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 상식 밖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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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법등
1996년 09월 175호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을 보면 곧 상큼한 가을의 향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자못 기대가 된다. 복잡한 도시생활을 벗어나 마음을 한껏 열어 보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조용한 계곡, 아득한 숲 속의 산사를 떠올리거나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가슴이 확 트이는 넓은 바다를 찾아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됨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최근에 해외여행이 자율화 되어 외국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다녀온 소감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만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 한결같은 뒷 얘기다.
몇 년 전 지리산에서 살고 있을 때 마침 호주에서 온 선부님이 암자를 찾아와 우리나라의 자연과 스님들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의 산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모두가 넓은 하나의 커다란 공원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과 같은 청명한 하늘은 볼 수 없었다”는 말 또한 기억이 난다.
이러한 자연 환경에서 수행할 수 있음을 부러워하는 그의 시선에 나는 어깨와 목에 힘을 주기에 충분했고, 은근히 일어나는 희열감마저 느꼈다. 그와 나눈 대화 가운데에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이렇듯 좋은 자연 환경을 찾아 속진의 때를 벗어 나름대로의 큰 뜻을 성취하고자 산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스님들은 참으로 멋있는 삶을 사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어찌보면 이러한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일임에도 신부가 되거나 스님이 되는 것을 상식 밖의 일로 여기는 딴 사람들도 있다. 아니 상식을 벗어 나야만 큰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와는 또 다른 상식 밖의 일을 하면서 이 작은 나라 안을 시끄럽게 하는 것이 있다.
나라에서 정한 특정 자연보존 지역인 국립공원 안에 골프장을 만들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발상을 한 자체가 당연히 상식을 벗어난 일이라 여기기 때문인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이러한 일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로 국립공원 안에 이백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골프장이 들어서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더구나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백여 곳의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다. 산의 중턱을 깎아 내어 골프장이 들어선 곳에서는 하나같이 인근마을이 수해를 입게 되었다. 물론 공사 착공 전에 이루어지는 ‘환경영향 평가’라는 것이 해당 공사업자측의 주도로 행하여지는 것으로 현행법상의 맹점을 이용하여 허가를 얻을 당시에는 정부기관이나, 지역주민들에게는 당연히 농약으로 인한 오염방지라든지 각종 재해를 대비한 예방책을 충분히 갖춘다고는 하지만 이미 완공되어 운영중인 골프장에는 이미 최소한의 기업윤리마저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과거와 같은 일일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나침은 화를 자초하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세계화’의 기치를 내걸고 안팎으로 많은 성장을 하였다.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 소득이 만 달러에 달하는 높은 생활 수준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골프 인구가 늘어가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골프가 국민 생활 스포츠로 자리잡기에는 아직은 우리나라에는 무리가 따르지 않은가 싶다. 다시 말해서 소수 특정인들을 위한 골프장이 국립공원 내에 지어진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국보인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산 잔디가 깔리고 맹독성 농약이 뿌려지는 국립공원 내 골프장 건설은 ‘세계화’는 고사하고 ‘망국화’로 치닫는 실로 세계적인 망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성장은 선진국 수준에 일고 있지만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는 시민의식의 결여로 자연의 고귀함과 생활환경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우리의 문화 의식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차츰 고가의 외국산 잔디 속에 묻혀 가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수돗물을 못 먹는 것이 당연시 되어 물을 사 먹게 되고 도심속에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오존 경보’라는 따위의 마을 무덤덤히 들으며 급기야는 ‘신선한 공기(?)’를 팔고, 또 사서 마셔야 하는 이러한 일들은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상식을 벗어난 사회속에 살면서 한편으로는 ‘복지 국가’를 외치며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꿈꾸는 이중의 모순 속에서 우리는 이미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국가의 시책은 분명 국민들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그것은 곧 국민 건강과 부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강이 오염되고, 호수가 썩어가고, 도시 전체의 인구가 이주해야 할 말큼 죽어 버린 도시.
맑은 강과 청명한 하늘이 검게 물들며, 이 아름답던 자그마한 땅덩어리가 우리의 정신과 함께 사라져감에도 우리는 너무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자연보호’라는 말에 익숙했던 우리가 지금은 ‘환경오염’, ‘자연파괴’라는 말에 더 익숙해져 버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있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국립공원인 가야산에는 이백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골프장이 들어설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일을 막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결코 일부언론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한 지역의 이기주의나 특정 단체의 이익을 목적으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책임의식을 통감하여야 하며 또한 반드시 막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리 승가는 과거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외세의 침략에도 승병을 일으켜서 물리쳤으며, 온 나라의 염원을 모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그 위대했던 민족정신은 어디에 가고 이제는 그 얼이 담겨져 있는 이곳에까지 외국산 잔디로 뒤덮혀 우리의 민족정신과 국민적인 양심마저 파묻히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