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를 조르라고
외채망국론이 대두되던 시기보다 무려 곱절이나 외채가 늘어난 \'문민정부\'의 경제 현황을 맞아 더 심각한 문제는 적어도 현 정부 기간에는 개선될 전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전망은커녕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한 부처님의 말씀도 있지만 그래도 실날 같은 희망이 있어야 내일을 보고 오늘을 참는데 한국경제의 내일을 가늠할 수 있는 경제 지표는 한마디로 비관만 든다.
먼저 올 년말까지 예상되는 외채 총액 1천억 불 가운데 상환 기간이 일 년 이내인 단기외채의 비중이 무려 60퍼센트에 달한다는 것이다.
일반 가정집의 예를 들더라도 꿔다 쓴 돈을 갚을 기간이 일년 이내라면 \'급전\' 에 속하는데 정부가 갚아야 할 돈 가운데 반수 이상을 일년 이내에 갚아야 하니 허리가 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최근 국제 금리가 오름세에 있고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원화의 환율이 올라 1달러에 지난해 말에는 774원이었는데 요즘은 820원 꼴이다-인지라 이자 부담이 그만큼 늘었다. 원금도 갚으랴 눈 뜨고 뺏기는 이잣돈만 해도 5조원을 갚아야 하니 열심히 수출해서 번 돈의 태반이 그저 나가는 셈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불 시대를 열었다고 큰소리 친 정부당국 발표에는 국민 일인당 갚아야 할 외국 빚 2천2백불 (80년도 713불)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 가 다름 아닌 한국의 경제 현실이다.
예전에는 원화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나아진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올해 들어 다달이 수입 증가는 사상최대치를 기록하는 반면 수출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수출의 쌍두마차였던 자동차와 반도체가 부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의 견해이다.
하긴 자동차의 재고가 적정 수준인 4∼5만대의 곱절로 늘어났고 반도체 국제시세는 폭락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헐값이 되었다.
연초 16메가디램 반도체1개 당 48불이던 것이 8월에 는 12불로 떨어져 세계굴지의 반도체 생산국인 한국의 경제에 일격를 가하였다.
그 나마 다 떨어질 기색이여서 그 동안 반도체 특수로 재벌마다 중복 투자한 생산시설이 유휴시설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외채 증가와 경상수지 적자의 주요인은 수출 부진에다 사치성 소비재 증가와 기술 도입료 여행 수지 등이 겹쳐 있다.
국제무역기구(WTO)출범과 아울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에 따라 수입 증가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 폭은 개선될 전망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허리띠를 조르고 살려고 해도 어지간한 집값과 맞먹는 외제 자동차 등 소비재 수입으로 작자에 허덕여야 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우려되는 우경화
벌이가 좋아야 살림이 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벌이가 신통치 않으면 최소한 살림에 드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일반 가정에도 그렇고 기업과 정부도 그래야 한다.
줄여야 한다면서 누구는 줄이고 누구는 그냥 풀풀이 낭비하면 한쪽의 불만은 가중된다. 그것을 계급의 분화 과정이라고 한다.
경기의 불황이 악화되자 정부와 재벌들은 한결같이 임금의 동결과 대규모 감원을 내걸고 있다. 정부는 8월의 무역수지가 약 130억 불 적자를 나타내고 올 1월부터 8월까지 누적된 적자가 133억 불에 달하자 9월초 내년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임금을 최대한 억제할 방침을 밝혔다.
재벌들마다 잇따라 똑같은 조치를 결정했다. 살림이 어려운 만큼 비용을 줄여보겠다는 충심이었겠으나 그것은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조처에 다름 아니다.
정부와 신한국당은 내년예산을 올해보다 약 14퍼센트 인상(72조원 가량)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방비와 국민운동단체지원기금 등은 대폭 늘렸다.
국민운동단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한국자유총맹 둥 \' 관변단체 \' 를 이른다.
이들에게 올해는 40억 원을 지원했는데 내년에 는 세 배나 또는 110억 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 속뜻은 뭐라 해도 내년 대통령 선거에 이들을 유용하게 이용하겠다는 속셈이다.
재벌들이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 생산비용을 절약하겠다고 했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비용의 큰 비중은 앉아서 눈덩이로 불어나는 이자와 기술 도입료의 증가, 경제외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를테면 정치자금이 주가 되는 비용과 접대비 따위이다.
엄밀히 말해 벌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임금이 아니라 그 동안 손안
대고 코푸느라 쓸데없는 데 들인 비용이며 부자들의 헤픈 씀씀이다.
애꿏게 가난한 사람들의 허리만 졸라매려고 하지 물가 억제와 비생산적 비용의 절감엔 왜 둔한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현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우경화는 예사롭지 않다.
학생과 민주단체의 통일운동에 대해 오공화국 말기에나 있음직한 섬멸작전을 감행한 것이나 안기부법의 개정, 공정거래법의 재벌들 입장 반영, 영 서툴기만 한 이적단체 양산, 언론 공작 등 일련의 행보는 다음의 수순을 예상케 한다. 경제의 어려움을 빌미삼아 노동자를 내쫒고 국민의 허리띠를 조이며 \'안보의식\' 을 고취시켜 내년 대선에서 정권의 안정적인 이양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가하는 압력이 크면 반응하는 압력도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나라살림을 제대로 하길 바란다.
벌이를 제대로 못하면 살림이라도 짬 지게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