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꿈 팔만대장경 전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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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해인사 개산 1,200년 - 진화
1996년 10월 176호
요즈음 한국 불교의 불사는 거의 큰 법당을 짓거나 불상이나 탑을 조성하고 가람을 수호하는 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는 사찰치고 사원건물을 신축하거나 건물을 보수, 수리하지 않는 사찰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흔히 불사라 하면 법당을 짓거나 불상을 모시는 것만 불사의 전부인 양 법당을 짓거나 불상을 모시는 불사에 동참해야만이 큰 공덕이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불사의 결과가 눈앞에 나타나서 모양으로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중생심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법당이나 불상을 모시는 불사에는 시주를 선뜻하면서 인재를 키우는 일이나 불우한 이웃에게는 매우 인색한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제 우리 불자들도 사회의 변화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사를 담당한 스님들도 불사를 중생들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사의 근본정신은 존재의 실상을 여실히 깨달아 해탈하는 것과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을 제도하여 이 땅에 불 국토를 건설하는 데 있습니다. 일체의 중생을 고뇌, 망상에서 구하지 못하는 한 자신은 결코 열반의 세계에 들지 않겠다는 대승보살의 서원에 근원 한 것입니다.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 문화예술의 세계적 자랑거리이며 고려 불교문화의 꽃입니다. 지존의 중국대장경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제작된 고려대장경은 그 내용의 방대함과 정확도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대장경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경판의 정교성, 판본의 완벽성, 그리고 조판의 유구성, 팔만대장경이 갖춘 완성도는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높습니다.
그 이전에도 그만한 것이 없었고, 그 뒤로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 없습니다. 그 어려운 전쟁의 와중에서 십 육 년 동안의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 결실이었습니다. 그 대장경이 제작된 이래 칠백사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그 경판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대장경의 제작이라는 불사는 단순히 한 개인의 힘이나 원력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국력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십세기에 들어 일본이 고려대장경을 기초로 하여 활자 인쇄판 대장경인 대정신수 대장경 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이 대장경은 세계의 불교학계에서 불교연구 의 기본 텍스트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금 변화하는 한국 불교의 한켠에서는 새롭고 아주 중요한 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전산화하는 불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한문을 국어로 쓰고 있는 중국에서도, 재원이나 기술이 우리보다 앞서고 국민의 팔십 퍼센트 이상이 불교신자인 일본에서도 아직 못 한 일을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누구나 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시도조차 못하는 것을 우리는 시작한 것입니다. 현대는 정보의 심화로 인하여 사회각 분야에서 정보 기술을 이용한 연구가 여러 방면에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혁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정보 기술은 이제 우리사회의 전반에 영향을 주는 기술로 자리잡고 있으며, 불교계 또한 그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정보화 사회에서 컴퓨터는 이제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까지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는 불전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한다는 의미를 떠나서 정보화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불교정보를 생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불교의 자료를 거의 다 망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그것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불교는 어렵고 난해한 것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었으며 포교를 통한 중생제도에도 많은 부정적 영향을 주어왔습니다. 곧 불교의 훌륭한 교리들을 대중들에게 인식시키지 못하고 불교에서 사용하던 중요한 개념조차도 다른 종교에서 전유물인 양 사용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불교 자료 특히 고려대장경 등의 경전이 정확히 컴퓨터에 입력되고 누구나 쉽게 검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불교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시해 줄뿐만 아니라 일반불자들의 입장에서도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전자매체인 컴퓨터의 힘을 빌려 판각 속에 보존되어있는 우리의 팔만대장경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합니다.
실로 칠백 년 만의 대작 불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대작 불사가 불과 몇 스님의 원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허무맹랑한 꿈 같은 일이라고 냉소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꿈 같다고 생각되었던 일이 시작된 지 불과 이 년 만에 팔만대장경을 입력하는 작업을 완전히 마쳤습니다.
오천 이백만 자의 방대한 양을 일 년에 걸쳐 입력한 것입니다. 첫 단계 작업은 마쳤지만 아직 나머지 해야할 일들이 더 많이 남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정을 완벽하게 보아 오자가 없는 완전한 텍스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실용성 있는 검색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큰 일 중의 하나입니다.
불사 란게 그렇듯이 우리는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불사가 성취되면 한국 불교와 세계 불교에 미칠 효과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클 것입니다.
지금까지 장경각 안에 보존되어 있는 대장경은 살아 있는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와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가 올 것입니다. 학문적으로도 이 전자대장경으로 인해 한국 불교학의 위상이 세계불교학 속에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매김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2000년에는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불교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은 누구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것입니다.
그 전쟁의 와중에서도 우리의 선조들은 불경을 새겼습니다.
위로는 임금과 백관, 양반에서부터 밑으로 양민과 천민에 이르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한 장 한 장 정성들여 대장경을 만드는데 동참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무슨 염원으로 나라 전체가 전쟁으로 시끄러운 그 속에서 대장경을 제조할 생각을 했을까?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오늘 우리들도 그 시대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대작 불사를 해야 합니다.
팔만대장경이 그렇듯이 이 불사는 천 년에 남을 불사가 될 것입니다. 사실 엄청난 노력과 힘과 자금이 요구되기 때문에 몇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전자대장경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지만 그 자료의 방대함과 막대한 자금, 기술상의 여러 가지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점으로 보아 몇몇 스님이나 허는 한 단체가 담당하기에는 벅찬 일입니다.
그러나 비록 어려운 불사이기는 하지만 꿈도 있고 원력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옆에서 지켜보아 주는 많은 불자들의 눈도 있습니다.
다가오는 2002년에는 해인사의 개산 1200주년입니다.
대장경의 전산화는 21세기의 정보화 사회와 천이백 년의 역사를 연결하는 작업이고, 한국 불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해인사가 법보의 종찰로서 세계의 불교계에 기여할 수 있는 대작의 불사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