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의 출현과 연구사
한국 선가의 중흥과 새 출발을 이룬 분이 경허스님이라는 데에는 별 이의가 없올 것이다. 그 이후 선풍의 진작과 교화의 측면에서 큰 자취를 남긴 분으로 우리는 만공 ·한암· 용성 ·수월 ·혜월 ·만해 ·석전등을 들게 된다. 이분들은 각기 그 삶의 자취가 달라 개성이 뚜렷하고 일방의 종주가 되신 분이다. 그러나 무상을 넘어서 열반에 이르고 나면 후에 오는 중생은 이분들의 법의 향기를 쐴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저서, 어록 등의 문헌자료가 남아 있는 경우는 예외이지만. 그런 면에서 볼 때 한암(漢岩, 1876~1951, 이하 ‘스님’으로 약칭함)은 만공·용성 ·석전 ·만해 동에 비하여 자료가 너무 적다. 역사는 자료가 없으면 재구성 할 수가 없다. 더욱이 이분 들이 한국 근대불교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어느 한 스님의 개인적인 차원이나 문중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우리 불교사의 공백을 메운다는 생각으로 자료발굴에 나서야 하리라고 본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스님은 선사이면서도 교학에 밝으신 분이다. 따라서 많은 글을 쓰셨으며 남겨 놓았음에 틀림없다. 게송, 서간 동의 글들을 기록해 둔 문집으로 「일발록(一鉢緣)」이 있었다고 하나 1947년 상원사의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스님의 회상에서 수행하신 범룡스님은 「일발록」에 기록된 내용을 스님께서 대부분 암기하시고 계셨는데, 왜 그때 다시 받아 적을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셨다. 참으로 애달픈 일이다. 뿐만 아니라 스님이 열반에 드신 지 30년이 지나도록 그분의 ‘문집’이 나오지 않았다. 진즉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들을 찾아서 모았더라면 지금보다 우리는 더 많은 자료를 갖게 되었을 것이고,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스님의 법음을 듣고 제 길을 찾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만큼 역사의식의 결여가 주는 피해는 엄청난 것이다.
1982년에 대한전통불교연구원의 김지견 박사가 스님이 쓰신 「선사경허화상행장」의 필사본을 원담스님으로부터 구해서 교감하고 연남거사가 번역하여 동연구원의 학습문고로 출판하였다. 물론 이 행장은 「불교」지에 번역되어서 실려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이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한문 원문은 얻어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스님의 자료를 논하면서 우리 모두 감사 드려야 할 분이 경봉스님이시다. 스님이 경봉스님에게 보낸 서간이 총 24편인데 이를 경봉스님은 전부 보관해 오셨던 것이다. 이 서간은 1984년 명정스님의 번역 ·편집으로 출간되어 널리 얽혔으니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홉消息)」이 바로 그것이다. 이외에도 경봉스님은 「고교정방한암대종사봉도회록(故敎正方漢農大宗師奉掉會操)」1권을 보관하고 계셨던 것이다. 필자는 1989년 여름 극락암에 갔을 때 명정스님으로부터 복사해 받았던 것이다.
「고교정방한암대종사용도회록」이 무엇인가? 도대체 어떤 책인가? 1951년 전쟁의 와중에 오대산에서 홀로 입적하신 스님의 49재(1951. 5. 8. 음4. 3)를 맞이하여 스님을 추모하기 위해서 ‘고교정방한암대종사봉도회’(대표:金앓九河)가 조직되어서 피난지인 수도 부산의 토성동에 소재한 묘심사에서 추모법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봉도회록」은 그 법회의 조직 경위, 조사(弔辦) 등에서 부조의 내역까지 전부를 기록한 자그마한 소책이다.
이러한 자료들이 소개되기 전에는 스님에 대한 유일한 전거가 탄허스님이 쓰신 「비명」과 전기 「현대불교의 거인-방한암」(「한국의 인간상」제 3권, 신구문화사)이 있을 뿐이었으며, 여기저기 신문, 잡지 등에 나는 스님에 대한 기사는 전부 탄허스님의 글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쓴 것뿐이었다. 「화중연화소식」이 나오자 사정은 조금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비명」에 없는 내용도 상당히 보충된 것이다. 그 한 예로 이재창 교수가 쓴 「오대산의 맑은 연꽃-한암선사」(「늘 깨어있는 사람들」, 흥사단 출판부)를 들 수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자료만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래도 뭔가 더 있을 것만 같았고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먼저 필자는 일제시대 때 잡지를 검토해 보았다. 그런데 「佛敎」,「禪苑」, 「金剛杵」에 법어, 논설 등이 아닌가. 다만 무관심했으며, 찾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다음은 스님의 문도들을 비롯 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분이나 그 후손을 탐문(探問)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다음 도표와 같이 스님의 저작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자료를 찾으러 다닐 때는 문집을 편집하여 출간하기로 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그 책임은 명정스님께서 지기로 하셨다. 아마도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세상에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한암선사 저작목록(우측 도표 참조)
이 중 「신화엄경론」은 김지견 박사가 소장하고 있는 것을 필자가 직접 확인한 것이다. 또 현재 시중에는 김운학스님의 「금강경오가해」가 출판·유통되고 있는데, 그 서문에서 저본을 \'상원사 간\'이라고만 했을뿐, 현토가 스님의 현토임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이점은 원의범 교수도 말씀신 바가 있다.)이외에 「만공법어」등에 스님의 법담이 전해지고 있으며, 앞으로 지적될 것이지만 「보조법어」와 「금강경오가해」를 편집했다는 점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2차적 연구로서는 졸고 「한암의 도의-보조법통설」(「보조사상」제 2집, 1988)과 불교신문에 기고한 「보조선의 계승자, 한암선사」(불교신문, 1989. 5.17, 민족사 간 「불교인물사상」재수록)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