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봉황산 부석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가람의 풍광과 진경 - 이호신
1996년 08월 174호
태백산에서 뜬해가 소백산 기슭으로 지는데 그 곳이 영주 봉황산 이다.
그 기슭에 자리한 부석사의 전경은 인공과 자연의 질서가 조화된 최상의 터로서 배달겨례의 슬기와 지혜, 그리고 종교관과 우주관이 숨쉬고 있다. 몇 해를 두고 부석사를 찾아 구품 만다리의 세계를 향유하며 석축의 뛰어난 조화와 돌계단을 오르고 안양문을 거쳐 무량수전 뜨락 석둥 앞에 이르면 늘 떠오르는 글귀가 있었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가을 안개비에 촉촉히 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초사당, 용향각 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회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 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 으로이 이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부석사에 관한 한 이미 너무도 많이 인구에 회자된 고 최순우님의 글이 건만 님의 길눈은 언제나 우리에게 자긍과 축복의 겨레임을 살펴주는 고전이 되고 있다. 띠라서 그분의 안목과 가열찬 사랑의 헌사에 비길 수는 없어도 나의 의지로서 가능한 ‘부석사의 풍경과 진경’ 올 그려 보려 애를쓰고 있다. 최순우 선생 이후로 시인 고은 선생은 부석사에 여자가 되어 왔다고 했다. 태백산맥, 소백산맥의 오지. 눈이 내리는 부석사에 하얀 옷을 입고 하얀 치마 속에 꽃 주머니를 하나 매달고 청송靑松 밑으로 절을 찾아가는 이 땅 전래의 풍경 은
얼마나 고혹적인가\"를 뇌까리며 자신은 여자가 되어 부석사에 왔노라고 했다.
천혜의 경관, 부석사는 남자 중에서도 호방한 사내 일테니 그품에 안기고 싶은 심정의 그리움이야 말로 가히 절창이다. 또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선생은 남한 땅의 오대 명찰 가운데 부석사는 “몇 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주 부석사이다’라고 하고 덧불이기를 “아름답다는 형용사로는 부석사의 장쾌함을 담아내지 못하며, 장쾌하다는 표현으로는 정연한 자태를 나타내지 못한다. 빈틈없는 질서의 미덕과 함께 세속의 번뇌를 훑어 내는 정신적 해방의 기쁨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부석사일지니 나에게 있어 부석사는 정녕 지루한 장마 끝에 활짝 캔 맑은 햇살 같을 뿐이다. 하고 부석사를 찬란하고 있다.
나 또한 이와 같은 부석사를 사모해 오던 중 몇 해 동안의 답사를 통해 화폭에 담기에 이르렀다. 화첩을 들고 부석사에서 묵던 날 밤 귀에 쟁쟁한 범종의 여운에 겨워하며 일주문을 향해 어둠 속의 계단을 내려서자 밤하늘의 은하는 찬연한 섬광이 되고 태초의 우주가 되어 성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 날의 방광은 마침내 대 우주를 깨닫고 선풍을 날리며 선종사찰의 대 역사를 꿈꾼 이 곳의 선현들 역사 속으로 한 정 별로 돌아간 그들의 고난과 의지, 그리고 천년 사찰의 내력을 혜아려 보느라 내내 밤 하늘을 우러러 보아야만 했다. 부석사는 무엇보다 자연과 인공이 최상의 조화를 이룬 곳으로 봉형산에 의지한 가람 배치와 소백산자락의 자연 경관이 원융의
정점에 닿아 있는 곳이다.
따라서 화폭을 펼쳐서는 이것에 중점을 두느라 사뭇 꿈자리가 깊어야만 했다. 마침내 육필을 들고서 느껴본 정회가 하나 둘이 아니되, 부석사를 통해 우리 시대가 배워야 할 선인들의 지혜와 자연관에 새삼 감복하지 않을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