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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부처님들께 보내는 미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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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해인사 법사단 1996년 08월 174호
수행에 일념인 스님들도 가끔씩 삶이 힘들 때면 솔숲 그늘에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설령 그때라 해서 별반 지금보다 그리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련 시절 천진 난만했던 그 광경을 떠올리면 조그마하나 위안을 받게 된다. 어릴 적의 추억은 그래서 두고두고 작은 힘이 되어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하기 쉬운 말로 어린이는 미래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들의 앞날에는 무궁한도전의 장이 열려 있고 그 아이들이 차츰 자라면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아무도 속단 할수 없기 때문이다. 더러 어른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그릇된 길로 빠진 사람들에게 경책을 주기도하고 반대로 어른들의 잘못을 빼어닮아 삿된 길로 드는 아이들도있다. 그러나 저러나 그런 것은 죄 어른들의 책임이지 자라나는 아이들의 책임은 아니다. 천진하다는 것은 곧 흰 천과 같음을 뜻한다. 그 어느것에도 물들지 않은, 그래서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 하면 쉽게 물들 수 있다. 어린이들을 새싹에 비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초봄에 죽은 듯했던 나무에서 움트는 연두색의 그 여린 싹에 겨우 내 나무가 자신의 등걸 안에 간직했던 순결이 있다. 그 순결이 봄 기운을 받아 세상에 새싹을 피우는 과정이나 사람의 몸을 받아 풍진 세상에 나오는 어린이나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새싹이 세상에 나와 아무런 탈이 없다면 가을 찬 서리가 내리기까지 자연의 과정을 고스란히 밟아 다시 자신의 나무를 튼실하게 하기 위해 낙엽이 되어 뿌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요즘처럼 공해가 심하고 무슨 개발이다 하여 탈이 생기면 더러는 자리다말고 고사하든가 또는 뿌리 채 뽑혀 못 쓰게 핀다. 어린이 역시 그러하다. 워낙 혼탁한 세상살이에 아이들의 순진, 순결은 차츰 더립혀지게 된다.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미처 인생의 가치관을 얼추 갖추기도 전에 세상의 못된 바람이 아이들의 심성에 얼룩을 들인다
그래서 어린이에 대한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요즘에는 그 가르치고자하는 욕망이 정도를 넘어 이제 막 발 걸음을 떼기 시작한 영아들에게까지 영재교육 열풍이 불고 있는 실정이다. 한시라도 더 빨리 아동 교육을 시작해야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종교 단체 역시 아동들에 대한투자라 할까 아니면 막말로
‘제편 만들기’ 랄까 아뭏튼 과열이다 싶을 만큼 아동 교육을 펼치고 있다. 아무래도 그 선두는 기독교 계열이다. 조선조 말기부터 서양의 선교사가 이 땅에서 펼친 교육사업의 주대상은 어린이였다. 물론 폭 넓게는‘낫놓고 기억자도 모르는’그 시절의 다수문맹자에게 문자를 가르치고 새로운 사회의식을 넣어 주고자 하는 계몽운동 이었으나 아무래도 어린이에게 기울이는 노력이 더 컸다. 어린이를 잘 가르쳐 장차 그들이 서양의 사상을 이식하는 주도자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식민지 해방과 분단 체제에 이르러 과연 .계몽운동. 의 수혜자였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 한국의 주요한 세력이 되면서 그 효과가 나타났다. 미군정의 통치, 북에서 남하한 기독교 인사들, 미국등 해외에서 귀국한 정치인들 그리고 교회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들이 서로 조용하여 백년대계를 좌우하였다. 정부의 교육 정책과 선교사업은 한참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의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뜻도 모른 채 ‘우상숭배 를 되뇌이고 교회에서 가르치는대로 미신이니 마귀 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게 되었다. 여기다가 일찍부터
새벗이나 「소년 둥의 어린이 잡지를 발간하는가 하면 방학철이 되면 어김없이 여름 성경학교다 무슨 캠프다하여 어린이들을 교회에 머물게 했고 교회마다 유치원 세우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자리는 어린이들 이 사회에 나가서 어떤 가치관으로 어디에 봉사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불교의 위세가 약화된 이면에는 여러 사회적인 요인도 있으나그 가운데 교회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펼친 원인도 있다.
한국 불교가 내외적인 홍역을 겪는 동안 기독교는 상대적으로 순탄하게 여러 연령층과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사업을 할수 있었던 것이다. 늦기는 했으나 지난80년 때부터 도시 포교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차츰 높아지면서 어린이 포교의 중요성도 크게 부각되었다.
도시의 포교당에는 어린이부가 빠짐없이 마련되어 불자들의 어린 아들 딸을 교회로 보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각 사찰이나 포교당에서 얻은 개별적인 경험과 사례를 종합 분석하여 좀더 나은 어린이 법회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한 걸음 나아가
어린이 법회 지도자 교육을 하는 단체까지 생겼다.
그리고 불교방송 설립에 큰 역할을 했던 장경호 거사가 천육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 불교에 더 이상 어린이를 구독자로 하는 월간지가 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만든 것이 90년 「굴렁쇠어린이」가 전신인 「동쪽나라」이다.
장경호 거사가92년 작고하고 난 뒤 「굴렁쇠어린이」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현 발행인인 김형균 씨가 인수해서 지속적인 투지를 했다. 출판기획사연 불지사를 운영 하기도 하는 김형균 씨는 「굴렁쇠어린이」를 발행하는 한편 교계에서는 최초로 어린이 극단도 창립하여 해마다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아울러‘동쪽나라 아동문학상 도 제정하여 해마다 새로운 아동문학작가들의 등용문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렇게 적지 않은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쪽나라」의 정기 독자가 한때 좀 늘었으나 95년 여름을 고비로 줄기 시작했다. 불지사의 적 자도 그만큼 누적되었고 마침내 아직도 적지 않은 정기 구독자에게 큰 책임감을 느끼면서 지난 5월호를 기점으로 어쩔 수 없이 무한정한 휴간을 결정하게 되었다.
명색이 민족종교라고 하며 l천만 불자라고 하는 한국 불교가 어린이 잡지 하나 제대로 발간하지 못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속으로 삭혀야 했다. 흔히 전국에 사찰이 몇 개이고 도시의 포교당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얼마에 이르는데 이 사찰의 주지 또는 신도들이 조금만 보시해도 한국 불교는 못할 것이 없는 양 착각하게 된다. 사실 이런 주먹구구식의 추신을 갖고 불교와 관련한 사업을 해보려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우리의 숫자는 거품에 불과하다. 어쩌면 허풍일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변함없이 발간되고 있는 다른 종교의 어린이 잡지를 보면 이 거품과 허풍의 실체를 여실하게 볼 수 있다. 그 잡지의 발행 부수가 육만부 인데 고작 이천 부도 안 되는 교계 유일의 어린이 잡지를 문 닫는다하니 할 말이 없고 어린 부처님들에게 고개를 들 면목이 없다. 한국 불교라는 거목에 싹틀 새싹을 위해 이제 스님들은 철저히 반성하고 있다.
우리들 포교의 시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번 「동쪽나라」의 휴간을 계기로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미안하구나. 어린이 부처님들아. 너희들의 시선이 즐겁게 머물 「동쪽나라」의 복간을 위해 기도하마 그리고 너희들의 웃음아 이 땅에 당당하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부처님 음정 가득한 사회를 만f들도록 노력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