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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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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청화 1992년 01월 119호
새싹이여
오오 새싹이여 돋아나라
이 썩어가는 것들 위에
분노처럼 불끈불끈 돋아나라

천연히 빛나던 先人들이 가고
그 후 人材의 긴 가뭄을 두고
욕망의 안개 속에 잠적한 정신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는 폐허의 땅,
어찌 새싹 하나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얼굴을 묻고 싶구나.
스스로의 몸에 온갖 상처를 내고
혐오의 피와 고름을 흐르게 한
내 가까운 사람들의 몰골을
또한 그들에게 무수하게 던져지는
저 멸시와 지탄의 돌들을
나는 차마 더 볼 수가 없구나.

어디엔가 깊이 묻힌
귀한 씨앗이여
씨앗이여

들리지 않느냐
내일을 보지 못하는 눈들이
思想이 없는 머리통들이
인품과 덕망을 거부한 고깃덩어리들이
북적북적 썩는 소리가.

금란 가사 없이도 한없이 거룩한
이차돈의 하이얀 핏빛과
虛想을 벗고 또 벗은 원효의 알몸
그리고 不義와 싸운 만해의 저항정신
그런 것에 더러는 퉤퉤 침 뱉고
그런 것에 더러는 철망치고
독선과 아집으로 썩는 소리가.

돋아나라
그네들 키재기하는 도토리 속에.
본분과 使命의 불이 꺼진 역사의 앞마당
우- 하니 우거지는 이 잡초들 속에.
오 새싹이여
위대한 정신이여.

지금 도처에 절은 비고
단청만 빛나고 있구나
빈 절에 하릴없이
탑들만 높구나
정작으로 빛나야 할 주인들은 어디 가고,
탑보다 높아야 할
主人들은 다 어디 가고.

내 天耳通을 한 몸도 아니언만
住處를 알 수 없는 먼 곳의 스님
먼 곳의 스님 탄식소리 듣나니
오늘 엎드려 나는 빈다
엎드려 나는 빈다
傷한 것은 모두 썩으라고.

썩어야 正義가 나오고
썩어야 참사람이 출현하고
썩어야 새세상이 시작되므로
상한 것은 차라리 완전히 썩으라고,

그리고 나는 믿는다
썩을 것이 크게 썩은 다음엔
새싹이여
네가 노오란 머리를 들고 나올 것을.
그리하여 이미 썩은 것들을 거름으로 하여
모든 썩은 것 위에 우람히 자라나
모두가 환호하는 금빛의 꽃을 피워줄 것을.

죽는 것도 法이요
사는 것도 법이어늘
하물며 썩는 것인들 法이 아니겠느냐.

썩어서, 푹푹 썩어서
썩지 않는 네가 나온다면
그것은 바로 好法,
새해에는 好法으로 돋아나라
오오 새싹이여
所望의 새싹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