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깨달음과 문학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고은 1996년 09월 175호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소리에서 우리는 특별한 정서를 체험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특히 시인들이 바람소리에 민감하다. 바람소리도 여러 소리가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예로부터 가장 좋다고 여겨 온 바람소리는 송뢰, 곧, 솔바람소리라고 했다. 솔바람소리에는 아릿한 아픔이 들어 있다. 또한 우리의 심신을 정화시킴으로써 들뜸과 허장성세를 다 가라앉혀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게 하는 무서운 겸허의 경지를 그 솔바람소리가 우리에게 베풀어 주기도 한다.
고려의 시인 중에 김한광이라는 시인이 있다. 이 사람은 그리 유명하지도 않고 문학사적으로 크게 족적을 남긴 바도 없지만, 시인으로서의 태도에서는 어느 시언 못지 않은 경건성을 스스로 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솔바람소리를 시로 쓰기 위해서 숲속에 가서 이레 동안 마치 기도하듯이 솔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이레가 지난 뒤에 아름다운 솔바람소리에 대한 시가 한 편 나왔으면 참으로 축복 받았을 터인데 그러지 못했다. 시작에 실패하고 산을 내려가는 그는 산골짜기가 울리도록 통곡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첫머리에서부터 훌륭히 성취한 시인을 전제하지 않고 실패한 시인을 전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또 하나, 이는 장차 내가 쓰려고 하는 소설의 소재이기도 한데,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을 생각해 보자. (내가 되지 못하게 적지 않은 시집을 낸 데에 대한 반동이랄까, 반성이랄까, 하여튼 내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끝에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의 일생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늘 시를 이야기하면서 후배들에게 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고, 제자들의 시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지적해 주기도 하고, 이따금 시론도 제기하고 하지만, 죽을 때까지 시 한 편도 발표하지 않고 죽은 뒤까지 시 한 편도 남기지 않는 시인 말이다. 시를 쓰지 않는 이 시인은 끝내 솔바람소리 시를 쓰지 못한 시인과 어떤 점에서 일맥상통 한다. 아무튼 솔바람소리 시를 쓰기에 실패한 고려 시인 김한광은 자신의 울음소리가 골짜기를 울리는 것 자체로서 솔바람소리의 시를 대신하고 내려가 버렸다. 이 솔바람소리, 이 절묘한 소리를 우리가 어떻게 시로 쓸 수 있을까. 어디 솔바람소리뿐인가. 오랜 풍상을 지나면서 자연과 완전한 조화를 이룬 깊은 산중의 산사, 그 산사에서 나이 지긋한 노승의 독경 소리며 신새벽을 깨우는 어린 사미승의 도량송이 퍼질 때 그 산사의 고요한 풍경에 어우른 그 소리 또한, 그 절묘한 솔바람 소리마냥, 시의 경지에 완전히 합치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식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의 정서가 풍부하다 보니, 흔히들 말하기를 동양은 자연과 합일된 삶을 살며 자연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치 서양은 모든 것이 데르카르적인 이분법으로 되었으며, 모든 것이 희랍의 이성주의나 합리주의에 기초하였고, 그럼으로써 자연과 떨어져 나갔다고 말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명석하게 개념을 취득할 수 있는 서구의 이분법을 무조건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껴안아야 하며 또한 잘 배워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서구는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잘 자연을 섬김을 본다. 이를테면 독일의 삼림 관리인들은 숲속을 결을 때 함부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자신의 숨결 하나가 나무들이나 새 소리 하나라도 건들새라, 사뭇 경건하게, 마치 성스러운 기도처에 들어가듯이 아주 경건한 지성소에 가듯이 그렇게 숲속을 간다. 결국, 이 시절에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우리를 만들어주고 우리를 태어나게 했던 이 땅, 이 자연에 대한 소중함에 사무쳐 있는 것이다. 그 위에 고도의 인위적인 창조 행위를 올려야 되겠다 하는 것이, 결국, 불교문학의 개념을 논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선 후기에 죽난시사라는 시 동인회가 있었다. 그 죽난시사 동인 몇 사람이 어느 날밤에 지금의 서울 서대문부근에 있던 한 연못을 찾았다. 그들은 아주 작은 거룻배를 몰고 연잎이 있는 데로 조용하게 다가가 새벽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신새벽에 연꽃이 막 필 때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물론 탁 하고 연꽃이 한순간에 활짝 피지는 않겠지만, 들릴 듯 말 듯한 그 절묘한 소리 한마디를 들으려고 밤새도록 있다가, 소리를 듣지 못하고 놓친 사람은 허방다리로 돌아와야 했겠지만, 마침내 새벽에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수행을 한 귀를 지닌 기쁨을 누렸을 터이다. 그 죽난시사 동인들은, 한편으로는, 사회 현실일랑 등지고서 다시 말해 세속의 어떤 정의나 정치적인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그런 허허로운 놀음에 몰두하였다고 비판받아 마땅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어떤 구경究境의 소리를 한번쯤 듣는 귀라면 세상의 소리도 올바로 들을 수 있는 귀의 교양을 갖추고 있지 않겠는가 싶다.
각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깨달음과 문학’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과연 불교문학이란 무엇인가 살펴보자. 불교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그냥 불교문학이라 하는 것을 비논리적으로 수긍해 보자. 불교문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매우 행복한 기반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불교경전을 아우르는 12부경이 있기 때문이며, 그 12부경 전체가 이미 문학적 형상화를 다양하게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교의 진리 진원의 형식을 쉽사리 문학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일견 무리이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깡그리 부정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구약 성경에 나오는 ‘시편’이나 ‘아가’서는 그 무렵 그 땅의 민중들과 목동들이 부르던 노래이며 연가였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이해되고 해석되기도 하지만, 또 한켠으로는 문학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서양의 경우 이런 예가 꽤 많다. 굳이 그런 보기를 들추지 않더라도, 종교와 문학은 본질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종교의 언술은 반드시 문학의 담론 또는 문학의 구체적인 실체와 일치되지 말라는 법이 결코 없다. 이런 전제하에 우리는 불교경전 12부경 전체를 문학으로 파악해도 좋을 성싶다.
불교경전은 문학적 시각에서 보면 위대한 작가에 의해서만 가능한 위대한 문학이다. 그렇다면 불교문학의 작자는 석가모니 한 분만으로도 충분하고 또 그 제자 몇으로도 충분하며, 더 이상의 불교문학 없이 그 경전만 늘 음미하고 재해석하고 현대화시키면 되지 우리가 새삼 더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나옴직하다. 동시에 이미 양적으로 한 지역의 문학사 몇 천년에 견줄 수 있는 그런 방대한 양이 팔만사천 법문에 있고 그밖에 여러 조사들의 전
적들이 문학의 형식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는, 그런 우리의 행복이 곧 불교문학의 불행일 수도 있다고 설정해볼 수도 있다. 그것은 대장경이나 대승의 여러 논장들이 성취해 놓은 업적에 압도당해서 그 뒤의 불교문학이 왜소해지고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한 사실도 얼마쯤은 지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까닭에서 불교문학이 더 높은 단계의 문학적인 지지향을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도 사실 가능하다. 하지만 불교는 이러한 장엄한 경전문학이 과거로만 고정되지 않고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또 앞으로도 또 하나의 장엄성을 이어 왔고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성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는 재미있게도 본생담이라고 하는 문학 형식이 있다.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이 본생담은 ‘자아타카’라고 하는데, 내가 태어난 이 존재 이전의 세계를 한없이 그리고 있다. 석가모니는 이 세상에 와서 부처님이 됐지만, 옛날에는 참새도 됐다가 여우도 됐다가 구렁이도 됐다가 갈보도 됐다가 술주정뱅이도 됐다가 또 어느 산의 호랑이도 됐다가 사기꾼도 됐다가 별별 중생 노릇을 다하다가 지쳐서 마침내 자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굶주린 호랑이가 있으면 아낌없이 제 몸을 주어 버렸다. 이렇게 육도중생을 헤매다가 슬슬 좋은 일을 하나하나 하다보니 조금씩 좋은 업이 쌓였고 그러던 끝에 석가모니로 태어나 수행을 통하여 마침내 부처를 이루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단지 6년의 고행 끝에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전생에수천 번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을 나고 죽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오랜 동안의 수행과정이 있었기에 부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밤새도록 이슬 한 방울 만들어서 풀 끝에 맺혀진 것이 부처인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부처가 부처를 이루기 전의 역사를 그리는 일, 이것까지도 불교문학의 공간인 것이다. (이런 자아타카의 세계까지 또한 우리 뒤의 수 없는 세계까지 모두 설정하다 보면, 그윽하고 한없이 넓어서 어떻게 정할 수 없어서 자칫 불교문학은 그냥 허망함에 빠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없잖아 있다.) 우주 전체를 무대로 하는 화엄경도 그런 한없이 넓은 무대를 제공한다. 하늘에 있는 어느 나라에서 설법을 했는데, 그것으로 모자라서 또 어
디 지상에 와서 설법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바다 밑의 용궁에 가서 또 설법을 한다는 것은‘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안이 아니라 이 육안을 때려서 형안을 눈뜨면 그것까지가 다 현실일 수가 있다. 비단 불교문학뿐만 아니라 미래에는, 지금 벌써 우주가 점점 경험 가능의 세계가 되어 가듯이, 그런 세계가 자연스럽게 모든 문학의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화엄경은 상고시대의 인도인들의 서사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런 극적인 구조의 서사성이나 비유의 확대 또 시적인 전개는 중국문학의 고대적인 배경을 두고 많이 이용하게 된다. 그에 따른 중국의 불교문학 계보를 보자면, 우선 남북조시대에 혜원 선사와 더불어 정토결사를 맺은 도연명과 사영훈 같은 위대한 시인이 있고, 다음에는 대표적인 시인으로 두보가 있다. 사람들은 두보를 유교적인 시인이라고만 알고 있지만 마지막에 선사들과 자주 교류했으며 또한 시를 통해 초조, 이조, 삼조, 사조, 오조, 육조 혜릉 및 칠조를 노래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나라에 오면 시불詩佛 곧 시의 부처라고 일컬어지던 왕유가 있고, 또 민중시인 백낙천이 있다. 송대에는 또 소동파 소식이 있다.
이런 찬란한 불교문학의 계보는 한반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고대에는 향가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진각 보조 국사의 상좌였던 혜심스님이 있었는데 아주 빼어난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의 선시와 당, 송 양대의 선시를 모두 모아서 연송이라는 것을 만드는 한편 스스로도 많은 훌륭한 선시를 남겼다. 그 다음에 가깝게는 ‘님의 침묵’을 쓴 만해 한용운 스님과 또 육당 최남선이 있다. 최남선이 쓴 ‘백팔번뇌’라는 작품은 문학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다루어져야 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이렇게 고대로부터 중세, 근세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주종은 언제나 소설보다는 시 형식이 많았다. 물론 중국 명대의 ‘서유기’처럼 위대한 불교 소설문학도 있지만, 특히나 불교는 주로 시를 통하여 이야기해 왔다. 경전의 경우도, 먼저 산문으로 쓰고 다시 시로써 내용을 요약해서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강조 효과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시나 노래에는 어떤 힘이, 극적인 비장함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산문으로 서술하다가 이것을 시로써 다시 장중하게 옳으면 새삼스러이 비장한 진리와 만나는 실감을 하게 된다. 동양에서의 불교문학이 오랜 세월 시의 형식으로 이어졌듯이, 서양에서도 12세기에 단테의 ‘신곡’이 나온 이래 기독교 문학에서 소설이 등장한 것은 불과 몇 백년 전의 일이다.
불교경전 12부경이 이미 선보인 소설형식이나 극형식, 다채로운 산문형식과 시형식 또시와 산문의 혼합형식, 이런 따위의 여러 가지 장르를 시형식 하나로서만 계승하는 전통은 고대, 중세에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불교가 중국 대륙에 뿌리를 내리는 동안, 그것의 시적인 풍토에 따라 다른 형식의 문학을 일단 유보한 까닭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근세에 와서는 소설형식으로서의 불교문학을 가능케 했고, 그것은 선문학 제1세대인 한용운등의 시와 함께 이광수의 불교소설을 통해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들 소설로서의 불교문학은 계몽성이 앞서고 작가의 한계와 시대의 제약에 의해서 전율할만한 그런 높은 단계의 문학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다음단계의 문학의 가능성을 과제로서 남겨놓은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설은 오랜 전통을 누려 온 시의 힘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선종이 오랜 세월 발전시킨 게송으로서의 선시의 맥락은 차지하더라도, 근대 이래로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서정주, 조지훈 등의 눈부신 성과가 그런 사실을 대변해 준다.
이미 20세기와 함께 서구문학은 불교사상에 의한 또는 동양사상에 의한 경이적인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며, 실존철학 이후에 불교는 그들에게 불가결적인 직관과 영감 같은 것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 관용을 지금 내포시키고 있다. 사정이 이런 바에는 불교문학이야말로 현대 세계의 각지역에서 가장오래된 자리이면서 동시에 가장 새로운 가치로서의 문학의 여러 주제에 개입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스페인어권의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는 도교나 불교 같은 동양정신이 아주 중요한 소설적인 징후로서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파스나 마르께스 같은 여러 중남미 작가들은 이런 동양사상에 많이 매료되어서 거기에서 문학의 많은 창조적인 질료를 얻고 있음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불교문학이 확고한 문학으로서 제 기능을 하고 아름답게 꽃 피려면, 상투적인 불교의 찬사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예찬 일변도의 글이나 단순히 종교 귀의자로서의 문학은 그것이 비록 문학의 형식을 빌렸다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결코 문학이 아니다. 적어도 그것이 문학인한, 자기 부정적인 절실성 없이는 더 이상 문학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극하게 믿는 종교 진리, 또 자신이 이루어 온 문학·예술 이런 것에 대한 회의가 없다면 그 사람은 작가이기는커녕 미처 사람도 못 될 터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자기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나 자기 부정의 힘이야말로 그를 더 높이 올릴 수 있는 힘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불교문학은 깨달음의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불교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깨달은 자의 문학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옛날의 오도송들은 모두다 깨달은 소리만 담고 있을 뿐, 한 줌의 번뇌도 없이 온통 깨달음 투성이임을 본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불교문학이 제 모습을 갖출 수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깨닫지 못한 자의 문학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깨달음과 문학의 관계는 깨달은 자의 문학과 깨닫지 못한자의 문학이 함께 얽혀져 있어야 비로소 원만하게 의미를 지니며 그럴 때에 온전한 문학을 이룰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번뇌 자체가 곧 깨달음이고 보리인 것이다. 아니, 거꾸로 깨달음 자체가 번뇌인 것이다. 번뇌 즉 보리이며, 보리 즉 번뇌인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는 보리도 없고 번뇌도 없어지는 그 어떤 경계, 여기까지가 깨달음과 문학의 관계가 설정되는 기본일 것이다.
인간은 지금까지 자연을 지배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 이 자연을 개발하고, 공업화하고, 경제화하면서 지배해 오던 끝에 스스로 그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실컷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리 저리 파헤치다가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부랴부랴 정부에 환경부까지 만들어 가면서 그 잘못을 돌이키려고 고심하고 있다. 저 뒤에 있는 벌레나 새가 죽으면 나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 모두가 함께 사는 중생이고, 함께 살아가기가 중생인 바, 함께 사는 문학을 해야 할 터이다. 공생共生의 문학, 이것이 바로 불교문학의 본령이기도 하다.
끝으로, 온고이지신이라는 말도 있듯이, 불교문학이 과거로서의 무게에 억눌려 있지 않으려면, 그 과거의 성과와 역사를 오늘에 새롭게 돌이켜보는 작업을 통해서 미래로의 무한한 공간을 향하여 충실한 미학적인 정진을 이루어나갈 때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불교문학이 가능하리라고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