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알 길게 두 줄 남겨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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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염화미소 - 성전
1996년 08월 174호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해질 때 나는 산길을 걸으며 노래를 불러 본다. 그냥 떠오르는대로 불러 보는 노랫가락들이 풀잎에 앉기도 하고 계곡올 따라 흐르기도 하고 또는 햇살과 손잡고 하늘 나들이를 떠나는 것을 볼 때면 나는 어느새 우울의 정체를 잊고 명랑한 기분으로 되돌아 오곤 한다. 확실히 노래에는 어떤 마력이 있는 것만 같다. 노래를 부를 때면 슬픔은 더욱 작아지고 기쁨은 배가 되어 살아있음의 기쁨을 일깨워주니 말이다.
가난해 세상살이가 힘든 사람들 그리고 외로워 세상이 한껏 춥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은 노래를 부를 일이다. 노래를 부르면 힘든 세상의 턱이 한 햄쯤은 낮아 보이고 추운 세상에 감춰진 따뜻한 온기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어제는 강원도에 다녀온 도반이 옥수수를 사 가지고 왔다. 도반스님과 함께 옥수수 껍질을 까고 수염을 까며 말갛게 드러난 옥수수 알을 한참이나 만져 보았다. 속살이 탱탱하게 꼬른 옥수수알을 만지는 기분이 참 좋았다.
괜시리 어릴 적 생각이나 옥수수 수염에 침을 묻혀 턱에 달고 거울을 바라보니 거울에는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라 어릴 적 옥수수 밭에서 동네 친구들과 장난치던 그 맘 때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괜한 장난에 문득 만나는 유년의 모습. 언제나 그 시절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 때는 아마도 아버지 어머니라는 커다란 세계 속에 내 전부가 깃들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부족함이 무엇인지 가난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그 시절. 옥수수 방올 먹게 되면 그것이 가난 때문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나는 살았다. 다만 옥수수도 밥’ 이라는 생각만 했을 쌀이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옥수수 죽이나 옥수수 범벅을 먹을 때도 배가 부름으로 그냥 족했을 뿐이었다. 가난이 상대적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버지 어머니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그만큼 행복했기 때문에라는 생각이 든다. 옥수수를 두 시간여 삶았나 보다. 도반 스님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쟁반에 담아 왔다.
입김을 호호불며 한알 한알 줄을 따라 먹어나갔다. 옥수수 알이 창연하게 두 줄만 남게 되었을 때 나는 옥수수를 입에 대고 하모니카 부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이 우스운지 도반스님이 넌지시 웃는다.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카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i
옥수수알 길게 두줄 남겨 가지고 우리 아기 하모니카불고 있어요
어련 날의 동요를 부르며 비알밭 가득 심어진 옥수수밭에서 일하던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허리 굽혀 일하다 힘들면 허리 펴 하늘을 바라보던 부모님.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두분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들이 행복해 했듯이 우리들이 당신들 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도 행복했으리라 믿고만 싶다.
다시 노래를 불러 본다. 옥수수알 길게 두줄 남겨가지고.......
노래는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내생에 다시 만나리라는 행복한꿈의 약속을 심으며 그들의 환한웃음을 다시 내게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