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그대의 초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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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2001년 03월 229호
사하선상립 師下禪床立하니
신호병귀읍 神號幷鬼泣이요
사상선상좌 師上禪床坐하니
용반병호와 龍盤幷虎臥로다.
선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서니
신은 울부짖고 귀신은 눈물 흘리네.
선사가 선상에 올라가 앉으니
용은 똬리를 틀고 있고 호랑이는 누워 있구나.
위산 스님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백장 선사의 초상화肖像畵입니까?”
그러자 스님께서는 선상禪床에서 내려와 버렸습니다.
다시 그 납자가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화상의 초상화입니까?”
그러자 스님은 다시 선상 위로 올라가 앉았습니다.
초상화를 아무리 잘 그리는 화가라고 할지라도 진흙을 아무리 잘 다루는 도공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선가의 어록에는 오도자吳道子라는 불화를 잘 그리는 화가와 방변方辯이라는 진흙을 잘 다루는 스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나라 때 진정극문 선사는 도반이‘내가 짊어진 것은 오도자가 인물을 그린 것인데 매우 수준 있는 솜씨를 자랑하지만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발심하여 참선공부의 계기를 만납니다.
육조단경에 방변方辯이라는 스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서촉西蜀땅 사람으로 진흙을 누구보다도 잘 다루었습니다. ‘나의 상像을 만들어 보라’는 혜능 선사의 말씀에 따라 며칠 만에 이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자 선사께서는 그 상을 보고는 ‘진흙의 성질은 잘 아는데 나의 부처 성질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구나.’라고하였던 것입니다. 위산 선사 역시 초상을 물으니 선상을 오르내리면서 당신의 모든 모습을제대로 보여 주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호남의 문수文殊 화상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승요僧繇 같은 유명한 화가가 어째서 지공誌公 화상의 초상화는 그리지 못했습니까?” “승요뿐 아니라 지공도 그릴 수 없었느니라.” “지공이 어째서 그리지 못했습니까?”
“채색과 비단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화상께서는 그릴 수 있습니까?”
“나도 그릴 수 없느니라.”
“화상께서는 어째서 그리지 못합니까?”
“그가 나의 얼굴빛을 개의치 않거늘 어떻게 나로 하여금 그리라고 하느냐?”사실 말로도 표현할 수 없거늘 어찌 그림으로 그것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초상화를 통해 주고받는 문답이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닙니다.
반산보적 선사와 보화 존자 이야기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반산보적 선사가 임종하려고 할 때에 대중에게 말했습니다.
“누군가 나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가?”
그러자 대중은 모두가 선사의 초상화를 그려 바쳤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다짜고짜 대중 모두를 때려 주었습니다.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렸으니 당연히 맞아야 할 것입니다.
이 때 보화普化 스님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저도 그렸습니다.”
“왜 나에게 보여 주지 않는가?”
이에 보화 스님은 곤두박질치면서 나가 버렸습니다.
초상화는 초상화라는 그림에 요체要諦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림 이전以前의 모습을 보는 데 그 요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림 이전의 요체를 볼 때만이 그 그림은 법이 되어 우리들의 눈을 열어 주게 됩니다. 이럴 때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의심이 되고 화두가 됩니다.
그럴 때만이 참으로 제대로 그림을 볼 줄 아는 납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초상화를 화두로 주고받은 운암 선사의 날랜 기봉은 양개 화상의 눈을 열어 주는 곳까지 이르게 됩니다.
동산양개 선사가 운암雲岩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화상께서 백년 뒤에 누가 갑자기 묻기를 ‘스님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이에 운암은 양구良久 했다가 말했습니다.
“그저 이것뿐이니라.”
이에 선사가 우두커니 생각에 잠기니 운암이 다시 말했습니다.
“이 일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자세히 살펴야 하느니라.”선사가 그래도 의심에 잠겨 있었는데 나중에 물을 건너다가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대로 딴 곳에서 찾지 말지니 멀고 멀어서 나와는 소원疏遠하구나.
나 지금 혼자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 그가 바로 지금의 나요,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다.
의당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여여如如함에 계합하리라.”나의 자성自性은 내 마음 속의 모양없는 초상화로 의심이 되어질 때만이 참으로 제대로 된 초상화가 되는 것입니다.
선가의 보전寶典으로 황벽 선사의 어록인 《전심법요傳心法要》와 《완릉록宛陵錄》은 선사의 재가제자인 배휴裴休 거사의 노력으로 오늘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배휴는 하동사람인데 신안新安 태수로 있을 때 황벽 선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황벽 스님과 초상화가 기연이 되어 안목이 열렸던 것입니다.
황벽 선사가 복건성 황벽산에 모여 있던 대중을 버리고는 대안정사大安精舍로 들어가 노역하는 무리들과 함께 섞여서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휴가 대안정사에 왔다가 조사전 벽에 걸려 있는 초상화를 보고서 안내하던 원주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승의 초상화입니다.”
“초상화는 볼 만한데 고승들은 어디에 계시오?”
이에 원주 스님은 말이 막혀 대답을 못한 채 그만 안절부절못하였습니다.
이에 배휴가 다시 말했습니다.
“혹시 이 절에 참선하는 스님은 없습니까?”
“요즈음에 한 스님이 절에 들어와 막일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참선하는 납자 같았습니다.”공이 모셔오라고 하여 희운 스님이 오게 되었습니다. 보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마침 한 가지 물을 말이 있는데 다른 스님네들이 말씀을 아끼시니, 대신 한말씀 해 주십시오.”“묻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대로 물으시오.” 그러자 공은 앞에서 했던 질문을 똑같이 했습니다.
“초상화는 볼 만한데 고승은 어디에 계십니까?”
이에 선사가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배상공!”
배휴가 놀라서 얼떨결에 대답했습니다.
“예!”
“상공은 어디에 계시오?”
공이 당장에 그 뜻을 깨닫고 마치 상투 속의 구슬을 찾은 듯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스님께선 진짜 선지식입니다. 이렇게도 분명하게 법을 보여 주시면서 어째서 이렇게 숨어 계십니까?”이 때부터 제자의 예를 올리고는 강서성 종릉鍾陵으로 모셨습니다.
선사는 자신의 출가지인 복주 황벽산의 이름을 따서 황벽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는 개조가 되니 이 때부터 황벽의 문풍이 크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위산영우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백장의 초상을 물으니 선상에서 내려왔고 당신의 초상을 물으니 다시 법상 위로 올라갔습니다. 선상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간 소식은 손님과 주인이 자리를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초상을 제대로 드러낸 것이 아닙니다.
한 망치로 때려서 그 자취를 없애 버린다면 원래가 둘이 아니라 더듬을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그 때 선상을 한 번 뒤흔들어 버렸다면 서로가 바보되는 꼴을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백장묘노면 百丈猫奴面이요 위산귀안정 山鬼眼睛이로다.
견인공해소 見人空解笑하고 농물부지명 弄物不知名이로다.
백장은 고양이의 얼굴이요
위산은 귀신의 눈동자라.
사람을 보면 공연히 헤프게 웃고
사물을 희롱하면서도 그 이름을 모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