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세계가 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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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현응
1992년 01월 119호
지난 한 해 동안 지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 체제, 국가, 이데올로기 들의 문제에서 세기적인 변화를 겪었다. 더구나 컴퓨터 시대의 매스컴은 모든 정보와 상황을 분석하고 정리하여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한 변화는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화로의 변화를 뜻한다. 더 이상의 판단을 남겨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은 드디어 이념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자유롭고 풍부한 생각과 생활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지금 다다른 언덕이 부작용과 한계에 내몰려 불시착한 것이라거나, 고통과 불행의 산과 바다를 넘어서 뒤늦게 다다랐던 간에 이 세계는 어쩌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비슷한 동질감 속에서 각자의 삶과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른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모두 현실 속에 살기는 하지만 또한 모두가 그러한 변화를 느끼고 누리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질과 양의 변화의 와중에서 개인, 국가, 민족들은 제각각의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전망하고 거기에 부응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는가 하면, 기존 질서나 가치의 붕괴와 부재 속에서 개인, 국가,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기적인 힘의 횡포가 대두되기도 한다.
끄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이미 시작된 새로운 문명과 문화의 물결에 휩쓸려서 곧 한줄기 큰강과 큰바다를 이루게 되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시대는 기존의 세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새롭지만, 그 새로운 세계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서 문화적인 공백에 따른 혼란 시기라고도 할 수도 있다.
종교, 이데올로기와 같은 제반 문화적인 가치의 문제에서 유일의 세계, 경직된 세계가 종언을 고하고 변화의 세계인 다양하고 풍부한 세계가 열리게 되었음은 이제 불교가 그토록 강조하였던 세계가 도래하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불교인에게는 고르바쵸프냐 옐친이냐, 민주계냐 민정계냐, 핵이냐 비핵이냐 들과 같은 시사적 관심이나 그에 대한 예측의 적중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시점의 역사적 문화적인 변화의 본질을 읽어내고 그에 대한 불교적인 처방을 밝혀내는 일이 시급하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쓴다\" 는「금강경」의 주요 슬로건은 바로 지금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도 긴요했지만 그와 함께 지금의 상태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데에도 필수적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시대야말로 불교의 시대인 것이다. 다양하고도 풍부한 가치를 머무는 바 없이 넘나들며 최적과 최상을 선택해 가는 유연하고도 탄력 있는 세계관은 불교의 공의 세계를 제쳐놓고서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경직된 세계, 단일 세계가 득세하는 세상에는 머무는 바 없이 쓰는 마음이라는 의미는 고작 심리학적인 차원이나 대인 처세술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였지만, 이젠 문화적인 바탕이 달라진 것이다. 열린 반야의 세계가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예술 들과 같은 제반 분야에 구체적이고 사상적인 밑받침이 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에 따라서 불교인들은 공의 세계에 대해서도 현대적인 언어로 제반 문화 분야에까지 차근차근 설명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현실의 혼란과 혼돈을 극복하고 미래를 자신 있고 명확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고, 또한 일반인들도 각자의 분야와 생활의 해결을 위해서 불교의 가르침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불교인들은 마침내 제때를 만났고, 그래서 이 시대에는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이 시대에 불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