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 까닭이겠읍니다.
어제는 무수히 떨어지는 낙엽들로 바람이 유난히 부는 듯 했읍니다.
숲들은 놀랍도록 빠르게 비어가고요
오늘은 또 온종일 가을비 소리입니다. 산은 젖어 잿빛이고요,
닷새 전에는 구십 노승이 입적(入寂) 하였읍니다.
다비장의 검은 숯덩이가 가을비에 젖고, 요즘 젊은 중들 가슴인들 오죽하겠읍니까.
이조 오백년에 백년을 더한 육백년 동안의 긴 가을인걸요.
가을비에 젖는 천민의 먹빛 옷입니다.
차라리 잡초 무성한 폐사(廢寺)일까 싶다가도
돌곽을 단단히 부여잡은 돌담쟁이 선홍빛 잎파리에 눈주기도 합니다.
진정, 육백년 동안의 가을이 쌓여 돌아오는 봄의 촉으로 틔어졌으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