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 박한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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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서정주
1992년 01월 119호
아래에는 1933년 겨울부터 1934년 늦봄까지 내가 석전 스님 곁에서 지내는 동안에 겪은 그분의 모습 가운데에서 잊혀지지 않는 몇 가지를 골라서 표현해 보려고 한다.
1933년 겨울의 어느 날, 스님께서는 아침 공양을 제자들인 학인 대중들과 함께 들고 계셨다. 그런데 스님은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매우 기뻐하시면서 식사일을 맡고 있는 스님을 불러서 칭찬을 하셨다.
\"인호야, 너 오늘 아침 두부국을 아주 맛있게 끓였더구나.\"
나 또한 그날 아침 두부국이 너무 맛있었으므로 스님의 칭찬에 말없는 동감을 표시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학인 대중 가운데에 몇 사람이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머리를 모로 틀며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킥킥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침 공양이 끝난 뒤에 그 웃음의 까닭을 한 스님에게 알아보았더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두부국을 끓이면서 어란(민어알 말린 것)을 아주 가늘게 깨뜨려 넣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그것도 모르신 채 식사를 아주 맛있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호 스님을 칭찬까지 하셨으니, 그 사실을 알고 있던 학인 대중들은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오래지 않아서 어느 날인가에도 개원사 대원암의 학인 대중들 사이에는 또 한바탕 킥킥 웃음판이 벌어졌다. 그 까닭을 들어보니 이번에는 우리 석전 스님이 교장직을 겸하고 계신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신임 교수 한 분이 취임 인사차 선물로 가져온 세숫비누 한 상자를 스님이 외출하신 중에 책상 위에 놓고 돌아갔다. 뒤늦게 돌아오신 스님은 비누의 생김새가 무슨 과자일 것만 같아서 그 가운데에 한 개를 입에 넣고 깨물어 보셨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그 맛이 여느 과자 맛과는 달리 비위에 거슬리자 또 음식 시봉을 불러서 물어보셨다.
\"인호야, 무슨 과자 맛이 이렇게 고약하냐?\"
그러자 인호 스님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 그건 과자가 아니고 아무개 교수님이 노스님 세수할 때에 쓰시라고 선물로 가져온 신식 세숫비누들이랍니다.\"
그제서야 스님은 멋쩍은 듯이 빙그레 웃으셨다고 한다. 스님의 천진난만하고 어린아이 같은 동심은 늘 이러하셨다.
이 때에 대원암의 측간(화장실)에 뒤를 보러 들어가 보면, 그곳에는 가끔씩 곶감씨들이 흩어져 있었다. 물론 그것은 우리 노스님께서 측간에서 곶감을 자시다가 뱉어 놓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그 몸을 깨끗이 하는 데에 남다르셨다. 그분은 뒤를 보신 뒤에는 그곳을 휴지로 닦고 이어서 개울로 내려가서는 물로 다시 깨끗이 씻어내기까지 하셨던 것이다. 이 뒷물의 습관은 아마도 인도 사람들의 오랜 그것을 옳게 여겨 본따신 것이 아닌가 싶다.
1934년,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봄날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강원 뒤의 별채에 있는 내 방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절에 와서도 끊지 못하고 있던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 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정주! 자네 거 공장 굴뚝에서 연기 뿜 듯하는구만.\"
멈칫,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다보니 바로 석전 스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스님은 우연히 강원의 뒷마당으로 나오셨다가 담배를 피우던 내 모습을 발견하셨던 것이다. 스님은 매우 엄하게 꾸짖으셨다.
\"육당은 서른세살까지 피우던 담배도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서 끊어 버렸다. 공부하려고 온 사람이 그래. 그까짓 것 하나 끊지 못해서야 어떻게 하지?\"
스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멍하니 땅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분의 꾸지람보다도 스님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쓰라린 눈물이 고여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내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잠깐 뒤에 어렸을 적에 들었던 할머니의 부르심을 기억 속에 어렴풋이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의 일이었는데, 온 집안 식구들은 내게 집을 맡기고 모두 들에 나가 일을 하였고 빈집을 지키던 나는 다듬잇돌을 베고는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을 잠에 빠져 있던 나는 마루 끝까지 굴러가서는 땅바닥에 떨어지려는 순간에 놓여 있었다. 그 순간 \"아이고, 내 새끼야!\" 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언제 돌아오셨는지 할머니가 마루 아래로 떨어질 뻔한 나를 덥석 끌어앉고 계셨던 것이다. 연신 \"아이고, 내 새끼야!\"를 되뇌이시던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음이 어린 내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그래서일까? 그때 그렇게 읊조리시던 할머니의 음성과 담배 하나 끊지 못하는 나를 보고 안타까워하시던 석전 스님의 음성이 너무나 똑같은 울림으로 내 가슴팎에 와 닿는 것이었다.
석전 스님의 이런 자비스러운 마음의 울림은 그 뒤의 내 생애에도 맑은 새벽녘이면 문득 잠깨인 내 기억 속에 되살아나서 언제까지나 나를 사랑으로 일깨우는 큰 지침이 되었다.
스님에게서 꾸지람을 들은 이튿날 나는 스님의 방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는데, 스님은 약간 비껴 앉으신 채 말씀하셨다.
\"정주는 중노릇을 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시인이나 될런가 보다.\"말씀을 마친 스님은 씁쓸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그 예언은 적중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담배를 피운 일 때문에 스님의 곁을 떠나라는 것도 아닌 까닭에 나는 여전한 한 속인의 신분으로서 그분 곁에 머물면서 불경 공부를 한동안 더 계속할 수 있었다. 물론 담배도 석전 스님 곁에 있는 동안에 저절로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