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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에서 부처를 줍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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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황청원 1999년 05월 207호
무무스님.
새잎 돋는 소리가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토방 앞에 봄비 소리와 함께 고이고 있습니다. 나무의 이름들도 여렷이듯 새잎 돋는 소리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스스로의 이름들 다 버리고 아무런 걸림도 없이 봄비 소리에 섞여 하나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나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겨울 내내 소근댔을 겁니다. 꿈틀거리는 꿈들을 되새김질하며 봄비 오는 날 산 아래로 내려가 아직 잠 깨지 않은 사람들의 꿈속으로 스며 보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티끌로 채워진 마음 그릇들 비워 내고 길 떠나게 하자는 약속을 나눴을 것이 분명합니다.
모두 비워지기를 일상의 전부로 하는 스님의 마음 그글시야 티끌도 진즉 떠나 버려 어디에 머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산 아래 세상살이에 묻혀 사는 내게는 그 깨끗한 순수의 새잎 돋는 소리로라도 마음 비워 낼 수 있어야 할 텐데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합니다.
이랄 때마다 길 떠나는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새잎 돋는 소리가 봄비 소리에 묻히고 또 그것들이 가는 실줄 같은 물길을 이뤄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그 뒤를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집니다. 진정한 나그네가 되어 보고 싶다는 그런 뜻입니다. 스님과 함께 수행자로 살던 무렵이 떠오릅니다. 혹시 퇴색해 버린 시간들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참 괜찮은 나그네였습니다. 그저 특별한 것 지니지 않고 이곳 저곳에 잠시 머물며 마음 공부하는 일이 전부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한철 지나면 마음에 아무런 머무름 없이 가벼운 나그네로 길 위에 서곤 했습니다.
어느 봄날의 기억 아스라이 살아납니다. 남해 근처를 지나고 있었을 겁니다. 부채살처럼 봄비가 무리 지어 몰려왔습니다. 멀리 섬에서 생겨난 봄
비들이 바다를 건너 뭍으로 오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비에 젖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얼마나 소리 없이 웃었습니까. 이제 마악 삭발한 머리에 빗방울 돋았다가 데구르르 굴러 내리는 모습이 재있었습니다.
한참을 마을회관 처마 밑에 서 있었습니다. 끊일 듯 이어지는 봄비는 한나절이나 발을 묶어 놓았습니다. 빗소리 조금 흐려졌다 싶었을 때 진한 꽃향기에 포박되고 말았습니다. 비에 젖은 탓인지 그 꽃 향기는 혼미함에 빠지게 할 정도였습니다. 꽃 향기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얼키설키 쌓아 놓은 돌담 너머로 희디흰 라일락꽃이 비에 젖은 채 향기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꽃향기에 취해 돌담 곁에 서 있는 발 아래로 냉엄한 말 한마디 스러졌습니다.
“향기는 향기일 뿐 사라짐이 그 근본입니다. 비도 그쳤으니 길 떠납시다. 우리의 근본은 길 떠나는 것이니까요.”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스님을 따라 갔습니다. 실은 내내 아쉬워 스님 눈치 못 채게 꽃 있는 쪽을 몇 번이나 뒤돌아봤습니다. 마을을 다 빠져 나올 때까지 라일락꽃 향기는 발길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남해를 버리고 섬진강 따라 걸었습니다. 봄비 그친 뒤로 강의 수면에 짧은 물 안개가 흩이불처럼 깔린 것을 보았을 때 그냥 뚜벅뚜벅 그물안개 위를 걷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습니다. 나의 충동을 깨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어깨를 툭툭치는 스님의 손길 때문에 등을 돌려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눈 안으로 들어온 아름다움은 눈을 지그시 감게 하고 말았습니다.
산양 젖빛 같은 안개가 띠를 두르고 멀리도 아니고 가까이도 아닌 바로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 지리산, 참 그윽한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 꾸밈도 없이 세상속에서도 혹은 세상 밖에서도 잘 어울릴 것 같은 그 자태는 약속 하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언젠가 길 위에 서 있다가 휴식이 필요하면 한때라도 저 품안에 안겨 살아보자는 그런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스님은 약속 지켜 그 품안에 토굴 짓고 묵언으로 살고 나는 바닷가 마을의 라일락꽃 향기 같은 또 다른 향기에 취해 산 아래 살며 이렇게 글 몇 줄 쓰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지금도 그 때의 길 위에 있음을 한없이 그리워합니다. 쉽게 지워지지 않을 그리움일 겁니다. 아마 내가 건냈던 말들 가운데에 하나의 울림이 메아리로 남아 나를 늘 길 위에 서 있는 그리움 털어 내지 못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처는 길 위에 있고 우리는 그의 뒤를 따르는 또 다른 부처입니다.”
왜 그리 자신감 넘치는 말들을 길 위에 던질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길을 가며 얻은 자유로움이 그렇게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기점으로 이리저리 열리고 닫혀 있는 길들, 그것은 나를 향해 다가오고 떠나가는 삶의 길들입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기도 하고, 내가 꾸려 가는 삶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삶의 길들은 세상 모든 이의 것이며 곧 그들을 눈뜨게 하는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라는 엄청난 어휘를 순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 삶의 길이 아니더라도 이 지상에 놓여 있는 길들 역시 깨달음을 보여줍니다. 나 스스로 얻어 내는 정진의 시간들에 게으른 탓인지 그 길들 위에 서서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고 싶어 마음이 자꾸 길 나서려 하는가 봅니다.
문득 스님 토굴 마당 귀에서 시작되는 좁은 산길이 생각납니다. 산 아래 마을지나 섬진강에 이르는 풍경 속 길은 그림 같기도 하지만 오묘함이 넘칩니다. 가파른 산길이다가, 구부러진 돌길이다가 냇물 위에선 다리 만들어 지나는 길이다가, 마을 앞에 이르러서 이집저집 들러 나오는 길이다가, 섬진강 닿아선 넓게 포장된 반듯한 길의 모습은 사는 일에 대한 생각을 몇 번이고 하게 만들었습니다.
먼 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스님 토굴로 난 그길 위에서라도 나를 바라보고 싶습니다. 길 위에 서서 부처를 찾지 못할지언정 나의 그림자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자기의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생의 끝에 점 하나 찍고 세상과 작별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봄비 그치고 새잎 돋는 소리 더 무성하게 산을 내려오면 그 곳에도 봄이 완연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오고 감이 모두 마음 밖의 것이지만 그래도 그것들의 오고 감을 눈에 두고 산다는 스님의 마음에 훨씬 따뜻하게 느껴짐은 무엇 때문입니까. 세상 모든 것에 부처가 숨어 있으니 그 세상 깨부수지 못하면 부처를 보지 못할 거라는 선사의 말씀 성성할지라도 지금 봄이니까 봄 속에서 봄을 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님.
토굴 아랫마을 외딴집에 라일락꽃 필 것이라 했는데 그 꽃 향기 가슴 열면 짧은 글이라도 한장 부쳐 주리라 믿습니다. 아무리 사라지는 것이 꽃향기라 할지라도 잠시 그 꽃향기 따라 길 떠나겠습니다. 혹시 라일락꽃 향키 끊어진 토굴 뜨락에서 부처의 항기 주울지 누가 압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