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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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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공영희 1991년 01월 107호
어느 새 잠이 설핏 들었나 보다. 이른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 예불소리를 듣고 나서야 웬지 마음이 가라앉는것 같은 안도감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쉽사리 잠은 찾아오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고 복닥거리다 꿈나라로 향했었나 보다. 비교적 일찍 잠자리에 든 아내는 자기 직전까지 졸리운 눈올 꿈벅 거리며 투덜대는 것이었다. 무려 하루나 걸려 찾은 곳이 크고 화려하지 않은, 이름도 없는 자그만 암자인 것에 퍽이나 실망하는 눈치였다. 승철은 그러한 아내의 심정을 충분히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했다.
승철이 자신이야 본인이 오고 싶은 곳이지만 아내로서는 아내 된 도리와 의무로 같이 동행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물론 혼자서 올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서울의 찌든 공해를 아내의 뱃속에서부터 씻어내 주고 싶기도 했다. 청량하고 싱싱한 공기를 들이마신다면 문둥병이라도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맑은 산속의 숨결이 그리웠다. 그것은 도시인들이 흔히 말하는 청량제라기보다는 생명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였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다 주님을 찬양할지어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만, ‘호흡이 있는 자마다 자연을 돌아다 보라’라고 승철은 말하고 싶을 지경으로 청정한 공기와 바람이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 유혹의 근원지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는 승철이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이 암자를 생각해낸 것은 몇 주 전에 회사동료들과 3차까지 전진을 거듭하다가 마지막으로 포장마차에서 입가심으로 딱 소주 한 잔으로 마무리를 하고 났을 때였다. 승진을 했다며 동료들을 고우, 고우하며 몰았던 그가 포장마차를 나오며 한다는 말이 기가 막혔다.
“저 하늘을 보라구, 별이 저렇게 빛나잖아. 에이 씨발, 나는 저런 밤하늘을 보면 확 그 자리에서 죽고싶단 말이야.” 그 자리에 있었던 승철이를 비롯하여 다른 동료들이 깜짝 놀라 이제까지 마셨던 술들이 팍 깨는 눈치 같았다. 말을 마친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훌훌 혼자서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비실 비실 자리를 피하고 승철이만 남게 되었을 때 비로소 가슴 깊숙이에 숨어있던 그 옛날의 암자가 불현 듯 떠오르면서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 일 이후로 머리 속에서 암자가 떠나지 않았다. 한 번 들뜬 마음을 잡기에는 실행을 하고 난 후에야 잡혀지기 마련인 법이었다. 그래서 마침 연휴가 낀 어제와 오늘을 잡아 암자를 찾은 것이었다.
아내는 승철이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보며 어젯밤에 툴툴 거리던 불평을 언제했나 싶게 산 속의 공기가 정말로 맑아 폐 속의 독소까지 다 빠져나갔다며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는 것이었다.
\"아니, 벌써 나갔다 왔다는 이야기야?”
“그럼요. 잠에서 깨자마자 당신을 흔들고 꼬집기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잠들 수가 있어요?”
“너무 늦게 눈을 불인 것이 그만 그랬나 보군.”
“아무튼 당신 깨우는 걸 포기하고 답답해서 밖으로 나갔죠, 뭐.”
“그래, 잘했어. 어때, 공기 하나는 끝내주지, 응?”
“그렇다니까요. 당신은 순전히 공기 하나만을 마시자고 이곳까지 오지는 않았을것 아녀요?”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 서울 생활이 당신은 싫증나지도 않아?”
“어디 우리만 그런가요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겪는 일인데요”
“그래도 나는 싫어.”
아내는 여기에서 입을 다물었다. 가끔씩 승철이 어린애 같은 고집을 피워대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 필요도 없는 속된 말로 일생에 득이 되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애저녁에 간파를 했는지도 몰랐다.
“저는 아침까지 먹었으니까 다시 한 번 암자 주위나 돌아 볼께요”
그러더니 아내는 휭하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승철은 멍하니 방문을 바라보다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불이자 파르스름한 연기가 향불처럼 퍼져 오르고 입으로 삼켰다가 토해낸 연기는 하얗게 바래져 천장에 머물렀다.
그때, 방 밖에서 웬 아가씨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승철은 급히 담뱃불을 끄고 방문을 열었다. 울긋불긋한 옷차림을 한 한떼의 아가씨들이 등산모를 벗으며 이마의 땀을 훔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승철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오면서 눈가가 아른아른해졌다.
승철이 처음으로 이 암자를 찾은 것은 대학입시에 낙방을 한 해였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거의 2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른 셈이다. 불심(佛心)이 강한 어머니는 대학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을 하자 서둘러 어머니의 먼 친척뻘 되시는 분이 주지로 있는 두메산골의 이 암자로 승철을 압송하고 말았다.
그날부터 승철은 도살장에 끌려온 기분으로 하루 하루를 비참하게 버티고 있었다. 물론 제대로 공부가 될리 만무했다. 그렇게 여름까지 오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는 사건이 일어났다. 여대생들의 출현이었다. 방학중에 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그곳까지 올라온 모양이었으나 그로서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쇼킹한 일이었다. 그들이 이틀을 머물다 내일 떠나겠다는 말을 들은 것은 저녁을 먹고 난 후였다.
승철은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괜히 마음이 심란해지고 막연한 기대감마저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하자 눈
에 글씨도 보이지 않았다. 법당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와 암자를 조금 벗어나자 여대생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철은 소리를 찾아갔다. 마침 온 산은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소리가 난 곳은 향상 목욕을 하던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부쩍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까이 다가갔다. 물줄기 속에서 하늘나라 선녀들이 목욕을 하러 내려온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도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별이 빛나는 밤의 풍경에서 승철은 숨을 씨근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여보, 뭐하고 있어요?”
승철이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자 아내가 살꽹이 같은 눈으로 그를 노려 보고 있었다. 승철은 눈만 껌벅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별이 빛나 고 있는 풍경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