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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선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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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불교 - 일지 1992년 01월 119호
설봉의 상당법어
선불교는 기나긴 발달 기간을 갖고 있는 토착중국불교의 총체적인 성과를 반영한다. 선은 인간의 자각이 다다를 수 있는 우주와 인생에 관한 가장 심원한 해석이며 체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본질적으로 자기탐구의 행법行法이며, 생의 몽환과 깨달음을 철저히 추구하는 비판적 행도의 원리를 그 이면에 깔고 있다. 이 원리의 핵심은 인간의 심법心法을 완전히 개화시킨 지혜, 곧 깨달음이다. 선은 그만큼 불교라는 위대한 종교의 심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선승들은 그들의 각고어린 수행을 통해 내심자증자각성지의 심법을 완성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비범한 운명을 영롱하게 다듬어 갔다.
절대로 남의 길을 따라서 걷지 말라
그대 자신의 진실과는 멀어진다
나 지금 홀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
조당집祖集堂 제오권 동산장洞山章에 실린 한 게송이다. 이 게송은 본원의 심지心地에서 생의 궁극적인 이법理法을 획득한 선승들의 진면목을 잘 보여준다. 조당집은 952년 오대五代 남당南唐의 천주泉州(지금의 복건성 남단)에서 편찬되어 어떤 경로에 의해서인지 고려 고종 32년(1245년) 고려대장경의 부록으로서 그 책의 숙업을 정했다. 당대 선승들의 열전체 법어를 수록하고 있는 이 어록은 단지 해인사에만 그 존재가 전해질 뿐 어디에서도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던 꿈의 고전이었다. 조당집은 체계적인 편찬 방식으로 격식을 갖춘 송대의 어록들과는 달리 순수하면서도 박력 있는 문체로 인류가 두 번 다시 갖기 어려운 정신의 영광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 책의 제칠권에는 설봉雪峰, 암두巖頭, 흠산欽山 세 선승들이 엮어내는 선과 인생의 드라마가 펼쳐져 있다. 우리는 이들이 엮어내는 선과 인생의 드라마를 보면서 인간의 삶이 있는 것에 선이 있다는 가장 평범한 사실을 다시 확인해도 좋을 것이다. 먼저 설봉의 상당법어를 듣기로 한다.
내가 암두, 흠산과 함께 행각行脚하던 시절 여관에 묵은 일이 있었다. 그 때 우리 세 사람은 서로 헤어져서 다른 길로 떠나야 할 처지에 있었다. 그래서 각자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말해 보기로 했다. 먼저 암두가 말했다. \"나는 여기서 헤어진 뒤에 조그마한 나룻배를 한 척 만들어 낚시꾼과 함께 앉아 한 생애를 보내고 싶다.\" 흠산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 큰 도시에 살면서 절도사에게 스승의 예우를 받으면서 비단옷을 입고 금은의 평상에 앉으며, 밥을 먹을 때에는 금꽃 모양, 은꽃 모양의 큰식기에 여법히 차려놓고 밥을 먹으면서 한평생을 마치고 싶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십자로두十字路頭에 선원을 차리고 수행하는 스님들을 여법히 공양하리라. 만일 어떤 납자가 길을 떠나면 내가 바랑을 메고 주장자를 들어 문밖까지 잘 전송하고 그가 몇 걸음 가거든 갑자기 \'아무 스님!\' 하고 불러서 그가 고개를 돌리거든 \'먼 길에 조심하십시오\' 하고 일러주리라\"
암두와 흠산은 뒷날 이 바램을 다 이루었고 또한 어김이 없었다. 그런데 나만은 본래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겨우 여기서 지옥찌꺼기 노릇이나 하고 있구나.
암두의 이와 같은 회상은 선승들이 선택하는 삶의 세 가지 전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즉 암두는 재속 은둔형으로 세간의 풍진 속에 자신을 묻어버리는 은자형이다. 또한 흠산은 대중교화형으로서 사람과 더불어 유유 자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설봉은 선종 교단의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인물이며 교단의 사표, 승가전법형이다. 설봉은 암두, 흠산이 자기 설계를 현실로 옮겼지만 정작 자신은 자기 설계의 현실 이행에 실패했다고 언명했다. 그러나 이 언명은 한 인간의 심연에 담긴 생의 성실한 실존을 전해 주고 있다. 설봉은 선의 스승으로서 선종 교단의 지도자로서 충실한 일상을 꾸려 나가면서도 자신이 행각하던 젊은 날의 기백과 깨달음을 향한 정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도중선위途中善爲란 항상 행각하는 선승들이 서로 주고받는 \"먼 길에 조심하십시오\"라는 정도의 일상어이지만 설봉의 도중선위는 좀 달랐다. 인간의 삶에서 삶으로, 죽음에서 죽음으로 끊임없는 이행을 반복하는 시간의 여행자이다. 설봉은 자기 설계의 현실 이행이 실패했다는 자책 속에서 노련한 여행자를 볼 수 없는 자신의 안타까움과 함께 스승의 전범을 남겨야 할 선승으로서의 인간적인 고독이 교차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선종 교단이지만 일단 정주수도원定住修道院 체제가 정비되면 수행은 시간표를 따라서 근근이 하는 격식화를 피할 수 없다. 설봉으로서는 도중선위의 참된 정신을 망각하고 있는 문하의 선승들과 자기 시대를 비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 지옥찌꺼기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봉의 자기 평가 속에서는 진지한 긴장감과 성실한 실존에 대한 열망이 느껴진다.
역순의 경계 모두
흠산은 도시에 살면서 관료들의 귀의를 받아 유복한 부르조아처럼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흠산을 권력 지향적인 선승으로 보기 쉽지만 흠산에게는 숨겨진 칼라가 있다. 선승이라고 해서 모두 다 선원의 붙박이 가구처럼 살지는 않는다. 큰도시, 관료들의 귀의, 금꽃과 은꽃 모양의 식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표현은 흠산 자신의 대중 교화 능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적나라한 실존이 밀도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흠산은 이 점을 노린다. 흠산은 이미 격식화된 교권 체계에서 이탈하여 인간의 적나라한 실존이 밀도 높게 나타나는 공간에서 자신의 심법을 연출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흠산 역시 당당하고 비범한 개성을 갖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조당집 제팔권은 흠산의 선을 이렇게 적고 있다.
선사께서 어떤 도사에게 물었다. \"법을 위해서 왔는가? 절을 하기 위해서 왔는가?\" 도사가 대답했다. \"법을 배우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미 법을 위해서 왔다면 앉지 말아야 되느니라.\" \"거칠은 말과 고운 말이 모두 제일의弟一義로 돌아간다는데 어떤 것이 제일의입니까?\" 선사께서 도리어 물었다. \"그대는 절집의 종이라던데 사실인가?\" \"화상은 몹시 머트러우시군요.\" \"그럼, 제일의체第一義諦가 어디에 있겠는가?\" \"화상께서는 삼교三敎를 통달하시지 않았습니까?\" \"삼교는 그만두고라도 노군老君은 언제 태어나셨는가?\" \"혼돈이 나누어지기 전에 태어나셨습니다.\" \"혼돈이 나누어지기 전의 일은 어떠한가?\" 도사가 대답이 없거늘 선사께서 문득 쳤다.
생사 윤회의 감옥에 터져나온 절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또 한 사람의 선승은 바로 암두이다. 그는 정말 파란많은 구도자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선의 길을 가기 전의 암두는 당의 수도 장안의 서명사에서 열반경을 강의하던 교학의 권위였다. 교학이란 마음의 모래시계를 읽는 작업. 항상 분별의 모래시계가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마음의 모래시계를 읽는 작업만으로는 인간의 운명을 완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관념의 다발에 얽혀서 자신의 실존을 스스로 감당하고 돌파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선의 달인들은 대부분 출가 초기에 교학에 전념하고 있다. 저 위대한 남전도 임제도 모두 제일급의 학승으로서의 경력을 갖고 있다. 임제를 보자.
\"함께 도를 닦는 여러 벗들이여!
출가 수행자는 다른 무엇보다도 진리를 구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산승은 지난 날 계율에 대해서 마음을 두고 탐독했으며, 또한 경과 논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많은 책들을 찾아서 읽었다. 그러나 뒤의 이것은 세상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치료하는 약이요, 불법의 근본 진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언구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일시에 다 던져 버린 뒤에 바로 도를 묻고 참선을 시작했던 것이다.\"
선승들이 불립문자를 선언한 데에는 바로 그들 자신이 한 때 불교 교학 탐구자로서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란한 지성의 세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불립문자를 표방하며 오직 체험과 직관, 사상과 생애의 장려한 융합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립문자란 그저 단순한 문자의 부정이 아니다.
불립문자란 \"문자를 세우지 않는 것\' 이 아니라, \"문자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문자를 받는 불립이라는 말은 목적격이 아니라 처소격인 것이다.
조당집 제칠권은 암두의 존재를 이렇게 쓴다.
설봉과 헤어진 뒤에 선사는 악주鄂州, 호북성 무창현에서 왕권에 의한 불교 박해를 만났다. 선사는 호숫가에서 나룻배의 사공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 호수 양쪽에 한 조각의 판자를 세워 두고 사람이 와서 한 망치 치기만 하면 곧 배를 몰고 나서서 물었다. \"누구인가?\" \"저쪽으로 건너가는 길손이요.\" 선사는 말없이 강을 건네 주었다.
선승 암두는 당 무제가 실시한 842년부터 845년까지의 폐불 기간에 사공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세간의 풍진 속에 자신을 묻어 두고 있다. 당대의 선승들 가운데에는 호수나 강가에서 뱃사공으로 변신하여 자신들의 인생과 선을 응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흐르는 강과 호수의 도도한 물결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심식心識 깊은 곳에 고여 있는 마음의 강, 호수를 철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삼사라Samsara 또한 마음의 강물인 것이다. 수행자는 영혼이 있는 풍경 속에서 한층 더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적끊긴 호수, 정적 속에 흐르는 강, 황량한 사막, 산정의 고적함……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모두 이 영혼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젊은 날의 붓다는 뜨거운 인도의 숲과 강, 황무지를 마치 한 필의 고독한 이리처럼 배회했으며, 예수 또한 팔레스타인의 광활한 사막에서 자신의 성령을 추구했다. 그들은 인세의 악취가 묻어나지 않는 영혼의 풍경 속에서 인간의 숙업을 응시했으며, 악마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광활한 대기가 선물하는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암두의 자기 설계는 지극히 선승다운 품격을 갖는다. 삼법의 회랑을 걷는 선의 달인들에게는 인생의 역순逆順이 모두 수행의 연장이었다. 그것은 자성청정심의 세계, 인간에 대한 압도적인 신뢰를 선언한 선불교 특유의 개성 탓이겠지만 선승들은 인생의 모든 역순 경계가 깨달음의 진폭을 확대하고 성숙시켜 나가는 행법이었던 것이다.
폐불이 끝난 뒤 암두는 선승의 본분을 완료하고 있다.
그러나 선승 암두의 일생은 파토스하게 끝난다. 조당집은 전한다.
선사께서는 평소에 예언하셨다. \"이 늙은이가 갈 때 한바탕 큰소란이 벌어질 것이다.\" 중화中和 5년 (885년) 을사乙巳. 천하에 전란이 일어나 매우 어지럽더니 그해 4월 4일 선사께서는 빚을 갚고 임종하셨다. 마지막으로 칼날이 임했을 때 크게 외마디 외치시니 사방의 산중으로 피난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춘추 육십, 승랍 사십사세였다.
이 기록이 전하는 천하의 전란이란 바로 당 왕조를 멸망으로 이끈 황소의 난이다. 산동성의 사염私鹽 상인이던 황소는 당 왕조의 부패와 학정에 붕괴해 민중 봉기를 일으켰다. 880년 황소 군대의 장안 점령과 함께 중원의 절반이 기의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만다. 황소는 881년 장안에서 대제금통황제大齊金通皇帝를 자칭하고 즉위식을 올렸으나, 이극용의 군대에 의해서 884년 그 반란은 막을 내린다. 암두는 이 난세의 와중에서 사라져간 것이다. 자신의 최후에 관한 암두의 예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의 달인이 체득한 예지의 능력? 여기서는 문제 밖의 이야기이다.
암두와 황소의 난이라는 매듭에는 긴 이야기가 얽혀 있다. 벽암록 제육십육칙의 암두수황소검巖頭收黃巢劍이라는 공안은 암두와 황소의 난이라는 매듭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해독되지 않을 그 무엇이 있다. 그가 남긴 최후의 일성, 다른 신어록에서 수십 리밖까지 들렸다는 그 외침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단지 생사 윤회의 감옥에서 터져나온 최후의 절규였을까? 왠지 처연한 비장미조차 느껴진다.
동오東吳의 승 현태는 암두의 비명에 이렇게 적었다.
선과 악 두 경계에
거슬리고 순하고 착하고 버림이
2조 혜가대사와 같고
사자존자와 같도다
선승 암두의 탑호는 출진出塵이었다. 출진, 출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