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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시간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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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주경 1996년 08월 174호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안개비가 내리는 것을 느낀다. 처마에는 방울물이 뚝뚝 떨어지고
솔가지를 흔드는 바람비는 한 무더기 무리지어 방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젖은 솔내음은 마음속까지 흠뻑 적셔오며 깊은 호흡으로 아랫배까지 내려온다. 이 년에 가까운 시간 고국을 떠나 떠돌았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굳어져 떠나야 하는 마음이 되었을 때 떠난 걸음은 최초의 행선지인 태국을 거쳐 스리랑카로 인도로 네팔로 돌아 동남아시아 불교국 에로의 여행이 열 개의 나라를 지났고, 일 년을 기약하고 떠났던 여로는 석 달을 더한 열다섯 달을 채웠지만 그래도 더 다니고 싶은 마음은 영원히 라고 해도 족함이 없을 그런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무치도록 사랑하는 벗들이 있었고 그 벗들과 어우러지던 내 강산을 아프도록 좋아했지만 젊어진 배낭 하나에 모든 것이 족한 시간들 속에서는 반려 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잊고 지냈다. 때로 외로움이 물처럼 밀려올 때,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과 흐르는 달을 바라보며 해인사에서 더 불어 살던 도반들과 내 산하에서 떠오르던 달과 솔가지를 스치던 서늘한 바람을 그리워했을 뿐이었다.
어느 곳에다가 뼈를 묻어도 아무 여한이 없는 그런 마음으로 배낭 하나에 모든 소유물을 지고 다녔다. 단지 돌아와야 할 작은 이유로 가슴에 남아있던 화두 같은 바람이 있었다면 도반스님의 절에 맡겨 놓은 몇 박스의 옷가지와 몇 권의 책을 비롯한 잡동사니 들이 곱지 않은 흔적으로 남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 었다. 변변히 아는 사람도 하나 없이 입도 제대로 떼지 못하는 처지로 겁 없이 나선 이국에로의 첫 걸음은 무언가 의지처가 필요했고, 그래서 되는대로 모으기 시작한 지도와 소개서 , 어학 및 현지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며 책들이 점점 많아져 갔다. 처음 길을 나설때 채 받도차지 않았던 배낭이 날로 무거워질수록 무언가 버려야 한다는 마음 역시 그 무게를 같이 하였고, 종이 한 장의 무게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은 수첩의 껍질까지 벗겨버리게 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모이고 모이는 짐들이 어깨를 눌러대는 업으로 쌓여갈수록 버리고 버리려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고, 오랜 시간을 누리던 편리의 도구들 없이 사는 궁색함과 불편함이 어느 순간 소유로부터의 자유로움과 해방감으로 느껴졌을 때 도반에게 맡겨 놓았던 짐들은 바삐 치워야 할 가장 무거운 업으로 자리하였다. 여행 중 열 달에 가까운 시간을 수저 없이 화장지 없이 , 오른손은 식당에서 왼손은 화장실에서 사용하며 그 곳 사람들처럼 지내면서 비로소 나는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소유물들과 굳어버린 관념의 틀어에 붙잡혀서 사는지를 알게 되었다. 출가인의 살림이 걸망 하나면 족하다는 옛 스님들의 말씀은 업을 많이 지지 말라는 따끔한 경책의 말씀에 다름 아님을 그리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지고 다닌
살림의 무게가 깨우치게 해준 것이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흔히들 쉽게 말하기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한다. 하지만 진실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윤회로 휘도는 삶은 지은 바 업에 끌려 몸을 받고 주어진 인연의 틀에 엮여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업의 사슬에 얽혀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빈손의 무소유를 즐길 수 있다 하겠는가? 다만 세간의 물질에 끄달린 눈으로 본다면 빈손으로 오간다 할 수 있을지라도 스스로의 지은 바 업의 실체를 바라본다면 걱정으로 입맛이 떨어지고 두려움에 오싹 소름이 돋도록 져야 할 짐이 많은 것이 중생사인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는 모르고 왔어도 참으로 빈손으로 갈수만 있다면 하는 것은 여행중에 가진 가장 간절한 소망이었다. 출가의 삶이 좋아 산에 들어와 머리를 깎고 살게 되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처음 산에서 살 때의 참신한 두려움이 깃든 맘은 생활이 점점 그리워지는 것은 일상에 젖어가면 갈수록 말해져 가는 듯한 무딘 생활에의 싫어하는 마음이 커져감이 아니었던가 싶다. 내 강산을 떠나 말도 잘 통하지 않고 풍습도 실어서 아무 할일이 없는
곳에서 이리저리 떠돌다가 그저 때 되면 밥먹고, 때때로 책장을 뒤적이다 실증 나면 혼자 조용히 앉아보던 시간이 값진 정진의 시간이 되어 주었고, 뭇대로 머물다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날수 있는 날들은 진정 출가의 맛을 알게 해 주었다.
온전한 집 떠남이란 진실로 할 일이 없는 상태인 그래서 정말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밖에 없는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나는 지금 그러한 맛을 보고 있지 않은가 할 때의 기쁨은 맛보지 못한 사람이 알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승려의 틀조차 한계로 지워짐을 느낄 때 출가마져도 떠나고 싶은 바람이 가슴을 채우기도 하였지만 차마 이러지 못한 것은 산에의 삶을 버려지 못했기 때문에라기 보다는 그마음 조차도 출가의 마음인 것을 알았던 까닭이다.
그렇게 새로움의 날들이 계속되어 신선한 기쁨 가득해졌을 때 참을수 없는 마음은 펜을 접어 벗들과 도반들에게 편지을 쓰게 하였고, 곳곳의 성지 률 다니며 감사와 감동에 마음이
온통 젖어들 때는 부처님 전에 엎드려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됨을 눈물겹도록 기도하였다.
가족과 벗들과 도반들과 아는 이들의 이름을 낱낱이 떠올리며 이 아름다운 인연이 그들에게도 반드시 이어지기를 그토록 간절하게 기원한 적이 없었다 .맨발에 발우를 들고 방콕의 거리를 탁발다니며 신자들의 공양을 받을 때의 시간들과 부다가야에서의 밤을 새우던 정진의 시간은 성지순례의 진실한 의미를 알게 하였고 사무침으로 가슴에 남았다. 또 누구 못지 않게 내 강산에의 사랑과 자부심이 강했던 나의 국가관과 민족관은 이미 희석 되어져 국가의 개념이 약해졌고 피부색과 생김이 다르고 말과 풍습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다른 지역 정도의 의미로 변해버렸다. 눈썹마저 삭발해 버리던 태국 스님들과 머리빗이 필요할 만큼 머리를 기르던 스리링카 스님들, 한 절에서 대승불교의 스님과는 근본불교의 스님들이 어울어져 살던 베트남 절, 인도와 네팔의 어디를 가도 자주빛 승복을 입고 등산용 배낭을 무겁게 지고 다니던 지금은 세계불교의 상징이 되어버린 달라이라마로 대표되는 티벗 스님들은 이제는 멀리 있는 다른 세계의 신기하고 이상한 불교인이 아닌 정스럽고 반가운 부처님의 제자들이자 도반이 되었다. 실로 대숭심을 갖지 못한 이들어 대숭의 분별심을 내어 소승이라
가벼이 보는 남방의 근본불교를 순례하며 얻은 경험은 언제라도 다시 그곳으로 가고픈 마음의 원을 심어놓은 따뜻함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