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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승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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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적축 - 원철 1999년 05월 207호
하루를 열면서
아침 공양을 마치면 운부암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저수지 쪽으로 포행을 간다. 겨울철에는 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하지만 그래도 산책길이 좋아 비가 쏟아지거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나같이 함께 나선다. 오며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공부의 깊이를 더하기도 하고 출가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서로 탁마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삼십 분쯤 걸려 은해사 큰절로 돌아오면 ‘다로경권茶爐經券’이라는 경봉스님의 편액이 걸린, 전망이 가장 괜찮은 방에서 방 주인인 팽주스님올 모시고 아침 차를 나누면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걸걸한 비구 십여 명이 한자리에서 삼년을 산다는 것이 어찌 예삿일이랴. 그럭저럭 무사히 삼년 기간의 회향을 눈앞에 두고 종강을 하였고, 저마다 해인사, 직지사, 실상사 둥 제방으로 떠났다. 비구 노릇하면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노라고 회고하면서.

곳곳에 교학 도량을
개혁불사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교육원의 설립과 그에 따른 은해사 대학원, 실상사 화엄학림, 봉선사 능엄학림, 파계사 영산율원의 설치일 것이다. 그 전에는 강원을 마치고 나면 더 이상 경전을 볼 곳이 없어 개인적으로 인연 있는 선지식을 찾아가 사사를 받는 도리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림 이 년, 승가대학원 삼 년해서 모두 오 년에 걸쳐 제도화된 장場 속에서 경전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교학도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 가는 느낌이다. 선禪과 교敎는 새의 양 날개이다. 어느것 하나가 부족해도 불교는 절름발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위의 새로운 교육 기관중에서 은해사 승가대학원은 종단의 파격적인 지원과 대학원장 무비 강백스님의 책임 이래 ‘삼장三藏의 연찬硏鑽을 지상至上의 과제로 삼고 살아가는 경학도經學徒들의 결사도량’을 표방하면서 전통강사 양성에 목적을 두고 설립한 종단의 최고 교육 기관이다. 삼년 전 모집 공고를 낼 때만 해도 교육원 소임자들은 이 정도의 파격적인 조건이라면 학승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십여 명밖에 오지 않아서 저으기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교학부분이 인력의 층이 얼마나 얕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고 하겠다.

자료의 대중화
졸업 과제물은 한 사람마다 번역물을 하나씩 내는 걸로 했다. 쓰는 사람이 한번 원고 지도교수가 한번 읽고 마는 논문보다는 차라리 원전을 우리 말로 옮기는 것이, 비록 단순한 1차 가공에 지나지 않아도, 논문의 파급효과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화엄경 청량소」(반산), 「능엄경 정맥소」 (현진), 「열반경 소疎」(능허)를 잡아서 평생 작업으로 걸어놓기도 하였고, 지루한 작업을 마쳐 사전을 찾는 시간을 대폭 줄여 준 「불광사전 색인」(원일), 기존 번역의 오류를 시정함은 물론 많은 자료들을 집대성한 번역본인 「서장」(지상), 「역주 능엄경」(일귀), 「벽암록」(응각)과 한글 초역인 「법화전기」(선행), 「역주 선림숭보천」(원철) 등이 개인들의 성과물이다. 그리고 공동으로 작업한 「금강경 전서」, 「삼국유사 현토」, 「법화경 강의고재」, 「정선 선문염송」등은 기존의 자료들을 나누어서 컴퓨터에 입력하여 새롭게 정리한 전통강원의 고재본들이다.
특히 「금강경 전서」는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기존의 「금강경 오가해」에다 여섯 가지 번역본을 함께 더하여 단락단락 나누어서 각 번역의 차이를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료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그리고 승가학회와 공동으로 인터넷에 떠 있는 불교 자료 모음집인 콤팩트 디스크를 만들어 공개하면서 불교 자료의 대중화에도 한몫을 하였다. 앞으로도 교단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영원한 역경, 교학 공간으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번역도 수행이었다
1967년 4월 용주사 역경원에서 역경사 십여 명을 배출한 뒤 삼십 년 만에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교육시키는 역경 인력인지라 매주 월요일마다 일 주일치의 번역 과제를 제출하여 원장 스님의 감수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번역에만 심혈을 기울일 때는 좋은 번역이 나오지만 행사가 있거나 다른 일이 있어 그것을 봐주느라고 시간이 모자라 그저 대충 양만 채우는 날은 번역의 질이 형편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번역도수행인 셈이다. 원고지 매수만 채워 책임만 모면한 부분은 나중에 두고두고 다시 애를 먹였다. 이번에 출판사에서 「역주 선림승보전」의 교열을 보면서 ‘이 부분은 번역이 이상하다 면서 빨간 줄을 쳐서 보낸 부분이 유달리 많은 곳은 어김없이 그렇게 쫓기면서 번역한 부분이었다. 그 부분을 손보는 것은 차라리 다시 번역하는 것보다 더 성기시고 귀찮은 일이었다. 과보는 금방 돌아오는 것이다. 한번 할 때 야무지게 하는 것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을.
구마리집, 현장법사의 번경원飜經院, 간경도감, 동국역경원 등 공식 기관을 통한 국가적인 번역 사업 못지 않게 개인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번역의 양도 적지 않았다. 이 땅 곳곳에서 지금도 많은 출가자 재가자들이 개연 번역으로 한켠에서 법등을 밝혀가고 있다.

연재를 마치면서
부처님의 마칼타 어語로 시작된 가르침이 한문 번역을 거쳐 오늘날 한글대장경으로 이어진 이천오백 년 동안의 긴 장정을 한번 더듬어 보고자 한 것이 황권적축黃券赤軸-대장경의 다를 표현-의 연재 목적이었다.
긴 날들이었다.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원고 마감일은 빨리도 돌아왔다. ‘하늘 아래 쫓기지 않는 명문장은 없다’고 하더라만 그게 아무나 갖다 불일 수 있는 밀인가. 별 내용도 재미도 없는 글을 관심있게 읽어 주고 비판하고 조언하고 격려해 주신 많은 분께 고개 숙여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