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3세’의 망신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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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로 가는 길 - 박원순
1996년 10월 176호
\'루이 13세\' 가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한병에 일백만 원을 호가하고 그빈병만 해도 칠만 원 한다는 프랑스의 초특급 꼬냑이 이 땅에서 유명해졌다. 크리스탈 병 목부분에 진짜 14K 장식이 되어 있고 진품증명서가 따라다닌다는 술이다. 외국으로 시찰 나간 우리 선량 한 분이 사왔다고 해서 말썽이 난 것이다.
먹기보다는 감상용으로 두고 보는 목적에서 구입한다고 한다.
그런 비싼 술을 사서 먹는 것도 한심하지만 먹지도 못하고 모셔 두기 위해 그런 술을 사들고 온다는 것은 더욱 한심한 일이다.
예전부터 국회의원들의 해외 시찰이 문제되더니 결국 이번에 또 터져 나왔다. 사실 국회의원들이 외국에 많이 나가서 해외 견문도 넓히고 자료도 수집하는 것이 잘못일 리 없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되면 나랏돈이나 기업이 대주는 돈으로 호화 관광이나 하고 국회의원의 위세로 현지 공관들의 관폐만 끼치는 일이 수두룩 했으니 문제다.
이번 15대 국회의원들도 국회의원 뱃지 단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지난 8월까지 외유길에 올랐던 국회의원이 268명이라니 전체 국회의원 숫자가 이백구십아홉명 가운데 외국에 안 나간 사람들이 뭐가 잘못된 사람들로 여겨질 지경이다.
1993년의 일이다. 필자가 미국 워싱턴에서 연수 받으면서 자주 미국 의회 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찾던 중이었다.
어느날 서고 뒤편에서 한국말이 들려 돌아보니 평소 알고 지내던 강신옥 의원이었다. 반가워서 그 도서관 구내식당에 가서 차를 한 잔 하였다. 무슨일로 도서관까지 들렀느냐고 했더니 당시 국회에서 도청방지법 제정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관련 자료를 찾는다고 하였다.
다른 의원들은 회의 핑계대고 외유왔다가 진짜 외유를 떠났는데 혼자그 외유를 마치고 도서관으로 왔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당연히 신기한 일이 되고 말았으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국회의원이 좋은 법 만들고 나쁜 법 고치는데 밤낮을 고민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한가로이 외유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차라리 경이롭다.
호화 쇼핑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소속된 여야 부총무들의 러시아-노르웨이 방문 일정표를 보면 온통 유적지답사, 시내 관광, 피요로드 관광, 유람선 승선 등이다. 열이틀 동안의 방문 일정 동안 공식 일정은 단 두 시간의 러시아 하원의원 예방뿐이다. 대사주최 만찬이 방문지마다 끼어있으니 대사가 할 일이 없어 국내 손님들 뒤치닥거리만 하고 있는가 보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유권자인 국민들의 책임이다. 진실로 국정을 염려할 만한 사람은 제대로 뽑지 않고 돈 많고 잘 놀만한 사람만 뽑았으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이번 15대 국회의원들이 재산 등록을 한 것을 보면 일인당 평균 이십 억 원이 넘었다. 신고된 것만 해도 그런데 실제 재산은 이보다 몇 배가 넘을 것이다. 이만한 부자를 뽑아 놓았으니 돈 쓰는 버릇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고치겠는가.
원시경전 가운데 가장 좋은 말만 골라 놓았다는 「법구경」에는 이런 아름다운 말이 나온다.
\"논밭은 잡초가 버리고, 사람의 마음은 욕망이 버린다\"
재산 있는 사람은 명예와 권력을 다 차지하려 들고 권력 지닌 사람은 또 재산까지 불리려 든다. 끝없는 탐욕은 결국 자신을 망치고 만다. 그리고 이제 그 탐욕이 나라까지 망칠 태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