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수기스님 1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다시쓰는 고려대장경 - 최세영 1996년 08월 174호
수기스님과 대화하기-제 1신
먼저 팩시밀리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수선자/고려국 고려 대장도감 봉칙교감 총책임자 수기스님
발신자/대한민국 서울 특별시 마포구 마포동 1 23 번지
불교텔리비전 제작국 최세영
고려대장경 교감의 총 책임을 맡았던 수기스님, 당신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당신에 관한 자료는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의 생몰연대를 알고싶습니다.
답신은 오지 않았다. 또는 나의 생몰연대는모름’
수기스님의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나는 취재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고려대장경 조성 역사 전체가 의문부호다! 고려대장경 조성 역사의 새로운 진실 찾기는 포기하자. 그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생각은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지극히 짧다. 그러나, 칠백 년 전으로 돌아가 생각하자. 나는 고려대장경을 제작하면서 열리지 않는 저 칠백 년 전 역사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열려라 문!을 수백 번도 더 되 뇌이곤 했다.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1996년 5월 24일, 부처님 오신 날 특집 다큐멘터리 \"고려대장경\"은 미완의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다. 역사를 바르게 정리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자했던 나의 맨 처음 의도는 빗나간 셈이 되었다. 이 글은 내가 그렇게 잃어버린 칠백 년 전 고려인과 고려대장경에 대한절망과, 아직 미완으로 남은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미련으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기록하고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절망 한지는 대담해지기 때문이다.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힌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인식의 힘. 최승호
겨자와 고려국 신조대장 교정별록의 제1별록
고려대장경은 1496종 6568권 81258여 자로 이루어진 경판이다. 이러한 방대한 양으로 이루어진 고려대장경판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고려대장경은 왜 세계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까? 다른 세계 여러나라의 문화유산과 견주어 인정받을 만한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이것이 고려대장경에 대한 왜? 라는 나의 첫번째 의문이었다. 지난해 신문과 방송은 앞을 다투어 고려대장경이 세계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실과 경축 행사만을 기사로 다루었다. 그러나 사실, \"고려대장경판\" 이 세계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것은 아니다. 세계인류 문화유산은 동산이 아닌 부동산에만 해당된다. 고려대장경판이 모셔져 있는 장경각이 세계 문화유산목록에 오른 것이다.
이러한 세계인류 문화유산에 목록선정에 대한타당성 검증. 그 기준은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가운데 고려대장경판과 이 고려대장경판이 모셔져 있는 해인사 장경각은 두 가지 항목에 해당되어 세계 인류문화유산에 지정된 것이다. 그 두가지 항목은 다음과 같다. 5번째 항목 중요한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또는 공업적 발달을 대표하는 구조의 가장 특정 적인 유형의 예에 해당하는 유산.
이 말을 풀면 다음과 같다.
해인사 장경각은 15세기 건물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목조건물로는 가장 큰 건물의 하나다. 대장경판 보존 기능에 충실하게 설계된 점이 세계의 다른 문화유산 에는 그 유래가 없다. 건물 내의 환기와 온습도조절을 가장 자연스럽게 해결할수 있도록 설계, 계
획됐다는 말이다.
6번째 항목 뛰어난 역사적 중요성과 의의를 지닌 이념 신앙사건 또는 개인과 관련된 유산.
이 말을 풀면 다음과같다 .법보사찰 해인사는 부처님 가르침이 담긴 대장경판을 장경각에 봉안하고 있다. 이는 세계 여타 국가와 비견할수 없는 현존 최고의 역사성, 칠백 년 이상의 보존을 위한 노력, 불경봉안을 호국의 지침으로 삼은 불침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인정할 만한가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럼 세계 인류문화유산의 진정한 가치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사대적이며 절대적인 가치이다. 세계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이며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세계 인류문화의 진정하고도 절대적인 가치는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문화유산을 소중히 보존할려는 상대적인 가치이기도하다.
왜? 무엇때문에? 고려대장경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는것일까에 대한 궁금중을 좀더 간략하게 수록해 보자. 고려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가운데 세계 최고의 것이다. 고려대장경 이전에 북송관판 대장경, 거란 대장경, 고려 초조대장경 둥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전하지 않고 있다. 13세기 이전의 불교사상은 오직 고려대장경에 의해서 만 파악 할수 있다. 또한 고려대장경은 가장 보편적이고 역대 장경 중에 그 내용이 가장 정확하다는 점이다. 최초의 대장경인 북송관판 대장경과 거란 대장경, 초조 대장경을 모두 대조 하였으며 엄밀한 교정작업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완벽한 고려대장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리고 고려대장경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교감한 기록을 담은 것이「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이다. 이 교정별록은 전체 30권 19만 자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속에서 수기스님을 만났다. 소름이 돋았다. 무서웠다. 완벽을 위한 무서운 집착이 없이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불사였다. 수기스님 이야기로 고려대장경 프로그램을 조성하는 기획, 제작, 연출자였다. 그렇다면 과연 수기스님온 어떤 인물이었을까? 어떻게 생긴 분이었을까? 수기스님에 대한 궁금중과 의문은끝이 없었다.
그러나 전하는 자료는 「보한집」뿐이었다. 개태사의 승통 수진-수진은 수기스님의 다른법명이다」널리 배워 식견이 정밀했으며 고려대장경의 바르고 잘못됨을 교감하였고, 지금은 5교 도승통이 되었다j 수기스님. 「보한집」에서 인용한 바로 그 뒷줄에 수기스님의 인품을 말해주는 또 한구절의 기록. 고려시대 대시인이자문장가인 하천단 (아무 말없이 다
가와) : 불쑥 수기스님에게 겨자를 들어 밀었다. 바로 겨자를 보고 시를 지으라는 뜻이었다.
수기스님(그 자리에서 붓을 들어):논리를 세움에 있어서는 겨자맛처럼 극명해야한다...(吾宗0題0) 그날 두사람의 담론은 밤새워 이어졌다고 한다. 수기스님은 바로 겨자맛처럼 극명한 논리를 세워가며 고려대장경의 바르고 잘못됨을 교정했던 것이 아닐까.
수기스님과 대화하기 제2신
팩시밀리를 띄웠다. 답장이 왔다.
사자가 한번 부르짖으니 여우의 머리골이 찢어지도다.
나는「대장목록」 경판에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 해동새문 수기 편’ 이라는 글자를 보았다. 여기서 나는 편編이라는 글자를 주목하고 눈길을 뗄수 없었다. 대장목록에는 거의 전부가 당, 송, 한나라스님들의 ‘역譯으로 기록돼 있었고, 그때처럼 편編자가눈푸신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