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선일여茶禪一如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경성
2001년 03월 229호
불교와 차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차는 불교와 함께 전래되었고 불전에 올리는 중요한 공양물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행자들로서는 머리를 맑게 하고 잠을 쫓아주는 덕에 자연스럽게 가까이하게 되었다. 또한 선禪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다선일치茶禪一致 사상이 완성됨으로써 일상적 생명력을 가진 선다禪茶 문화를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선 《삼국사기》 에는 ‘630년경 통도사 북쪽 동을산冬乙山에 차를 재배해서 절에 공급하던 다소촌茶所村이 있었다’ ‘신라 선덕왕 때 차를 마셨다’ ‘흥덕왕 3년(828)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남쪽에 심었다’는 등의 기록이 보인다. 또 남방전래설도 구전으로 전한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비 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시집올 때 차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상의 무대가 통도사 화엄사 쌍계사 장유사 등 사찰을 중심으로 차 재배가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중국 선종의 《선원청규》의 〈불강탄조佛降誕條〉에는 ‘석가여래가 탄생하신 날에 많은 수행승들이 위의와 장엄을 갖추고 향화香花 등촉燈燭 다과茶菓로써 공양을 올린다. 주지가 상단에 처음 향을 올리고 삼배를 하며, 다시 향을 사르고 점다點茶(차를 내는 일)를 한 뒤 삼배를 하고 나서 방석을 걷는다’라고 불단의식 중에 다사茶事가 나온다.
음다飮茶의 풍속은 불가佛家의 헌다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차는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주로 스님들의 불공의식에서 출발하여 점차 왕족이나 귀족사회에 퍼졌고 다시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존경하여 드리는 헌다의식’인 다례에서 출발한 차는 점점 ‘다반사茶飯事’라는 일상적인 형태로 대중화되어 갔던 것이다.
그래서 조주 스님은 매일 차를 따르면서 납자들을 맞이하였고 차를 통하여 그들의 수행을 점검하고 또 안목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차나 한 잔 하게(끽다거喫茶去)’라는 가르침이다.
조주 스님에게 어떤 납자가 찾아왔다.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있습니다.”
“차나 한 잔 하게.”
뒷날 또 다른 납자가 찾아왔다.
“여기에 왔던 일이 있는가?”
“처음입니다.”
“차나 한 잔 하게.”
이를 곁에서 보고 있던 원주가 의아하게 생각하여 또 물었다.
“어째서 온 적이 있는 사람도 처음 오는 사람도 모두 차나 먹으라고 하십니까?”“원주! 자네도 차 한 잔 하게.”
조주가풍은 차를 통하여 선禪을 깨닫게 하고 선을 통하여 차를 알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조주 스님은 항상 모든 사람에게 차를 권한다는 ‘조주상권기천인趙州常勸幾千人’이란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신라 때 서라벌의 다인茶人 충담 스님의 이야기는 더욱 구체적이다. 삼월 삼짇날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차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경덕왕의 영접을 받는다. 그에게 차를 한 잔 대접하고는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된다면 세상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주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해인사에서도 해마다 삼월 삼일이면 가야산 중봉 마애부처님께 헌다의식을 한다.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에 강원에 ‘다경원茶經苑’이라는 차모임이 만들어졌다. 당시에 차를 즐기던 학인들의 친목모임이다. 창립기념으로 《삼국유사》에 근거하여 3월 3일날 마애불께 헌다식을 하게 된다. 그 뒤 점점 활성화되더니 88년 2월부터는 활자화된 〈다로경권茶爐經卷〉이라는 인쇄매체까지 매달 발행하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이 책은 전국 차인들 사이에 꽤 인기를 누려 합본호를 몇 번이나 묶을 정도였다. 일지암 여연 스님이 당시 교무 소임을 보면서 이 모임의 고문격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전국의 많은 차인들과 교류를 가졌고 금당 최규용 선생의 다담특강은 전 대중이 함께 듣기도 하였다. 얼마 전 소박한 장례식과 함께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주변에 알리라’는 유언을 남겨 세상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던 홍류동 계곡 언저리 강파도원의 토우 김종희 선생도 보이지 않는 후원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반하신 지족암 일타 스님의 ‘다향산방茶香山房’이라는 당시의 편액은 지금도 화장원華藏院 다실에 걸려 그 때의 분위기를 말해 주고 있다.
차가 때로는 효심孝心의 표현매체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삼국지》는 주인공인 유비가 어머니께 드릴 차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이 아끼던 칼을 파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 웅혼한 무대와 많은 개성 있는 인물들의 등장, 갖가지 지략이 난무하는 이 거대한 대하소설도 ‘차 몇 봉지’를 마련하려는 아들의 정성스런 마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것저것 다 좋지만 차는 혼자서도 마실 줄도 알아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차를 즐기는 사람은 다관에 끓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우주를 떠올린다. 어떤 날은 망망대해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심심계곡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웅장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도 자신과 우주와의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 차인의 태도이다. 비록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스스로를 관조해 본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을 뒤돌아보고 또 새롭게 추구해야 할 것을 모색해 보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차의 맛을 음미하고 인생을 음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차인이 다관에서 끓는 물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관조하며 반성하는 것이나 부처님께서 자자自恣를 행함으로 덕스럽고 청정한 길을 가도록 당부하신 것이나 결국에는 모두 중생들에게 회향하는 자비심의 한 길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차와 선을 한 맥락으로 보아 다선일여茶禪一如라고 한다. 차를 마시는 정신에 선이 있고 선하는 과정에서 차의 도가 통한다는 뜻이라고 할 것이다. 차 한 잔 마시는 속에 삼매의 도가 있음을 알 때 비로소 우리의 차 생활은 숭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