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복지 법인인 연꽃마을에서 운영하는 무료 양로원인 용인 연꽃마을에서 내방객을 제일 먼저 맞는 것은 지상 삼 층 건물벽에 큼직하게 적힌, ‘마을마다 연꽃 마을, 마음마다 연꽃 마음” 이라는 글귀이다. 입에 올리기도 좋고 뜻도 살가와 썩 잘 된 이 글귀는 l990년부터 연꽃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각현스님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의 원력과 의욕적인 행장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4,600평의 널찍한 터에다가 연건평 511 평 건물의 , 남향받이로 환하고 깨끗하게 지어져서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말년을 안돈시키기에 좋은곳 이라고 말머리를 열었더니 그 말이 채 아물리지 못하고 중동에서 잘린다.
‘하늘만 빠끔하게 내다보이는 곳이지 뮙니까. 복지 시설이란 이런 외딴곳에 있을 게 아니지요. 일급 생활 보호 대상자를 모시는곳 인만큼, 어떤 의미로든 그들은 소외된 사람들인데, 이란 외딴 데서 하늘만 쳐다보게 해 놓고 어떻게 이곳이 낙원이 될 수 있겠느냔 말이여.
이런 사실은 오가는 발길이 잦을 수 있게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아야해요\"
각현스님의 말은 지난해 지엔피(국민총생산)가 세계 11위이며, 일인당 국민소득은 만 달러에 이른다는 경제수치에 가려진, 우리니라의 열악한 복지 수준에 대한 통탄이다. 우리나라의 지 엔피 대비 사회보장비 부담금은 95년 현재 25퍼센트에 지나지 않아, 프랑스(19.6퍼센트), 이탈리아(17.7), 일본(9.8), 미국(8.7) 등의 선진국과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이 수치는 \"삶의 질”을 결정짓는 좀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요소들, 곧 소득 분배, 공해, 노동, 노사, 장애자, 청소년, 남녀 평둥 따위의 갖가지 문제로 점검해 보면 더욱 낮아진다.
지난해 코펜하겐에서 l50 개국이 참여한 세계 정상 회담에서 밝혀진 우리나라의 사회 복지 수준 순위는115 위로서 아프리카에도 둬지는 것이었다. 정부가 올해를 시회 복지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발표 한 직접적인 배경이 된 것이다. 각현스님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가 연꽃마을을 운영하게 된 뒤로부터 , 서울 광명의원을 비롯해서 , 청주, 군포, 대전, 안양, 마포, 보은 둥 모두 일곱 군데의 노인 병원을 개설, 운영하는 한편으로, 재가 노인을 위한
노인 복지 센터, 무료 급식소, 간병인회, 노인 문제 연구소 운영 둥, 복지 사업 현장의 한복판에 몸담아 왔기 때문이다. 용인 양로원, 그리고 송파와 마포의 재가노인 복지센타에서 24시간 모시고 있는 노인은 현재 320명쯤이고, 최근에 문을 연 동제 의원을 비롯한 일곱 군데의 병원은 예순다섯 살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의술 시술소로서, 하루에 일천삼백 명 , 한 해에 연 45만 명이 이 곳을 찾는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료로 식사를 대접 받고, 물리치료실을 이용하고, 상주 의료 종사자들에게서 의료 시술을 받고, 자원봉사자 들에게서 시중을 받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자원 봉사자들이 거들고 있다고는 하나 이 일은 돈이 많이 든다. 무료 노인 병원을 개설하는데 드는 비용만 해도 일억오천만원쯤 된다.
지난해부터 용인 양로원 운영비의 20퍼센트쯤 되는 정부 보조금이 나오고는 있지만, 종단 지원금은 전혀없이, 모두 삼만천 명에 이르는 후원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놀랍다. 한 구좌 천 원인 후원회에 등록된 삼만 명 가운데 실제로 참여해 오고 있는 사람의
수효가 3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오롯이 후원자들의 보살심 때문이라고 각현스님은 말한다. 삼년 동안 한 달에 삼백만 원씩을 이름 없이 송금해 오던 처사를 어렵사리 찾아가서 만났더니 , 삼백만 원이 아니라 천만 원쯤 보시할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아침마다 드리고 있다고 했고, 각현스님은 할 말을 잊었다. 대전의 어느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는 어떤 처사는 날마다 천 원씩 후원금을 보낸다.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부처님을 가슴에 품기는 해야겠는데, 아침마다 천수경 한번씩 읽는 것으로는 늘 허전했다. 궁리 끝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천 원씩 , 월요일에는 일요일치까지 쳐서 이천원씩을 연꽃마을로 보낸 지 몇 년이 된다.
이런 흐뭇한 가화佳話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불자들의 자비심은 법당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중생 속에서 동사습하려는 스님들의 원력은 태부족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지난해 한불교사회복지협의회 회장으로 뽑힌 그는 열악한 복지 현황 가운데서도 불교계의 낮은 관심과 미미한 활동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고는 마음이 무겁다. 보사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총 653 개의 노인, 장애인, 아동 복지 시설 기운데 83퍼센트쯤이 종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불교 정신을 가지고 운영되는 시설은 전체의 5퍼센트 쯤인 32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가 64퍼센트쯤을, 천주교는 11퍼센트쯤을 차지한다. 불교계가 사회 복지에 눈 돌리기 시작한지 십 년쯤밖에 되지 않는다는 일천한 역사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한정 없이 양해될 사항은 아니다.
속랍으로 올해 52세, 승랍 29세인 각현스님이 복지 사업에 눈뜨게된 것은 1978년에서 1982년까지 홍콩의 홍법원에서 포교 활동을 벌이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백 년이란 서양의 지배 역사를 지닌 그곳은 아직도 불교가 공식으로 허용받는 종교가 아니다. 중국어 공산화 되자몸을 피한 스님들이 풍찬노숙하며 불상을 지킬 궁리를 하게 되냐. 양로원이나 고아원 풍의 사회 사업을 통하여 불심을 일구는 일이었다. 그 결과 홍콩 주민의 80퍼센트를 불교도로만
드는 위업을 이루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미래 불교\"의 모습을 암시 받았다. 중생 교화의 첫 번째는‘교리”로써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것이다.
되짚어 보면, 각현스님의 \"하회중생\"에 대한 원력은 출가 당시의 것이기도 했다. 그는 스물네살 때 인 1968년에 법주사로 출가했다. 그 무렵 법주사에는 다른 대덕 스님도 많았지만 그는 여법하지 않은 일에는 폼을 던져서 라도 자신의 뜻을 굽히는 법이 없었던 서슬 푸른 월탄스님을 은사로 모시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일은 순탄하지 않았다. 월탄스님은 당시 상좌를 두기에는 좀 이른 나이였던 데다가, 제자되기를 청한 떠꺼머리 총각이 초대면한자리에서 밝힌 출가변이 맹량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했다. “성불하려고 중노릇하려는 게 아닙니다? 대번에 쫓겨났지만 인연이 그려 되어 있었던지 월탄스님은 그를 첫 상좌로 삼으면서 깨달아 열심히 중생을 교화하라? 는 뜻으로 각현 이라는 법명을 내려 주었다.
홍콩에서 귀국하자마자 그는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파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함께 사는·길”을 위한 첫 번째 준비 단계로 들어섰다. 함께 살아야 할 대상가운데서 그가 눈 돌란 것은 노인들이다. 한국을 경제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한 주역이었던 그들이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아무런 보상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급속한 산업 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가정의 해체 현상은 \"가정은 있으나 가족은 없는 사회”가 되게 했고, 정부는 노인 정책의 기조를 “선 가정 보호, 후 사회 보장 제도”에 두고 있다. 자살하는 노인의 수효가 해마다 크게 늘어나는 한국은 더 이상 효의 나라도 노인의 천국도 아니다. 그는 요즘 들어 자신이 해야 할 일 가운데서도 “효의 사회화 운동”올 가장 시급하고도 뜻깊은 일로 꼽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해인 95년에 법인의 운영 방침을 수정했다. 연꽃마을을 이 뜻을 펴는 운동 단체로 삼은 것이다. 노인 복지 전문지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연꽃 마을 신문을 통해 효의 사회화 운동 캠페인을 벌인다. 그리고 시설 참관인 유치에 힘쓴다. 짐짓 모르는 체하고 싶은 노인들의 현실을 눈으로 보게 하고,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를 부지런히 만든다. 그리고 각현스님은 좀 번다하다 싶을 만큼 여러 모임에 참여하여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는 한편으로 복지 사업에 대한 여론 환기를 힘쓴다. 종회 의원이기도 한 그는 불교 사회 복지협의회 말고도 공동체 의식 개학 국민 운동 협의회 불교계 대표, 녹색 교통 운동이사, 봉천동 어린이집 이사 일도 맡아서 의욕적인 나날을 보낸다.
“전국에 범종교 노인 복지 유관단체가 600개쯤 되는데, 대표적인 30개쯤의 단체가 모여 노인 복지법 개정 운동을 펴 나가기 위한 공대위를 결성했어요. 20명 이상의 노동 인구를 가진 사업장은 2퍼센트 이상의 노인을 취업시킨다는 것이 현재 임의 규정으로 되어 있지만 강제 규정으로 바꾸자는 내용도 있고, 전국·노인의 73퍼센트쯤 자식들에게 용돈을 의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무갹출 노령 연금법을 제정하자는 내용도 있어요. 청원도 해보았지만 14대 국회때는 해결을 못 보았어요. 생활력이 없는 노인들을 절대 빈곤에서 해방시키지 않는 한 갈등은 중폭 된다는게 우리 주장입니다.” 귀로 듣기만도 어지러운 복지 관련 일들에 대해 그는 낙관적이고 거침이 없다. 그의 말투도 그렇고, 실제로 그가 시작하여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일들을 보아도 그러하다.
그래서 그가 지금 목표로 삼고 있는 일들, 곧 용인 연꽃마을에 내후년쯤 400평 정도의 최신식 무료 요양 시설양로원을 정부 보조를 받아 짓는 일과, 지금 3충 옥상에 짓고 있는 내방객 숙소말고도, 치매 및 중풍 환자를 모시는 곳, 그리고 150평쯤의 연수원을 지으려는 계획도 큰 어려움 없이 성사시킬 듯해 보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시 단위 무료 노인 병원을 주가로 개원하여 15 개쯤으로 수효를 늘린다는 계획도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용인 연꽃 마을에는 그날 도 자원 봉사자들이 뒤곁에 묻힌 김장독을 꺼내 씻고 있었고, 법당에서는 각현스님의 열정적인 강의가 기업체 연수원생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입성이 깨끗하고 표정이 밝은 편인 입주 노인들은 최신식 물리 치료실, 찜질방, 반자동 최선 목욕 시설의
혜택을 따뜻이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설보다 더 반가운 것은 살을 나눈 자식 같은 각현스님의 얼굴이고, 그들을 위문하러 오는 살아있는 인정들이다.
다른 어떤 시설보다 외부의 발길이 잦은 곳인데도 그들은 늘 그곳이 배고프다. 대여섯 대의 헬리콥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강판등성이를 날아 넘어가자, 바깥에 나와 있던 노인들은 손을 흔든다. 헬리콥터에 탄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거나 말거나, 그들은 바깥을 향해, 그들과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바깥 것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