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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복, 대중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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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철 1996년 10월 176호
선사의 제자인 혜월慧月스님께서 하루는 산을 개간하여 논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개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존의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았다. 그러나 그 비용을 들여 세 마지기 밖에 마련할 수 없었다.
좋은 논을 팔아서 나쁜 논으로 그것도 평수까지 줄여 놓았으니 대중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이 소견머리 없는 놈들아. 논 다섯 마지가 어디 갔더냐?
어느 누가 농사를 짓던지 다섯 마지는 그대로 있고 세 마지기는 더
불어나지 않았느냐?\" 라고 호통을 쳤다.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눈을 대중에서 열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찰로서는 그만큼 복을 지었다는 것도 아울러 가르켜 준 것이었다.
부처님은 \"수행자는 중생의 복전福田\" 이라고 일러주었고 혜월스님은 \"중생은 수행자의 복전\"임을 아울러 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복전이 되는 셈이다.
수행자도 복이 있어야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부처님 당시에도 한 비구는 탁발을 나갈 때마다 빈 바루로 돌아와야 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처님께 여쭈니 \"전생에 지혜만 닦고 복은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복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것은 결국 복은 지혜를 닦도록 도와주고 지혜는 복을 써야할 방향성을 가르켜 주기 때문이다. 복과 지혜가 서로 어우러져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수행자 개인의 복이라는 개념은 대중이나 사찰이라는 집합적인 복개념으로 나아갈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대중은 대중복을 지어야 하고 사찰은 사찰의 복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도반연道伴緣 토지연土地緣을 입을 수 있고, 동업同業을 맑힐수 있고, 별업別業을 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별업別業이야 개인의 문제이지만 동업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복이 모여서 대중복이 되고 대중복이 또한 개인의 복으로 환원되는 경우도 많지만 엄격히 나누어 보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개인의 복 만들기가 전체의 복 만들기로 연결된다면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것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개인의 복을 줄여서라도 전체의 복을 늘여야 한다.
혜월스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늘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사찰과 대중의 이름으로 사회공동선共同善의 추구와 함께 사회복지에 적극 동참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하겠다.
사실 수행자 개인의 복은 한정이 되어 있다.
이 복을 자기를 위해서 쓰느냐 대중을 위해서 쓰느냐가 다를 뿐이다. 부처님은 당신이 누릴 복의 많은 부분을 후학을 위해 돌려 놓았다.
그 음덕으로 교단이 2500년 동안 유지되어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