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론正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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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철
1996년 09월 175호
실상사 선우도량에서 얼마전에 승가교육제도에 대한 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거기서 전통승가교육기관의 이름을 “승가대학”으로 하느냐 “강원”으로 하느냐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교육목표나 교육내용이 결정된다는 주장과 이름이 어떠하든 내용이 문제될 뿐이라는 두 견해가 팽팽하게 맞섰다.
벼슬 운이 별로 없던 공자에게 제자들이 물었다. 만일 관리가 된다면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 곧 정명正名을 가장 먼저 하겠다고 대답한다. 예나 지금이나 명칭이 문제이긴 문제인가 보다.
요즈음 절집안에도 신조어가 많이 보인다. 새로 만든 말도 있으나 기존에 있던 말을 재발굴하여 새롭게 의미부여를 한 경우도 있다. 개혁회의 이후 “체탈도첩”이라는 말 대신에 “멸빈滅 ”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해인사 영암스님이 처음으로 썼다는 “한주閔主”라는 말은 당시에는 어른에 대한 적당한 예우의 표현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었으나 지금은 좋은 의미로 보편화되었다. 3월 정대불사의 방榜에 산중원로에 대한 예우의 표현인 “주법主法”이라는 낯선 표현도 요즈음 등장하였다. 불광법회에서 일찍부터 쓰던 “법주法主”라는 말의 뒤를 이어 요즈음은 여러 사찰에서 “회주會主”라는 말도 심심찮게 쓰고 있다. 늘 의전문제, 지리문제, 호칭문제로 행사 때마다 곤혼을 치루는 실무자의 고민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여법해서 좋아 보인다. 하지만 정도를 지나쳐서 무슨 “고문”이니 “자문”이니 하는 세속의 용어를 무분별하게 도입하거나 “사장”, “의원”, “이사장”, “총재” 등에 이르면 뭔가 “이게 아닌데”하면서 고개를 가우뚱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뜻도 시절 인연을 잘못 만나면 영 시원찮게 된다. 주지住持라는 말이 그 좋은 예이다. 본래의 뜻은 “정법으로 세상을 교화한다(正法安住 執持敎化)”는 깊은 뜻이 담겨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살림 사는 스님, 욕심 많은 스님, 공부는 뒷전인 스님’ 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부각되다보니 주지라는 말 자체가 탁해져 버렸다. 같은 말도 동업同業에 의하여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장로라는 우리 용어는 타종교의 말이 되어 버리고 원로라는 말로 대체되는 경우도 생겼다.
이제는 불교의 정명正名도 어떤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일이나 새로운 지리가 만들어지면 거기에 합당한 명칭이 있어야한다. 그럴 경우 전거典據를 찾아서 알맞은 이름을 골라내야 한다. 적당한 명칭이 없으면 비슷한 의미를 바꾸어서 사용하고 그래도 안되면 조어造語를 하되 불교적 정서를 고려하여 만들어야 한다. 물론 기존에 사용되는 말은 세간으로까지 대중화될 수 있도록 즐겨 사용해야한다. 이것을 불교적 정명론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