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道義)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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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91년 01월 107호
최초로 이 땅에 남돈선(南願輝)을 전한 조계종조인 도의국사는 그때까지도 화엄불교의 영향권에 있었던 통일신라 불교에 새로운 선풍(輝風)을 일으킨 이 땅의 최초 선사이시다.
스님의 생몰연대를 비롯한 자세한 행장은 알 수 없으나 신라 37대 선덕왕(780-785)대에서 41대 헌덕왕 (780-826)대에 걸쳐 활약한 고승이었다.
스님의 속성은 왕씨이며 북한군(北漢郡) 사람이었다. 대체로 고승들에겐 신이한 꿈이 있듯이 그 모친의 꿈에 성스러운 스님을 친견하는 태몽을 꾸고 39개월만에 낳았다고 전기에는 기록되어 있다. 후에 출가를 하였는데 법호를 명적(明寂)이라고 하였다.
마침 당나라로 떠나는 사신을 따라 서기 784년에 입당(λ唐)하여 오대산으로 가 문수성상을 친견하였는데 허공에서는 종소리가 들리고 산에서는 신이(후轉)로운 새들이 날아다니는 동의 상서로운 일이 있었다.
그 뒤 광부(廣府) 보단사(賣壇寺)에 이르러 비로소 구족계를 받고 육조스님을 모신 조사당에 예배를 드리니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등 이적이 일어났으며, 강서(江西) 개원시에서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문하 서당지장(西堂智藏)대사의 제자가 되어 그의 법을 이으니 조당집(祖堂集)에는 지장대사의 말이 이같이 전하고 있다.
“마치 그대는 돌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옥과 같고 조개 가운데서 진주를 줍는 것과 같도다. 진실로 가히 법을 전하는 데에 이 사람이 아니고 누구리오”라고 극찬을 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스님의 법기(法器)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국사는 그 후 이름을 고쳐 도의(道義)라 하였으며, 그 당시 선종의 정맥이라 할 수 있는 백장산으로 가 백장청규(百大淸規)로 유명한 회해(樓海)선사에게도 법을 받아 재당(在唐) 원년만인 헌덕왕 13년인 서기 821년에 귀국하여 처음으로 선리(輝理)를 설하니 이것이 현 조계종의 종통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만 하더라도 교학을 숭상하여 션의 주장인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섬 ·견성성불(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은 마어(魔語)로 배척했다.
그러므로 선종이 수립되기 위해서는 사상적으로 불교계 자체에서 공허한 이론에 빠져 있던 교학불교의 한계와 모순에 대한 인식이 철저해지는 시기에 이르러야 했다. 따라서 스님은 운악산에 은거하면서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스님은 제자 염거(鷹居)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일거스님은 체징(體燈)대사에게 법을 전했는데 체정대에 이르러서야 현재 선문구산(禪빼門九山) 중 가지산문을 열고 남동선을 선양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