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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북한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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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법타 1996년 08월 174호
94년 7월 8일은 북한사회에 큰 변화를 준 날이다. ‘철의 장막’으로 일관해 온 김일성이 심경근경색증이라는 병명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 뒤 북한은 김정일의 국가 주석과 노동당 총 비서직까지 연기하면서 미국이나 일본과의 수교 관계 개선과 평화협정 체결로 체제를 유지하고, 한국을 배제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해 왔다. 남북한 간에는 94년7월 이후 중국 북경에서 의 쌀회담을 갖고 미국을 매개로 한 경수로 협정을 제외하고는 정상적인 루트를 통한 대화 채널을 갖지 못했다.반면 평화협정에 대한 북한의 요구는 판문점의 무력 소동으로 나타났으며, 종교와 관련한 정책 분야에 있어서도 \"대북종교방송\" 에 초점이 되었다.
이와는 다르게 남북한간 경제 교역은 꾸준히 증가하였고, 특히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경수로 협상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 수교 문제를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외교분야 노력을 집중하고,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 (KEDO)와의 협상에 일정 양보하는 수준의 협상’ 과 같은 북한의 자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인데, 한반도의 문제가 4자 회담을 제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국제화함에 따라 70년대 정부 밀사적 대화방식이니 80년대 북방 외교의 우회채널과 관련한 남북한간 의 직접대화는 94년도의 조문파동 이후 김정일의 입을 열 수 있는 ‘묘약이 없는 한남북한간직접 대화의 빠른성사는 불투명하다.
김일성 사망 이 년이 지난 김정일의 공식 활동은 94년에 9건, 95년에 33건, 96년의 23건 등 총65건에 머물고있다. 이런 활동은 ‘국가문상기간’ 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존재하지만 그의 공식 활동들이 군軍이나 체제 유지를 위한 행사에만 참석하고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한 특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제난이나 통제기구의 이완 등이 김정일 체제의 목을 조이고 있는 듯 하다. 김일성과는 사뭇 다른 김정일 노선의 재정합 ,‘경제난 극복을 위한 체제 구축’ 둥에 관한 실질적인 부담이 김정일의 권력 승계를 늦추고 있는 이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김정일 체제의 등장은 북한 변화의 최대변수로 김부자 세습체제의 완결’ 을 의미하며, 가 변수가 되지 못한점은 북한주민들의 사회적 욕구의 미성숙이나 충성심이 내재한 전통적 사회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북미간의 수교를 전제로 한 내년7월경이나 미국 대선이후 북미간의 정치적 조율이 완성된 시점인 9월~10월경에 김정일은 ‘특정시기’ 에 의한 공식 권력 승계보다는 이완된 주민통제기구의 확립, 경제적 회복기에 해당하는 시점과 내부 여건이 정지곡선’ 이 될 경우물리적 군사적인 개입의 방식이 아니라 자연적 요소를 표방하면서 공식 등장을 꾀할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북한의 페러다임은‘과정상’에만 나타날수 있는 요소이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의 위험 수위를 벗어나기 위한 정책들은 남북대화에서는 95년 6월 이후 3차례 쌀 회담이
후 지금까지 중단되고 있다. 남북교류는 94년에 대북교역에 있어 4위를 95년에는 일본에 이은 3위를 기록 했다. 그러나 정신협정의 일방적 파기에 의한 경색국면ㅇㄴ 지난해와 같은기간에 비해 37.4퍼센트로 감소 했다. 인적왕래는 북한인이 방안하는 경우는 한건도 없으며, 북한방문은 94년도 1건에서 95년 53건(5박36명)으로 크게 늘었다. 경수로 사업은 94년 10월에 북미간의 제네바 핵협상 타결로 95년12월에는 KEDO와 북한간의 경수로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의 이행을 위한 후속 협상도 96년 5월에 특권면제 및 영사보호 의정서를 6월에 통신통행 의정서에 가서명을 했다. 7월말 경에는 부지인주의정서와 북한 제공서비스의정서 협정의 북한에서 열릴 예정이다.
북한 종교의 변화들의 94년도 이후 북한의 종교 활동이 대외적으로는 조선종교인협의회(위원장 장재철)의 공식 종교 활동에 중심을 두고 있다. 조선 불교도 연맹(이하 조불련)등과 같은 개별 종교 단체의 활동을 지양하는 반면 , 조선종교위원회를 전면에 새워 각 단체의 활동을 조정지시, 선별적인 종교활동 하고 있다. 92년에 개정된 조선 민주주의인미공화국사회주의 헌법 제5장과 68장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북한의 각 종교단체들은 종교자율권 에 있어 종교 정책에 종속됨으로서 향후 김정일의 직책승계가 북한종교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북한의 종교정책이 주민 통제적 기늠 및 국가 정통성의 확립, 대외 선전용의 역할등과 같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김일성 사후 북한종교의 대외활동이 종교 정책의 범위를 벗어나 못한 경우로 일관하고 있으며, 구구내 종교활동이 종교 정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경우로 일관하고 있으며, 국내 종교활동은 정치적인 행사에 모든 관건을 지향하고 있다. 96년도는 북한 내외 정치적인 사정을 이유로 상반기 초에는 거의 없다가 경수로 협상의 진전과 국제적 쌀지원 공개 등으로 한국 내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을 초청하면서 지난 3월14일에는 조선종교협의회 명의로 대북종교방송에 관한 비난을 종교 정책의 최대 이슈 사항으로 제기 하였다. 이러한 북한종교의 일련의 모습들은 종교활동의 변화가 아니라 북한정권의 입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직책 승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내부적인 안정이 조성될 경우 새로운 김정일노선의 창출보다는 김정일의 유훈을 강화하는 측면으로 정치적 성향을 나타낼 것이지만
국가 정통성과 대국민 유화책 등으로 종교적인 수용의 폭은 확대될 전망이다. 97년 7월이 북한사회의 변동기점이 된다면, 북한 정권은 해외의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성향을 가짐 사회 인사나 종교계를 위해서라도 종교의 필요성을 전략적으로 홍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그들의 종교 단체를 국제 행사에 참석시켜 종교적인 이미지로 정치적 극대 효과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자국 내의 대규모 종교행사(법회, 미사, 기도회)등을 개최하고, 한국의 경제계의 유치를 실사구시적인 측면에서 북한의 정치권에 상장시킬 추이를 크게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 종교의 변화는 김정일의 권력 승계와 맞물려 있으므로 한국의 종교계들은 먼저 정치성을 배제한 종교 교류에로의 인정으로 순수한 종교적인 측면을 교류 이정표로 세워야 한다. 그 다음은 기존 남북한간의 종교교류 방식에서의 탈피이다. 그 동안 한국의 종교계는 북한 종교계로부터 일방적 정치적 입자의 수용을 강요 당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종교 교류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끝으로는 종교 교류에 대한 각 종교계의 정책 및 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이것은 종교 교류의 원칙에 있어서 정책적 대응을 통하여 개별 단체보다는 종교의 근본 목적에 입각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종교계에서 수반된 \'종교적 정책의 입안\'은 각 종교계의 공동연대를 도모하고 민족적, 문화적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