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님은 1947년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74년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과 시가 당선되었으며 1990년 제2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집으로는「월행」, 「다시 울문리에서」가 있고 시집으로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생각하곤 했다. 쉰살이 되면 집을 떠나겠다, 그리하여 나를 얽어매던 모든 고삐며 끈으로부터 벗어나 혼자가 되겠다.
그 동안 단 한번 혼자가 되어 본적도 그리고 어떻게 해야 혼자가 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혼자가 된다는 것은 먼저 인도나 티베트같은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막연하지만, 거기에 가면 혼자가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올해에 나는 마침내 쉰살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리저리 나를 얽어맨 고삐며 끈을 벗어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나는 혼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일 터인 인도로 떠나는 일조차 해내지 못했다. 저 고삐며 끈 따위를 단칼에 끊는 식으로 결단을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쉰살이나 되어서 그런 식으로 혼자가 될 수는 없었다. 좀 더딜지라도 먼저 나를 얽어맨 고삐나 끈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뒷정리를 하는 것이 나처럼 뒤늦은 나이에 혼자가 되려는 자의 순리일 것이다.
만일 그런 순리를 무시하고 성급하게 저 고삐며 끈을 단칼에 끊어버린다면, 그렇게 인도나 티베트 같은 곳으로 간다면, 나는 거기서 혼자가 되기는 커녕 억지로 끊고 온 고삐며 끈에 스스로 몸이 감겨 헤어나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며 아내, 그 동안 한두 군데가 아니게 진 글빚, 심지어 술이나 여자에 대한 갈망 같은 자신의 부도덕까지도, 단칼에 끊는 식으로 나 몰라라 한다면, 그런 짓이야말로 참으로 더러운 자의 뻔뻔스러운 도피에 다름 아닐 터이다. 그런 식이라면 기왕의 자리에서 여전히 자신을 더럽히는게 낫지 공연스레 애꿎은 인도나 티베트까지 더럽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니랴.
생각다 못한 나는 올 한 해를 혼자가 되려는 나와 나를 얽어매는 고삐며 끈 사이에 일종의 중간고리로 삼기로 작정을 하였다. 나로서는 그런 중간고리의 구체적인 표현이 산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정초에 노트북 하나만을 달랑 어깨에 맨 채 지리산으로 갔다. 지리산에는 국선도 수련원이 있는데, 어떻게 인연이 되어 방 한 칸을 마련할 수 있었다. 수련원에는 열다섯 명쯤 되는 수자修者들이 모두 삭발을 한 채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는데, 그런 수자들에게 머리를 기른 내 모습이 자칫 사회 냄새나 풍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나 또한 삭발을 했다. 그렇게 삭발을 했다고는 하지만, 새벽 두시부터 일어나 계곡의 얼음물에 목욕을 하고 통나무를 맨 채 캄캄한 어둠을 더듬어 산을 오르는 수자들의 고행을 흉내내지는 못할망정 일종의 마귀로까지 여겨지는 죄스러운 마음은 여전하였다.
봄이 되어 나는 마침내 이 곳 계룡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갑사 부근의 대성암이라는 조그만 암자에 방 한 칸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렇게 계룡산에서 봄과 여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마침내 올해가 가기 전에 자신이 어쩌면 인도나 티베트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로서는 자신이 인도나 티베트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바로 혼자가 될 수 있음에 다름 아니었다. 나에게 그런 믿음을 준 것은 바로 계룡산과 그 산에 깃들어 사는 산사람들이었다.
매일 아침이면 나는 암자를 떠나 금잔디고개를 넘어 삼불봉과 문필봉, 연천봉으로 해서 다시 암자로 내려오는 산행을 했다. 그렇게 산행을 하는 동안 나는 산에서 사는 이들을 만난 것이었다. 날마다 산행을 하다보니 등산하는 이들이 흔히 이용하는 등산로와는 달리 숨어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자칫 상춘객들의 호기가 번거로워 그렇듯 숨어 있는 길을 다니다가 거기서 산사람들을 만났다. 산사람들은 먼저 첫눈에도 여느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들을 보는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흠칫 몸을 떨곤 하였다. 무언가 나의 내부까지 뚫고 들어오는 듯한 강렬한 눈빛이 그렇듯 나를 떨게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눈빛이 매섭거나 사답게 여겨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웅덩이처럼 깊고 해맑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그 눈빛에서 쏟아지는 어떤 강렬한 힘이 나를 떨게 한 것인지도 몰랐다. 또한 그런 눈빛을 지닌 그들에게서는 기이하게도 전혀 사람 냄새가나지 않았다. 그들의 냄새는 산에 흔한 참나무나 물푸레나무 또는 오리나무며 산중이나 풀잎들 같은 냄새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산사람을 만날 때마다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저들이 혼자가 된 이들이구나. 바로 저들이 모든 고삐며 끈에서 벗어나 마침내 편자가 된 이들이구나. 그랬다. 뒷날 어쩌다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자, 나는 그들이 작게는 삼사 년에서부터 많게는 십 년도 넘는 세월을 혼자서 산 속의 바위틈이나 굴 속에서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혼자가 될 수 있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 것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그런 산사람들에게, 감히 물을 수는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그렇듯 오랜 세월을 바위틈이나 굴 속에서 혼자가 되어 살아왔느냐고. 그것은 내 자신이 혼자가 된 다음에 비로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었다. 도대체 너는 무엇을 찾으려고 혼자가 되었느냐고.
아직 화장하는 풍습이 없던 고대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 산이며 들판에 방치를 했다고 한다. 바로 그렇게 한 시체가 버려지는 그 순간부터 삼년이 넘는 세월을 그 시체를 떠나지 않고 지켜보는 수행법이 있었다. 한 인들이 대신 깃들고, 그렇게 살과 살갗이 없어지고, 그리하여 햇빛과 비와 바람 속에서 하얗게 뼈만 남았다가 마침내 그 뼈마저도 한줌 바람 속으로 사라져 버릴 때까지 지켜보는 수행법이 있었다.
백골관白骨觀. 만일 인도에 가서 내가 그렇게 혼자만 될 수 있다면, 나는 자신의 시체를 그렇듯 삼년 동안 바라 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는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을터이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찾으려고 혼자가 되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