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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초겨울, 방콕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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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통신 - 정문태 1991년 01월 107호
동남아시아 한 가운데 자리잡은 타이는 위쪽으로 미얀마,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아래로 캄푸체아, 말레이지아와 이웃한 517.ooo㎢ 땅덩이에 타이족(75% ), 말레이족, 윰부리, 세망, 모켄, 라와, 쿠이, 카렌, 메오, 악카 라루를 비롯한 수많은 인종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95%가 석가모니를 받들어 모시는 최대의 불교나라이다.
오늘날 타이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드물게 공업화에 힘을 쏟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여전히 76%를 웃도는 사람들이 넉넉한 열대의 자연환경 속에서 먹거리를 다듬고 있는 전통적인 농업국가이며, 따라서 쌀, 설탕, 고무, 파인애플이 매우 중요한 살림밑천이고, 여기다 주석, 시멘트를 비롯하여 숱한 관광객들이 뿌리고 가는 돈줄이 나라살림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입헌군주국 타이의 공식적인 이름은 ‘프라데트 타이(Prathet Thai)’ 혹은 ‘무앙타이(Mllang Thai )’라 불리며, 오늘날 국민의 뼈대를 이루는(정치는 타이족, 경제는 화교) 타이족은 본디 중국 화남지방에 살고 있던 몽고계 사람들이 기원 초 무렵 인도차이나반도를 넘어와 원주민을 무너뜨리고 10세기 쯤에 접어들어 거의 모든 타이 땅을 삼키면서 더욱 큰 힘을 앞세워, 1238년에 ‘수코타이(Slumthai) 왕조’를 세웠고, 다시 1350년에는 ‘아유타
(Ayutmaya)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1767년 버어마에 쫓겨 아유타 왕조는 멸망했고, 이어서 1782년 프라야 타크신이 방콕을 중심으로 ‘차크리 왕조’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이 무렵 타이로 진출한 영국과 불란서에게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1904년 영 ·불 두 나라의 실리적인 협정에 의해 완충국으로 간신히 독립을 지켜내면서, 1932년 진보적 지식인들에 의해 무혈혁명으로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이어서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과 손을 맞잡기도 했으며, 1948년 문치파(文治派)를 누르고 무단파(武
斷派)가 쿠데타를 일으켜 피분 정권을 세웠다.
그러나 다시 1958년 쿠데타의 주체였던 사리트가 혁명단의 이름으로 피분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았고, 1968년 타놈 키티카른에 의해 새로운 헌법과 반공법이 만들어져서 1969년 어렵사리 민간정부가 들어섰으나, 1971년 타놈이 또 다시 이름뿐인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완전한 군사정권이 되어 버렸다.
그 뒤, 1973년 10월 들어 군사독재를 몰아내고 민주를 되찾기 위한 타마삿(Than1masat)대학생들의 뜨거운 외침을 피로 물들였던 타놈 정권은 무너지고, 자유주의자 정당파의 사냐 타마시크를 수상으로 21년 만에 민간정부가 세워졌으나 ‘왕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친위 쿠데타가 꼬리를 물면서, 오늘날까지 군부의 힘을 업은 정권이 들쑥날쑥 하고 있는 실정이다.
타이는 형식적으로 국왕이 3권과 통수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실제 정치 담당자는 내각이며, 이 또한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군부의 뒷심을 등에 업어야만 정치가 가능해, 속살을 뒤집어 보면 대단히 어렵고, 날카로운 정치적 상황을 겪고 있다. 다른 한편, 2차 세계대전 뒤부터 타이는 ‘친미 반공정책’을 앞세우며 이웃한 나라들의 끊이지 않는 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다시 말해 베트남, 라오스, 캄푸체아, 미얀마의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분쟁의 불똥을 피하고, 더불어 중국의 동남아시아 진출에 대비해서 아시아 여러 나라와 굳게 손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1782년 차크라 왕조의 첫 번째 왕 라마1세 때부터 비롯되어, ‘올리브의 땅’이란 속뜻을 지닌 방콕의 공식적인 타이 이름은 ‘크룽텝마하낙콘보윈랏탄아코신마힌타라유타야마디록폽높파라트랏차타니부리로무돔렷차니웻마하사탄’으로 마치 길고도 긴 암호문 같아 어렵기 짝이 없고, 혓바닥이 춤추듯 돌아가야만 겨우 따라 읽을 수 있는 이 이름을 끝까지 알고 있는 타이 사람은 거의 없다. 다행히 ‘크롱랩’이라 줄여 쓰긴 하지만. 오늘날 공업화를 서두르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중심도시 방콕을 찾은 이들은 저마다 엄청난 매연과 홀릴 듯이 시끄러운 소리에 질려 버리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첫 느낌일 것이다.
11월 초순, 비록 겨울철에 접어 들었다고는 하나 33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의 방콕에서 여느 해와 달리 때때로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물론 한낮의 뜨거운 햇볕 아래야 다를 바 없지만, 많은 방콕 시민들은 내남없이 긴팔 옷을 꺼내 입고 엄살을 떤다.
그늘을 쫓으며 이곳 저곳 쏘다니다 보면-‘관광왕국’이라 불리는 타이 여행의 꼭 알맞은 계절이 찾아온 까닭인지-숱한 관광객들로 빼곡히 메워진 길바닥에 서 있게 된다. 6백만 시민이 살아가는 방콕에서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많이 눈에 띄는 것으로 미루어 과연 관광으로 먹고 살고, 관광수입이 타이 나라살림의 뒷심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지나치지 않음을 느낀다.
한편, 곳곳의 나무나 전봇대에는 외무부장관으로 옮겨가 버린 시디히 사벳실라(SAP당수)의 빈 의석을 메우기 위한 보궐선거 입후보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끌벅적한 선거전과 달리 매우 차분하고 진지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그 흔하게 나붙는 벽보나 현수막조차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선거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지만 선거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몇 명이 입보했는지, 투표날이 언제인지, 무슨 선거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러니 누구를 찍을 것인지 물어보아도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이가 드물고, 따라서 선거 결과를 내다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투표율이 언제나 30%를 밑돌았다는 사실로 비추어, “방콕 시민의 정치의식이 깨있다”고 자랑하는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 가운데 다만 큰 흐름이, 우리에게도 검소하고 골곧은 정치가로 널리 알려진 참롱 스리무앙( Chamlong Sri-mllang) 방콕시장과 같은 당의 수랩 앗타콘(PDP후보)이 민중들의 뜨거운 바람을 등에 업고 당선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뿐이다.
“앞으로 5년 안에 타이는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다”라는 얘기가 널리 나도는 방콕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대단히 회의적인 안타까움에 사로잡힌다.
방콕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너무도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이다.
물론 부도덕한 정치에 따른 경제의 불평등이나, 한쪽으로 치우친 수탈구조가 비단 타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방콕의 빈부 차이는 가히 상상을 뛰어 넘는다. 몇 안되는 매판 자본가들이 나라 살림을 손아귀에 넣고 떡 주무르듯 하는가 하면, 하면, 즐비한 건물들 사이로 최신형 고급 자동차들이 보란 듯이 길바닥을 혜집고 다니는 틈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행한 눈망울이 쓰러져 간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른바 타이 최고의 지식인들을 뱉아내는 통로로 이름난 출라롱콘 대학과 타마삿 대학을 둘러보면 느끼게 된다. 먼저 대학의 풍경이 우리와는 매우 다름을 첫눈에 깨달을 수 있다.
제 3세계 거의 모든 대학에서 흔히 부딪치는 현실정치에 대한 문제 제기나 민주, 인권, 평등을 외치는 소리는 고사하고 학내문제에 대한 소리조차 볼 수 없어 오히려 이상하기만 하다.
여기저기 미국의 째질 듯한 노래가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오고, 담벼락마다 “우리는 축구를 사랑한다” “모두 함께 고고춤을”이라 적힌 어수선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코카콜라, 펩시콜라 선전 글귀가 나부끼는 교정에는 온통 벤츠, 도요다, 볼보, 혼다, BMW등의 최고급 자동차로 뒤덮여 있다. 점심 때가 지나면서 솜털이 보
송보송한 계집아이들이 이 자동차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꼴을 아스라이 바라본다.

마치 아무런 문제도 없는, 혹은 세상과 동떨어진 낙원처럼 보이는 이 대학이 바로 타이의 모든 문제를 고스란히 쌓아두고 돋보기로 바라 볼 수 있는 곳임을 느끼게 된다. 실망과 분노로 무거워진 어깨를 추스르며, 왕궁 가까이 자리잡은 타마삿 대학을 찾아본다.
1973년 군사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며 숱한 학생과 민중들이 쓰러져 갔던 타마삿 대학과, 이웃한 민주광장은 이제 여느 공원과 다름없는 빈터일 뿐, 타이 현대사의 빛나던 자취는 찾을 길 없다. 잘 가꿔진 운동장에는 공차는 젊은이들만 보일 뿐인 타마삿 대학의 모습도 출라롱콘과 빼닮아 있긴 마찬가지다.
“타이 젊은이들의 꿈은 출라롱콘이나 타마삿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가서 눌러앉는 것이고,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부모의 경제적 도움에 의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정해진 길이다”라고 귀뜸해 주는 어떤 이의 이야기가 조금도 지나치지 않음을 느끼며 미국 노래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학교 앞마당을 돌아나올 즈음, 민족과 조국의 비뚤어진 어지고 찢겨진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중들이 주인 되는 참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온몸을 내던질 줄아는 장한 우리의 청년 학생들이 떠올라 참으로 든든하고 미더운 마음이 되살아난다.
다른 한편, 방콕에서는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여성현실’을 느끼게 된다.
타이의 법률이 형식적으로는 일부일처를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돈 많은 사람들은 여러 아내를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무엇보다 곳곳에 여성 노동력의 착취가 크게 눈에 띈다. 은행, 사무실, 상점 노점, 여행사 가릴 곳 없이 여성 노동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물론 여성 지위의 향상이나 성차별의 철폐에 따른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아님은 말할 나위 없다.
다시 말해, 남성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비인간적인 사회의 관행 속에서, 당연히 놀고 먹는 남성을 보살피는 것이 여성의 의무로 오래도록 자리해 왔고, 따라서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가사노동은 물론 이거니와 게으른 남자를 먹여 살려야만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듯 가히 남성들의 천국인 타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풍경을 때때로 볼 수 있다.
“아내를 오토바이에 태워 외국놈이 있는 호텔에 실어다 주고, 그 일이 끝나고 나면 다시 태우고 유유히 사라져 간다.”
도무지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타이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중심의 잘못된 사회 구조와 자본가들로부터 이중의 고통을 받으며 일방적인 착취를 당하고 있다.
더구나, 환락과 매춘으로 이름난 팟뽕(Patpong)을 비롯한 세계 최대의 유홍 산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줄이 타이 경제의 20%를 웃돌고 있다는 이야기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님을 방콕을 찾은 이들은 모두 느낄 것이다.
산업화를 서두르면서 겪고 있는 여성들의 이 엄청난 수난이 비단 타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얼굴을 되비추는 거울 같아 움츠러들기만 한다.
남성들의 헛된 꿈과 비뚤어진 사회관행이 자본주의 논리와 맞물려 만들어낸 ‘여성의 눈물구조’를 깨부수지 않고는 결코 나은 인류의 앞날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5년 안에 한국을 따라잡는다’는 타이에서 오늘날 한국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과 걷잡을 수 없는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빼다 옮겨 놓은 꼴을 바라본다는 것이 절대로 유쾌할 수 없지만, 불행히도 되돌릴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젊은이들의 의식과 여성문제를 비롯하여 아직도 농촌인구가 75%나 되는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방콕이라는 큰 도시하나를 빼고 나면 헐벗고 쓰러진 도시와 농촌의 문제, 몇몇 자본가들이 생산과 노동의 거룩한 열매를 따먹어버리고 마는 경제적 불평등, 군부의 뒷심이 바탕 되어야만 설 수 있는 비민주적 기생 정권......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제개발이다, 산업의 근대화다 하는 것은 마침내 허울 좋은 껍데기만 남긴 채 속알맹이는 제국주의 자본가들의 화려한 만찬거리가 되고 말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이같이 타이는 이른바 핵심 자본주의 국가를 떠받쳐주는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로 편입되어 수탈의 과정을 겪으며 자본주의의 세계 지배질서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아울러 민중의 눈을 가리고,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진행되어 온 부도덕한 지배구조, 수탈정책은 제 3세계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며, 비록 껍데기의 온전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폭발점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덧붙여, 타이 사회를 짚어볼 때 스쳐 지날 수 없는 것이 또한 불교일 터인데, 계율을 중시하는 소승불교의 나라로 남자들은 한 번 승적에 들지 않고는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을 만큼 불교의 규범아 생활 깊숙이 자리해 있다. 때문에 타이 사람들은 매우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해 사회집단의 통합이 어려운 데다, 온 국민의 95%가 받들어 모시는 석가모니의 높은 뜻이 부도덕한 무리들에 의해 교묘하게 바뀌어 오히려 불교가 기득권자들의 배를 불리고 그들의 지배체제를 떠받쳐 주는 버팀목이 되어 있다.
‘잘 살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전생에 큰 덕을 쌓았기 때문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라는 어이없는 불교의 업보설이 오늘날 타이 사회를 깊이 감싸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런 희안한 논리로 석가모니를 욕되게 하면서 아울러 백성의 정신을 마비시켜 가는 것이 바로 흠집 투성이 타이정치의 숨겨진 모습이다.

이웃한 불교나라 ‘미얀마’에서 군사독재정권을 쫓아내기 위해 숱한 스님들이 피 흘리며 쓰러져 가고 있는 사진과 기사가 실린 신문을 접어들고 잠자리를 찾아가는 길모퉁이에 안경 낀 스님의 어깨너머로 질릴 듯이 현란한 방콕의 밤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