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參尋訪此宗하야 十年磨刮太虛空이라
區區力盡空依舊하니 方知万事本來同이로다
행각으로 돌아다니며 이 종을 찾다가
십 년 동안 이 허공을 갈고 닦았네
여러모로 힘은 다하였으나 허공은 예와 같나니
비로소 모든 일은 본래 같음을 알았네
問對物時엔 從有見이나 不對物時에는
云何有見고 答今言見者는 不論對物與不對物이니
何以故오 爲見性이 常故로 有物之時도 節見이며
無物之時도 亦見也니라 故知物은 自有去來나 見性은 無來去也니 諸根도 亦爾니라
물건을 대할 때는 설령 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을 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서 보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물건을 대하거나
물건을 대하지 않거나를 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다고 하는 그 성품은 영원한 까닭에 물건이 있을 때도
보고 물건이 없을 때도 또한 보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물건에는 본래 스스로 가고 옴이 있으나
본다는 성품에는 가고 옴이 없음올 알지니
다른 모든 감각기관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 본다는 그 자성은 간단이 없고 생멸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생멸의 상常과
무상無常을 떠난 중도의 상常이므로 상주불멸입니다.
따라서 본다는 그자성은 변견이 아니고 중도이므로 물건을 볼 때도 보지 않을 때도 항상 보는 것이니 거기에는 물건이 있다거나 없다거나하는 것이 서지 못하는 동시에 또한 있음과 없음이 서로 융통 자재 합니다. 물건에는 가고 오는 생멸이 있지만 보는 성품은 가고 옴이 없으니 생멸이 없는 중도입니다. 그것은 보는 성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안, 이, 비, 설, 신, 의 등의 육근 전체가 모두 그 지정에는 가고 옴이 없어서 생멸을 여읜 중도라는 것입니다. 즉 육근의 모든 활동이 진여 대용이며 망상을 근본으로 삼는 생멸의 활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主人公諾心 佛야 非佛非心亦非物이라
畢竟安名 煥作 야 煥作主人早理이로다
주인공아 마음인가 부처인가
부처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며 또 물건도 아니다
그러면 팔경에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주인이라 불러도 벌써 틀렸느니라
三世佛祖良中花요大千沙界여로다
有A問我這個事하면 喝似雷靈棒如雨하리라
삼세의 불조가 눈동자의 헛깨비요
대천사계가 콧구멍에 티끌이로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 소식을 묻는다면
우레 같이 소리치고 소나기 같은 방을 한다.
喝一喝逢下座하다
불기 2540년 음 4월 30 일 (양 6월 1 5 일)
혜암