사찰의 중요한 법요식에서 육법공양의 성스러운 의식이 이루어져 이 시대의 보편적인 전통의식으로 다시 꽃 피워지기를 제불보살님전에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