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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가는 나라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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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6년 10월 176호
비틀거리는 경제
지금 사형 선고를 받은 전두환 씨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당시, 엄청난 외채로 인해 나라가 망할 우려가 있다는 이른바 \'외채망국론\'이 대두된 적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추진했던 수출 위주의 경제 성장책은 막대한 외자 도입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육십년대 중반 이후 그가 죽기까지 관제 가요를 통해 \'좋아졌네, 좋아졌네\' 라는 노래를 강요했지만 실제 서민의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왜냐하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도입한 외자는 결국 소수 재벌들의 독점적 이윤을 강화시켰고 그런 특혜를 준 권력에게 재벌은 은혜를 갚기 위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헌납하여 독재와 독점의 희생물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중의 저항은 필연적이었고 마침내 비명에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유산은 박정희를 흠모하던 정치군인들이 집권한 오공화국에 들어서 표면화되어 어떻게든 외채를 줄어야 하는 절대지경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치솟는 물가를 제어하고 한편으로는 적정한 성장을 추구하며 외국에서 빌려온 자본을 갚아 나가야 하는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팔십년대 중반 이후 국제 원유가격이 폭락하는 등 국제 원자재가 수급이 안정되고 더불어 미화나 일화의 강세와 금리가 인하되는 등 더 없이 호전된 국제 경제시장의 조건에다 적절하게 조정된 국내 산업 구조의 변화는 한국 경제가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성적인 적자였던 국제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오백 억 불이나 되던 외채는 상당히 줄어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느 외국의 신문에서 꼬집었다는 말처럼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결과였는지 88올림픽을 지낸 이후 국내적으로는 과소비 경향이 노골화되고 게다가 시장개방의 파고가 높게 불면서 상황은 서서히 하강을 그렸다. 구십 년도를 고비로 줄어들던 외채는 다시 늘었고 93년도 사상 처음으로 경상수지가 흑자를 보았을 당시에는 이미 440억 불을 육박하고 있었다. 그 해 경상수지흑자가 고작 3억8천만 불인데 전년도 대비 외채는 10억 불이나 늘었다.
경제계의 우스개 말처럼 성장의 터를 닦은 박정희와 그 후유증을 진정시킨 전두환에 이어 성과를 따 먹은 노태우 정권이지만 현 정부에 들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그러면서 선진국의 환상만을 주는 나라살림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발전을 이루어간다. 이런 경기 순환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모순에서 비롯된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이윤의 사적인 획득이라는 모순은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본가는 새로운 생산 기술을 발전시키고 한편으로는 생산에 투여되는 임금 등을 줄여 경쟁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는 한편 유효수요를 늘리는 정책에도 골몰하게 되는데 흔히 \' 두 마리의 토끼\' 로 비유되는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 경제 정책의 주요한 과제라 하는 것 역시 이런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 발전 법칙에 따라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는 곧 사회주의의 물적 토대로 된다는 이론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숱한 경기 순환과 위기를 맞았음에도 아직 건재하다.
새로운 시장 개척과 새로운 생산 기술, 상품의 개발 등이 오히려 그런이론을 무색하게 하고 있는데 어쨌거나 이런 순환으로 고통을 받는 피해자는 근로대중이 아닐수 없다.

허리띠를 조르라고
외채망국론이 대두되던 시기보다 무려 곱절이나 외채가 늘어난 \'문민정부\'의 경제 현황을 맞아 더 심각한 문제는 적어도 현 정부 기간에는 개선될 전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전망은커녕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한 부처님의 말씀도 있지만 그래도 실날 같은 희망이 있어야 내일을 보고 오늘을 참는데 한국경제의 내일을 가늠할 수 있는 경제 지표는 한마디로 비관만 든다.
먼저 올 년말까지 예상되는 외채 총액 1천억 불 가운데 상환 기간이 일 년 이내인 단기외채의 비중이 무려 60퍼센트에 달한다는 것이다.
일반 가정집의 예를 들더라도 꿔다 쓴 돈을 갚을 기간이 일년 이내라면 \'급전\' 에 속하는데 정부가 갚아야 할 돈 가운데 반수 이상을 일년 이내에 갚아야 하니 허리가 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최근 국제 금리가 오름세에 있고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원화의 환율이 올라 1달러에 지난해 말에는 774원이었는데 요즘은 820원 꼴이다-인지라 이자 부담이 그만큼 늘었다. 원금도 갚으랴 눈 뜨고 뺏기는 이잣돈만 해도 5조원을 갚아야 하니 열심히 수출해서 번 돈의 태반이 그저 나가는 셈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불 시대를 열었다고 큰소리 친 정부당국 발표에는 국민 일인당 갚아야 할 외국 빚 2천2백불 (80년도 713불)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 가 다름 아닌 한국의 경제 현실이다.
예전에는 원화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나아진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올해 들어 다달이 수입 증가는 사상최대치를 기록하는 반면 수출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수출의 쌍두마차였던 자동차와 반도체가 부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의 견해이다.
하긴 자동차의 재고가 적정 수준인 4∼5만대의 곱절로 늘어났고 반도체 국제시세는 폭락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헐값이 되었다.
연초 16메가디램 반도체1개 당 48불이던 것이 8월에 는 12불로 떨어져 세계굴지의 반도체 생산국인 한국의 경제에 일격를 가하였다.
그 나마 다 떨어질 기색이여서 그 동안 반도체 특수로 재벌마다 중복 투자한 생산시설이 유휴시설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외채 증가와 경상수지 적자의 주요인은 수출 부진에다 사치성 소비재 증가와 기술 도입료 여행 수지 등이 겹쳐 있다.
국제무역기구(WTO)출범과 아울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에 따라 수입 증가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 폭은 개선될 전망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허리띠를 조르고 살려고 해도 어지간한 집값과 맞먹는 외제 자동차 등 소비재 수입으로 작자에 허덕여야 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우려되는 우경화
벌이가 좋아야 살림이 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벌이가 신통치 않으면 최소한 살림에 드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일반 가정에도 그렇고 기업과 정부도 그래야 한다.
줄여야 한다면서 누구는 줄이고 누구는 그냥 풀풀이 낭비하면 한쪽의 불만은 가중된다. 그것을 계급의 분화 과정이라고 한다.
경기의 불황이 악화되자 정부와 재벌들은 한결같이 임금의 동결과 대규모 감원을 내걸고 있다. 정부는 8월의 무역수지가 약 130억 불 적자를 나타내고 올 1월부터 8월까지 누적된 적자가 133억 불에 달하자 9월초 내년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임금을 최대한 억제할 방침을 밝혔다.
재벌들마다 잇따라 똑같은 조치를 결정했다. 살림이 어려운 만큼 비용을 줄여보겠다는 충심이었겠으나 그것은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조처에 다름 아니다.
정부와 신한국당은 내년예산을 올해보다 약 14퍼센트 인상(72조원 가량)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방비와 국민운동단체지원기금 등은 대폭 늘렸다.
국민운동단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한국자유총맹 둥 \' 관변단체 \' 를 이른다.
이들에게 올해는 40억 원을 지원했는데 내년에 는 세 배나 또는 110억 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 속뜻은 뭐라 해도 내년 대통령 선거에 이들을 유용하게 이용하겠다는 속셈이다.
재벌들이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 생산비용을 절약하겠다고 했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비용의 큰 비중은 앉아서 눈덩이로 불어나는 이자와 기술 도입료의 증가, 경제외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를테면 정치자금이 주가 되는 비용과 접대비 따위이다.
엄밀히 말해 벌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임금이 아니라 그 동안 손안
대고 코푸느라 쓸데없는 데 들인 비용이며 부자들의 헤픈 씀씀이다.
애꿏게 가난한 사람들의 허리만 졸라매려고 하지 물가 억제와 비생산적 비용의 절감엔 왜 둔한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현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우경화는 예사롭지 않다.
학생과 민주단체의 통일운동에 대해 오공화국 말기에나 있음직한 섬멸작전을 감행한 것이나 안기부법의 개정, 공정거래법의 재벌들 입장 반영, 영 서툴기만 한 이적단체 양산, 언론 공작 등 일련의 행보는 다음의 수순을 예상케 한다. 경제의 어려움을 빌미삼아 노동자를 내쫒고 국민의 허리띠를 조이며 \'안보의식\' 을 고취시켜 내년 대선에서 정권의 안정적인 이양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가하는 압력이 크면 반응하는 압력도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나라살림을 제대로 하길 바란다.
벌이를 제대로 못하면 살림이라도 짬 지게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