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칠갑산 장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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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풍광과 진경 - 이호신
1996년 10월 176호
칠갑산 가락에 홀로 사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장곡사 를 찾아가는 길이 되었다. 초가을 선선함에 메마른 가슴이 트이고 푸른 하늘과 맞닿은 들녘의 풍요로움에 나래짓는 새들과 잠자리, 그리고 고추밭의 아낙네 뒷모습이 정겹다.
충남 청양군 대치면 칠갑산 에 소재한 장곡사 길목은 천 년 사찰치고는 일주문도 없고 풍치림도 돋보이지 않는다. 이미 오 년 전 유적답사팀에 합류하여 둘러본 길이련만 어쩐지 낯선 초행길 같기만 하다.
우루루 몰려 다니는 바람에 장곡사 대웅전이 유일하게 두 개나 된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사실 대웅전이 두 개나 되는 사찰을 어찌 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서 떠나야 했기에 차창 너머 칠갑산 능선을 아득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높지 않으나 깊고도 넓게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이룬 칠갑산 자락의 장곡사는 가람 배치의 이분법만큼이나 모든 것이 파격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다. 신라 문성왕 12년 (850년)에 보조 선사 체징體澄이 초창하여 지금에 이른 가람 속에는 국보하나, 보물 넷을 지닌 작지만 속이 넘치는 도량이다. 동남향으로 앉은 상 대웅전 (보물162호)은 배흘림기둥의 맞배지붕으로 철조 비로자나불 鐵造毘盧舍那佛 (보물174호),
철조 약사여래불鐵造藥師如來佛좌대(국보58호)와 또 한 분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가히 생김새나 좌대가 파격적이다.
모두 고려전기의 새로운 불상 이미지로 인상이 해학적인 데다가 좌대
또한 석등 같거나 큰 좌대에 비해 불상이 작은 것이 시각적으로 불균형스럽다.
그렇지만 약사여래석조대좌의 귀 꽃이 사방에 솟은 것이나 전돌이 깔린 연꽃 문양의 바닥을 손으로 쓸어 보며 천년의 숨결에 감응되었다.
상 대웅전 옆의 응진전 의 나한상은 모두 여든 세 분을 모셨는데 마치 어린아이들이 빚어 놓은 조각 솜씨 같다.
모두 모습과 표정이 다르고 채색이 다양하다. 눈을 감은 상, 턱을 괴고 있는 상, 하늘을 쳐다보는 상, 고개를 숙인 상, 참선에 든 상, 눈을 부릅뜬 상등이 이채롭다.
오십 미터 아래의 하 대웅전으로 내려서는 계단 입구엔 팔백 년이 넘었다는 홰나무와 은행나무 수 그루가 가파른 둔덕에서 가을 빛을 타고 있다.
하 대웅전(보물 181호) 역시 맞배 지붕으로 주불로 모신 금동 약사여래金銅藥師如來(보물337호) 불상이 돋보이는데 상 대웅전에 견주어 깔끔하고 온화한 느낌이다.
은학루와 마주한 대웅전사이 봉향각 앞엔 다홍빛의 배롱나무 (목백일홍) 두그루가 아직껏 선명하여 뜰을 환히 밝혀주고, 칠 미터에 이르는 구유통 모양의 통나무 그릇은 장곡사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또 운학루에 걸린 코끼리 가죽으로 제작되었다는 북과 목어, 그리고 분명 괘불 보관으로 여겨지는 엄청난 크기의 관짝을 살피며 열선당 툇마루에서 붓을 들었다. 예전에는 비구니 도량이었다는 장곡사는 지금 두 분의 비구스님과 한 분의 비구니 스님이 함께 보이니 이 또한 다른 절과는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칠갑산 자락에 둥지를 튼 가람을 살펴보자 장곡사의 특징은 팔작지붕이 하나도 없은 맞배지붕의 가람이고 두 개의 대웅전이 풍광으로서는 크게 무리 없음이 밑그림 속에서 느껴졌다.
칠갑산에 사는 친구가 손수 만든 벼루에다 먹을 갈아주고 끝까지 동행하며 차까지 제공해 주었으니 칠갑산 장곡사는 이미 또 하나의 인연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